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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여전히 우리의 소원이어야 하는 까닭'더킹 투하츠'와 '최 아무개 씨 인터뷰'로 본 반쪽의 모습들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북한군과 남한군은 단일팀으로 세계장교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한 데 모여 합숙 훈련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체제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감정을 갖기 쉬운 군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나아가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단계에 이르고자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 매우 흡족합니다.

멤버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캐릭터를 가진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남한의 젊은 장교 이재하(이승기 분)입니다. 극중에서 남한은 아직 왕실의 존재가 뚜렷합니다. 이재하는 바로 왕실 출신이며, 현재 왕의 친동생 곧 왕제입니다. 군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왕제님”이란 호칭을 들으며 어렵게 적응하는 중입니다.
또 한 사람은 인민군 여성 장교로서 여러 면에서 남성들을 제압하는 김항아(하지원 분)입니다. 남자처럼 활달하지만 눈물도 많고, 피부 관리에도 신경을 쓰며, 남한의 장동건을 마음에 품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여성입니다.

두 사람의 갈등이 사랑으로 이어질 것은 틀림없는데, 그 갈등 상황은 여전히 남쪽과 북쪽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비아냥거리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상대의 체제를 어떻게든 깡그리 부정하려는 오만스러움도 보입니다. 나를 지키되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극은 어떻게든 서로를 향한 애정이 싹트고, 그 애정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게 만들 것이므로 은근히 기대를 모읍니다.

   
▲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비아냥거리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상대의 체제를 어떻게든 깡그리 부정하려는 오만스러움도 보입니다.


통일로 나아가는 길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한쪽을 부정하려면 전쟁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통일을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수가 바라는 평화적인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대의가 분명하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에 대한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차이를 이해하는 가장 쉽고도 좋은 길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는 것입니다. 그 애정 때문에 차이를 차이로 보지 못한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서로를 갈라놓고자, 또는 서로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들고자 하는 어떤 목소리나 정책에 대해서 ‘노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호한 부정이 나중의 혼돈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통일이 가져다줄 희망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 잡지에서 중국 다롄의 평양관에서 봉사원으로 일하는 최 아무개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잡지에 실린 그녀의 얼굴은 곱고 순했습니다. 분홍과 진초록 한복을 입은 모습은 낯익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더욱 낯설었습니다. 평양관에서 그녀는 남한 손님들을 주로 만납니다. 평양관에 온 지 한 달 남짓 되는 기간에 그녀는 남쪽의 손님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술을 한 잔 걸친 뒤 남쪽 손님들은 자주 그녀에게 "남쪽으로 시집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 약혼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녀의 대답에 남쪽 손님들은 백이면 백 한결같이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갑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정색을 하며 "동방예의지국의 조선 처녀는 한 남자와 약속했으면 비교할 남자가 없다는 마음으로 평생을 지냅니다. 약속은 곧 법입니다"라고 대화를 맺었습니다.
그녀는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남쪽의 처녀들은 이 사람하고 연애하고 저 사람하고 연애하고 그럽니까?"
심지어 못나고 못된 몇몇 남쪽 손님들은 호텔방에서 평양관으로 전화를 하여 그녀에게 "동무가 보고 싶어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라며 치근댄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무척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낯설었던 까닭은 저도 어쩔 수 없이 '남쪽'의 못된 습성들을 품고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도 모르는 오염된 가치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지키고자 하는 자본주의지만 그것이 가져다준 폐해 또한 적지 않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통일이 가져다줄 희망 하나를 발견합니다.
사실 남과 북이 갈려 있어 우리는 불행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느 한 쪽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한 쪽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아마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북쪽에서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말을 더 발전시킨 건 잘 알려져 있고, 자본주의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도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북쪽이 잃어버린 것을 남쪽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또 많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인 풍요를 일궈내고 ‘한류’라는 또 하나의 문화를 꽃 피운 것도 남쪽이지요.

그러고 보면 통일이란 그런 '우리 것들'을 비로소 완전하게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절반의 ‘우리’를 온전한 하나의 ‘우리’로 만드는 일, 통일은 그래서 여전히 우리의 소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박명철  aim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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