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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를 옮기다

며칠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떠날 때의 집이 아니었다. 여행을 나갈 때에는 종로구 필운동이었는데, 돌아올 때에는 마포구 아현동이었다. 가장(家長)치고는 아주 무책임하게 이번에도 이사 기간에 해외로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했다. 이사할 때 뺑소니치듯이 한 것이 벌써 몇 번째다.

종로구 필운동에서 꼭 15년간을 살았다. 참으로 정겨운 곳이었다. 서울 중심부치고 개발이 거의 되지 않아 시골적인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 소위 서촌(西村)이란 곳이다. 처음 이사할 때만 해도 기력도 있어서 약 10여년간 자주 인왕산을 오르곤 했다. 최근에는 인왕산 산복(山腹)도로를 따라 사직공원 입구에서 창의문(彰義門) 근처까지 갔다 돌아오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곳에는 몇 년 전 종로구가 윤동주(尹東柱)의 ‘서시’를 새긴 시비를 세워놓았고 문학관도 만들어 놓았다. 시비 동산에 올라 서시를 읊다 보면 윤동주의 꿈이 내 꿈이라도 되는 양 기쁨을 금치 못했고 이 야박한 세상에서 그래도 순수한 꿈을 되살릴 수 있었다.

필운동 시절은 내 가족사에서도 깊은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 시절에 내가 대학에서 은퇴하고 공직을 섬기며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내외와 함께 학위를 취득한 것도 이때였다. 아이들이 더 큰 소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헌신하기를 늘 기도한다. 또 큰손녀를 제외하고는 네 손아들이 모두 이 필운동 시절에 태어났다. 손아들이 토요일마다 필운동 집을 방문할 때면 할머니의 사랑을 정말 듬뿍 받을 수 있었고, 할아버지와는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던 것도 바로 이곳이다. 나는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마치 해방구처럼 자유로왔던 이 필운동 집과 그 예배시간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운동은 또 청와대와 중앙청이 가까운 곳인데도 서울의 중심지답지 않게 화려하지 않고 서울의 옛모습을 그런대로 지니고 있었다. 인심도 아직은 도시화되지 않았다. 근처에 고적과 문화유산이 많아서 그곳을 찾는 것은 도심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기회였다. 경복궁과 사직공원을 자주 산책한 것은 사색하는 기회였고, 그런 문물을 대할 때마다 문화재가 이곳의 급격한 개발에 완충제 역할을 했음에 감사했다. 교통 또한 서울 도심의 지역이면서도 편리한 셈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사는 지역을 교통 편리지역으로 믿는다. 필운동은 도심에서 본다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격리되지는 않았고 지하철 3호선과 많은 버스노선들이 장거리 운행을 도와주었다. 나는 늘 서울시청 주변까지는 걸어서 다녔고 그것은 내 건강도 유지시켜 주었다.

이렇게 정이 들고 땟국이 묻은 필운동 집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이곳이 너무 정이 들었고 위에서 열거한 도심 거주지로서의 장점 때문에 떠나기가 정말 싫었다. 그러나 둘째 아들 가족과 함께 거처하기 위해 마련한 집이 아들 식구들이 독립하고 나니 늙은이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었다. 집을 관리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나야 책상에 앉아 가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몰랐지만, 아내의 고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도저히 더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우선 책과 서가, 최근에는 모빌렉 서가마저 필요한 곳으로 보냈다. 이사를 위해서는 괴롭지만 서촌 마을과의 인연도 끊어나가야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토요일마다 손아들이 방문하게 되면, 그때마다 불쑥불쑥 필운동 집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 했다. 그러던 차에 이런 집을 필요로 하는 원매자가 나타났고 시세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 집에 들어오는 이가 나와 같이 복받는 삶이기를 축복했다.

이사한 날은 8월 20일. 나는 그 이틀 전에 해외에 나갔다가 이사한 이틀 후에 귀가했다. 귀국 도중 비행기에서 주소 쓰는 서류에 난감함을 느꼈지만 종로구 필운동 몇 번지라고 옛 주소를 쓰고 괄호안에 ‘이전 주소’라고 했다. 새 주소를 모른 채 출국했던 것이다. 새 집을 전에 돌아본 적은 있지만 이 집을 찾아 공항에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흔히 요즘 떠도는 ‘남편 바보만들기’ 시리즈에 나오는 그런 존재가 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새 집은 필운동 집보다 절반 정도의 규모다. 자리잡은 곳은 아현동. 필운동 집에 비하면 서울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어디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사양할 수 있는 핑계꺼리라도 되었으면 하는 은근한 기대도 있다. 지하철 2호선 아현역과 5호선 애오개역 중간 옛 산 중턱에 새로 세운 아파트다. 오늘 귀국하여 애오개역에서 걸어오면서 재보니 거의 15분이나 걸렸다. 2호선 아현역에서 올라오더라도 그만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면 운동에도 꼭 알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필운동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접어가면서, 새 거처에 대한 꿈을 상상해봐야겠다. 내 생이 이곳에서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약간의 서글픔도 없지 않지만, 하늘나라로 가는 지상의 마지막 정거장일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니 거기서 오는 희열도 또한 크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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