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남북관계
낯선 길로 들어선 한국외교, 남북관계를 활용하라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5.09.18 09:34
  • 댓글 0

국익 우선주의로 돌아선 한국의 대북 및 대외 정책
지난 8월 25일 남북고위급접촉 공동보도문 이후 전개되고 있는 남북관계와, 9월 2~3일 한중정상회담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으로 조성된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동아시아 질서재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외교는 지금까지 가지 않았던 낯선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지난 8월 4일 북한제 목함지뢰의 폭발로 우리 병사 2명이 부상당함으로써 촉발된 남북한 군사적 긴장은 대북 확성기방송과 대남 포격 및 대응포격, 북한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준전시상태 선포 및 박 대통령의 ‘선조치 후보고’ 지시 등 강대강 형태로 고조되었다. 남북한은 8월 22일 남북고위급접촉의 합의로 극적인 반전 계기를 만든 뒤, 8월 25일 새벽 2시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번에 남북고위급접촉에서 합의된 공동보도문의 ‘유감’ 표현에 대해 남북한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일 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남북고위급접촉 합의문에 깔린 ‘전제 없는 대전제’이다. 이번 합의문에는 ‘북한 핵문제의 진전’을 전제로 하지 않고 북한이 비정상상태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민간교류를 활성화해 가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가 당장 해결되기 어렵다는 현실론을 받아들여 남북대화의 조건을 낮췄다는 사실이다.

남북대화의 조건을 낮춘 것과 함께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국익 우선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바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및 하루 앞선 한·중 정상회담 개최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민주국가의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함으로써, 한국정부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암묵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북고위급접촉 합의와 9.2 한·중 정상회담 이후 박 대통령이 앞뒤 맥락에 맞지 않게 중국과 통일문제를 협의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과 윤병세 외교장관이 ‘한미동맹은 과거 어느 때보다 최상의 상태’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이러한 것들은 이번 남북합의와 중국 열병식 참석에 대한 국내 보수여론과 미국 조야의 불만 등을 감안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번에 만약 통일이라는 명분이 없다면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이 ‘북핵문제 해결 우선’이라는 원칙의 후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또한 평화통일을 내걸지 않았다면 미국의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 구축 요구와 상관없이 한·중 전략적 접근이라는 길을 갈 수 있었을까? 박 대통령이 귀국 길에 한·중 정상회담에서 통일문제를 논의했다고 발언하고, 윤 장관이 한미동맹이 역대 최상이라고 애써 발언한 속뜻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메르스가 바꿔놓은 한국외교의 논의 방향
2015년은 광복 70년이라는 의미도 적지 않지만, 동아시아 질서재편이 본격화됐다는 점에 더 커다란 의미가 있다. 2012년 3월에 공식 출범한 김정은 정권, 같은 해 12월의 아베 정권, 2013년 1월의 오바마 2기 정권과 2월의 박근혜 정권, 3월의 시진핑 정권 등이 외교적 탐색과 포석을 거쳐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구축에 본격 나선 해이기 때문이다.

당초 우리 정부는 4월 28일 미·일 정상회담에 맞서 6월 16일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한·미 정상회담을 연다는 계획이었다. 박 대통령의 방미는 아베 총리와 같은 국빈방문이 아니지만 사실상 국빈방문 수준으로 환대한다는 것이 한·미 양국의 양해사항이었다. 이는 ‘신밀월관계’로 평가되는 미·일 정상회담에 못지않은 한·미 관계를 과시함으로써 새로운 한·미·일 삼각체제를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한국이 일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메르스 전염병이 확산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측의 양해를 얻어 방미를 전격 연기했다. 메르스가 잡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한국을 비우면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부실대응으로 한 때 90%에 달했던 지지율이 역대 최저로 급락한 부시 대통령과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재난대책에 전념해 지지율이 높아졌던 오바마 대통령의 비교사례가 방미 연기 결정에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같은 중요한 행사를 연기한 데는 학습효과도 작용했을 것이다. 2014년 6월 세월호 사건으로 한창 국내여론이 악화되었을 때 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 방문으로 자리를 비웠다가 비판을 자초하였다. 금년 4월 시진핑, 푸틴, 아베, 김영남 등 주요국 정상이 자리한 60주년 아시아·아프리카정상회의(일명 반둥회의) 때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고 중남미 방문길에 올랐다가 여론의 질책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한·미 정상회담의 연기로 인해 애당초 우리 정부가 생각했던 외교 일정이 흔들려버렸다. 박 대통령의 방미가 연기되지 않았다면 동북아 주요국 정상회담의 순서가 미·일→한·미→한·중(중·일)→미·중→한·중·일/한·일의 논의구도가 됐을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및 한국 관계가 재정립되어 한·미·일 남방삼각이 재구축된 뒤, 한국(및 일본)이 중국과 정상회담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한국, 일본을 껴안은 채 느긋하게 미·중 정상회담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10월말~11월초 열릴 한·중·일 및 한·일 정상회담도 미국의 구상을 강화하는 방편이 될 공산이 컸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6월에서 10월로 연기되고 아베 총리의 9월초 방중이 실현되지 않으면서, 동아시아 주요국 정상회담의 순서는 미·일→한·중→미·중→한·미→한·중·일(한·일)로 뒤바뀌어 버렸다. 이렇게 바뀐 논의구도 속에서 마치 미국·일본과 중국·한국이 각각 손잡은 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그렇게 되면 오는 한·중·일(한·일) 정상회담은 한·중 대 일본의 논의구도가 될 수 있고, 이를 우려해 일본이 3국 정상회담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외교의 대외전략 논의구도가 급격히 바뀌었기 때문에 국내언론들은 “한국외교, 낯선 길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박근혜 독트린”이라는 제목을 뽑아가며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외교는 앞으로 중국의 한·중관계 굳히기 및 미국의 재조정 압력과 일본의 반격에 직면하면서 원치 않은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로켓발사 유예를 위해 한국이 적극 나서야
앞으로 전개될 네 가지 국제정치 일정에 따른 결과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오는 9월 25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문제가 어느 수준에서 논의될 것인가가 주목된다. 둘째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한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여부이다. 셋째는 10월 16일 박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북핵문제를 비롯한 동북아정세에 관한 논의결과이고, 끝으로 10월말~11월초로 예상되는 한·중·일 정상회담 및 한·일 정상회담에서 관계회복 여부이다.

올 하반기 일정 중에서 한국외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한다면,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이 문제를 또다시 유엔안보리에 회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임 있는 대국을 자부하는 중국정부나 러시아정부도 여기에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메르스 사태로 넉 달 연기되어 10월 16일에 열리게 될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가 북한 장거리로켓 대책이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미국이 6자회담 재개의 문턱을 낮추지 않은 채,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종말고고도지역방어미사일(THAAD) 배치와 한·일 군사협력의 중요성에 따른 한·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체결을 강력히 요구해 올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한·중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모처럼 조성된 남북간의 대화 분위기가 찬서리를 맞게 될 수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반발해 추가 핵실험을 단행하고 미사일 발사실험을 재개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반도 긴장사태를 미연에 예방하고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는 남북당국자 채널을 총동원하여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국 채널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상황을 잘 관리하여 10월 위기를 극복해낸다면, 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의 재개에 대한 미국의 유연한 태도를 얻어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유명한 저서 『총, 균, 쇠』에서 “흔히 성공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을 제시했다. 동서독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 성공요인 덕분이라기보다 수많은 실패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평화통일을 원한다면 어떤 한 가지 성공요인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실패요인들을 피해나갈 수 관리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yoomik@peacefoundation.or.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