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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담, 북한 7차 당대회와 ‘비정상의 정상화’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5.11.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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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3대 열점지역과 질서재편의 1라운드
미국의 최고전략가로 꼽히는 키신저 前 미 국무장관은 2014년 2월에 열린 뮌헨 안보컨퍼런스에서 “아시아는 19세기 유럽과 같다. 군사충돌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었다. 동아시아에서 당장 군사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열점(熱點, hotspot) 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섬), 남북한 접경지역과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남사제도) 등 세 곳이다. 잠재지역으로는 중국-대만 양안, 북방 4개섬, 독도 등이 꼽힌다.

센카쿠열도는 2010년 9월 중·일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이후 일본 순시선과 중국 해경선 간에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11월 7일 중·일 양국은 ‘관계개선 4대 원칙’에서 센카쿠 위기관리시스템을 조성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반도의 DMZ는 지난 8월 20일 남북한간에 한 차례 포격이 오갔다. 미국과 중국이 막후에서 개입한 끝에 남북한의 긴급협상으로 ‘8.25합의’를 이루어 잠정 봉합된 상태이다.

새롭게 열점으로 부각된 곳이 바로 남중국해 해상이다. 중국정부는 스프래틀리제도 위의 무인암초를 매립해 인공섬을 만들고, 이 위에다 전투기·폭격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3,000m에 달하는 활주로까지 설치했다. 그리고 이곳을 중국 영토로 삼아 12해리의 배타적 주권을 선언했다.

해양국가로서 자유로운 해상교통로 확보를 사활적 국가이익으로 간주하는 미국은 인공섬을 중국의 해상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은 이지스구축함을 파견해 의도적으로 중국측이 주장하는 인공섬의 12해리 영해 안으로 항행했고, 이를 중국 구축함들이 뒤를 좇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동아시아는 지금까지 제기되어 왔던 군사분야의 현안들에 대한 충돌방지시스템을 만드는 등 새로운 질서형성의 1라운드를 마무리지어 가고 있다. 급부상한 중국의 현상변경 요구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일본의 현상유지 노력 사이에서 벌어졌던 공방전이 충돌방지시스템의 구축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25일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사이버테러를 포함해 각종 군사현안들에 대해 대화기구를 마련하는 등 타협점을 모색해 많은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번에 군사적 충돌 위험까지 갔던 남중국해 인공섬을 둘러싼 미·중간의 갈등은 양국이 서로 군사충돌을 자제하기로 함으로써 일단 봉합의 수순을 밟고 있다.

결국 이번 남중국해 인공섬 문제도 한바탕 소동을 겪은 뒤 실무차원의 미·중 군사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동안 요동치던 갈등과 분쟁이 임시 봉합됨으로써 상대국의 힘과 의지를 떠보던 신질서형성을 위한 제1라운드가 막을 내리고, 대화와 협상에 의해 타협점을 만들어가는 제2라운드로 들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정상회담과 한일관계의 ‘비정상의 정상화’
동아시아 열점지역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이 충돌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시스템의 구축으로 봉합됨과 함께, 경제주도권 경쟁과 한·중·일 3국의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도 1라운드의 마무리작업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2015년 말 타결을 목표로 중국이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지난 10월 4일에 타결한 미·일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신질서형성의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 때문에 2008년부터 정례적으로 열렸던 한·중·일 정상회담이 2013~14년에는 열리지 못했다가 금년 11월 1일에 서울에서 열려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3국 정상회담의 정례화에 재합의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간의 한·일 정상회담도 양 정상 취임 후 처음으로 열려 종군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타결에 합의하는 등 한·일 화해를 모색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정상적인 현대 한·일 관계의 역사적 배경이다. 오늘날 한일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그에 기반을 둔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범국가 일본과 반파시즘 전쟁에 참가했던 국가들간에 체결된 평화조약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고, 한·일기본조약은 식민지 지배와 6.25전쟁 등으로 중단됐던 한·일 양국 관계를 정상화한 것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됨에 따라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파트너를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꾸면서 졸속으로 이루어졌다. 이 조약은 독도문제를 미해결과제로 남겨놓고 식민지 지배의 책임규명을 명확히 하지 않는 등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미봉한 채 남겨두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통합 전략차원에서 추진된 한·일 국교정상화 때도 제대로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독도와 같은 해상영토 문제의 미해결은 물론, 일본정부의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인정 및 종군위안부의 강제동원 인정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일 국교정상화에 따른 대일 청구권 소멸, 한국에 대한 한반도 유일합법정부 인정 등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과거사에 대한 불충분한 청산은 미국의 동아시아전략과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와 더불어 경제개발자금이 절실했던 당시 한국정부의 양해와 맞물려 이루어진 측면도 있다. 당시 일본은 철저한 과거사 청산 대신에 한국에 대한 유무상 차관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충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치인이나 당국자의 과거사 망언이 끊이지 않았으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도 계속됐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민주화되면서 비정상적인 한일관계를 조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국과 일본의 국력격차는 1:30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국력격차는 1:3으로 대폭 줄어든 상태이다. 불평등한 한·일 기본조약을 시정하고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문제에 대한 정리를 요구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하지만 우리측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일본정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무엇보다 일본 우파정치인들은 대등한 한·일 관계를 원치 않았다. 아베 총리는 “기다리면 한국이 먼저 접근해 온다”, “군위안부 문제는 3억엔(28억원)이면 해결할 수 있지만 돈문제가 아니다”(『週刊現代』 2015년 최신호)라며 한일관계에서 고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한국의 약점을 이용해 북·일 교섭카드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자위대의 북한 진입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 일본방위상은 남한지역에 일본자위대가 들어올 때 한국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북한에 자위대가 들어갈 때는 한국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로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기울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도 지금까지처럼 일본의 영향권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대한(對韓) 압력과 북한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이며, 일본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원한다면 대등한 한일관계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북한 7차 당대회와 남북관계의 ‘비정상화의 정상화’
북한은 당 중앙위원회의 정치국 결정으로 제7차 당대회를 내년 5월 초에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당대회는 당의 최고기관으로 시대흐름과 정세변화에 맞추어 당과 국가에 대해 새로운 비전과 진로를 제시하고 결정하는 자리이다. 이미 현안진단 지난호를 통해 제7차 당대회를 열어 노동당을 쇄신하라고 김정은 정권에게 촉구한 바 있다.(<현안진단> 129호 참조)
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2

