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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 위해 열린교회, 참여교회로 거듭나자

지난 6월 30일은 고(故) 크리스티안 퓌러(Christian Führer) 목사님의 서거 1주기였습니다. 퓌러 목사는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의 담임으로서 1981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교인 수십 명이 매주 월요일 모여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회였을 뿐이었지만, 1987년에 이르러서는 평화의 순례로 발전하였고, 1989년 10월에는 수천 명의 교인이 교회 밖에 있던 수만 명의 시민과 함께 촛불을 이끄는 평화행진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행진을 강제 진압할 수 없었기에 동독 정부는 무너졌고 이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바로 이러한 퓌러 목사님의 평화와 통일 기도회가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독일 통일에서 독일 교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퓌러 목사님의 서거 1주기를 지내면서, 그의 신앙과 사역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퓌러 목사님의 사역을 돌이켜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열린”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월요기도회가 결정적으로 확대되고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 계기는 1985년 퓌러 목사가 “모두에게 열린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 – offen für alle)”라는 기치를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퓌러 목사는 교인들뿐만 아니라 청년들, 일반 시민들, 또 무신론자들도 참여하도록 교회를 개방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잠입 침투한 스타치 요원도 다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퓌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1989년 결정적인 때에 평화행진을 훼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퓌러 목사님이 이렇게 교회를 열고 비기독교인들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 2. 4~1945. 4. 9)의 전도론을 본받아서였다고 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신전의 용어가 아니라 포도나무, 겨자씨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서 말씀을 선포했듯이, 교회도 신앙 속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본회퍼의 생각을 실천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우리끼리 만으로의 게토화된 교회 혹은 바빌론 포수 상태의 교회에서 과감한 탈출이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 형태로 시비를 받으며 점점 안으로 굽고 있는 한국교회가 이제는 진실로 통일의 밑거름이자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한국 사회의 다수에게 다가가고, 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복음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문이 활짝 열린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다음으로 퓌러 목사님의 사역에서 배우는 교훈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에 “참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일 퓌러 목사에게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한 이유에 대한 물음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나를 움직인 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교회에만 머물지 말고,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소금은 상처, 곧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무너진 곳, 다시 말하면 아픈 곳을 낫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퓌러 목사는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해서 교회가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나타나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고, 또 세상으로 나아가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신념이 퓌러 목사로 하여금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탄압과 핍박 속에서도 기도회를 계속 열어서 결국 라이프치히 시민과 함께 하는 평화 행진으로 동독 공산당 정권을 무너뜨리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44. 8. 20 ~1976. 7. 30)의 그 유명한 “Gift and Demand” 명제가 새로와집니다.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총뿐 아니라 생명, 삶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에는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순종으로의 응답이 따라야 한다는 말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마땅히 세상의 아픔에 활짝 열려 치유하는 생명공동체로, 화해와 평화를 구현하는 교회로 이 시대의 과제 앞에 진지함과 치열함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통일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세상으로 나아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상처를 보듬어 주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양극화, 지역적 계층적 갈등심화, 청년실업, 다문화 가정과 탈북동포의 고뇌와 갈망 등과 같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합니다. 짧은 130년 복음과 교회의 역사에 이토록 놀라운 은총과 축복을 받은 한국교회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아픔을 치유 해소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퓌러 목사님의 사역이 주는 가장 중요하고 강렬한 메시지는 바로 올바른 기도의 힘입니다. 퓌러 목사는 기독교인에게 기도는 마음을 다스리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허공을 향해하는 기도가 아니라, 언제나 살아 있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곧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를 기도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항상 “하나님의 평화, 정의와 창조질서의 보전”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간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축복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퓌러는 이렇게 매주 기도를 했기에, 교회를 사람들에게 열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이렇게 매주 기도를 했기에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겼고, 이렇게 매주 기도를 했기에 1989년 10월 7일 밤, 라이프치히에 군대와 경찰이 배치되어 길을 가로막을 때에도, 용기를 가지고 비폭력을 실천하며 촛불을 들고 기도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진압명령을 받았던 치안대장은 “우리는 모든 것에 대비했으나, 촛불과 기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시인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기도에 응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한국교회도 이와 같은 기도의 힘이 절실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 특정한 결과를 요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평화와 정의를 내려주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진실로 믿고 간구하고 실천하는 기도입니다.

   
 

불름하르트( Christoph Friedrich Blumhardt, 1884. 6. 1~1919. 8. 2)의 대표적 저작이자 그의 삶이 농축되어 독일에 변혁의 대역사를 일으켰던 명제 “기다리며, 서두르다. Warten und Pressieren, 영어 번역 Acting in Waiting )”의 뜻을 새겨 봅니다. 한반도 화해평화, 통일의 과제 앞에서 우리는 조급하지 말고 끈기, 인내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동안 철저히 준비하며, 행동해야 할 때가 오면 신속 과감한 실천행동으로 떨쳐 일어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기도의 힘입니다. 퓌러 목사의 서거 1주기를 추모하며 한국교회도 열린 교회로 참여교회로 올바른 기도의 힘을 믿고 실천하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조성기/ 숭실대학교 통일연수원장, 평통기연 지도위원

조성기  sgcho@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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