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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통일역사’평통기연 ‘평화 칼럼’

하나님이 뜻하시는 ‘통일’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엡 1:10)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멀리 있던 ‘저희’(이방인과 유대인, 북한과 남한)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다”(엡 2:13)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북한과 남한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 말합니다. 아니 6․25라는 민족상잔으로 ‘피’까지 흘려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사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엡 2:16)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인가요?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신”(엡 2:14)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손수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셨는데, 그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이방인과 유대인, 북한과 남한)의 ‘화평’이 되시고(엡 2:14) ‘하나님과 화목’(엡 2:16)하게 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북한을 원수라고 합니다.

혹시 우리 기독교인에게 ‘북한=원수’는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 같은 것인가요?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폐하셨습니다. 우리 둘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엡 2:15). 그런데도 ‘북한=원수라는 율법’을 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 즉 ‘새 사람으로 지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지음’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엡 2: 18)을 얻어야 하며,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엡 2: 21-22)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아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해야”(엡 1:22)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살리셨다”(엡 2:1)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풍조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따르고 있는”(엡 2:2) 건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입니다. 따라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을”(엡 2:4-6) 자격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엡 1: 23)을 드러나게 하시고, “만유의 아버지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 한 분이신 하나님”(엡 4:6)께서 이미 이 ‘땅’을 통일할 조건을 형성하시고 장차 ‘우리 새 사람’과 함께 ‘하늘’을 통일하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지”(엡 4:3) 못하면, 우리는 ‘만유를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통일역사’에 동참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부디 통일일꾼이 되고자 하는 우리가 먼저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엡 4:23-24)이 되길 기도합니다.

권성아/ 기독교통일교육학회 부회장

권성아  ksa3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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