북한은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당대회를 열지 못하고, 그 대신 당대표자회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었다.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대표자회 직전에 김정일 위원장이 3남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하고,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을 당중앙위원에 선출함으로써 후계자구도를 공식화했다.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를 열어 당의 지도사상을 ‘김일성-김정일 주의’로 명문화했으며, 김정은을 당 최고직책인 제1비서로 공식 추대하였다.

역대 당대회에서는 북한의 인민경제계획이 발표되었다. 1948년 제2차 당대회는 제2차 1개년 경제계획을, 1956년 제3차 당대회는 제1차 5개년 경제계획을, 1961년 제4차 당대회는 국방·경제 병진노선과 제1차 7개년 경제계획을, 1970년 제5차 당대회는 제1차 6개년 인민경제계획을 각각 내놓았고, 1980년 제6차 당대회는 제2차 7개년 경제계획(1977)의 중간점검으로 사회주의경제건설 10대 전망목표를 공표하였다.

역대 당대회에서는 북한의 주요한 대남정책의 방향도 제시되었다. 제2차 당대회는 유엔감시 하 총선거 반대와 남북연석회의 소집, 제3차 당대회도 남북연석회의 지지, 제4차 당대회는 남조선해방과 자유총선거에 의한 통일 천명, 제6차 당대회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과 10대 시정방침을 제시하였다. 제5차 당대회는 대남정책 대신에 대남비난으로 일관하였다.

그렇다면 오는 제7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어떤 정책을 밝힐 것인가? 지난 1984년 2월 16일 김정일 위원장이 발표한 「인민생활을 더욱 높일 데 대하여」는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여기서는 “인민생활을 한 계단 더 높이고 제7차 당대회를 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제7차 당대회는 북한당국이 체제정비를 마치고 30년 만에 새로운 경제개발계획을 내외에 선포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7차 당대회에서는 대남정책에도 커다란 변화를 담은 중대조치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체제통일 반대와 내정불간섭을 주장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고 2014년 ‘7.7 공화국 정부 성명’ 때 언급했던 연방연합제를 구체화한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통일방안은 온전한 국가통일을 후대에게 맡기자면서 ‘2개 국가’ 실체 인정에 기초해 남북한의 ‘공존’에 방점을 둔 ‘사실상의 연합제’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정책에서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하되 자신의 핵보유도 인정해 달라면서 양대 장애요인을 봉합하면서 한반도 평화협정체결 주장을 공식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 대신에 미국이 확장억제력의 전개연습을 중단하면 북한도 핵비확산 원칙을 확고히 준수하겠다는 제안을 포함시킬 수 있다. 결국 평화협정의 최대장애물인 주한미군과 핵보유간의 타협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 집권 4년차를 맞이해 북한당국은 36년 만의 제7차 당대회를 통해 대내외에 권력의 안정을 과시하고 김정은 체제의 미래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감한 제안들을 통해 ‘공존’을 바탕으로 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립을 요구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북한의 대담한 제안에 대해 한·미 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중은 물론 중·일, 한·일 양국이 2010년부터 시작된 동아시아 신질서형성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1라운드를 끝내고, 내년부터는 질서재편의 2라운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도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힘겨루기의 1라운드를 끝내고 대화와 협상의 2라운드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오판하여 모처럼 찾아온 비정상적인 남북관계의 정상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며, ‘비정상’을 마감하기 위한 선도적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yoomik@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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