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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걸린 대한민국

며칠 전, 출근버스에서 우연히 한 중년여성(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의 통화소리를 엿듣게 됐다. "아니, 우울한 일밖에 없어. 그래도 어떻게? 즐겁게 살기로 했어."

속으로 그랬다. ‘우울한 사람이 어디 당신뿐이겠습니까’라고. 중년은 노후에다가 자식 걱정으로 우울하고, 청년은 취업에 결혼 걱정으로 우울하고, 비정규직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우울하고, 정규직은 안그런 것 같지만 나름 불안하고 우울하다.

그날 밤 귀갓길. 아파트 옆동에서 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크게 새어나온다. 대판 부부싸움을 한 건지, 아니면 누가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 같은 무게의 울음이다.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들었던 “우울한 일뿐”이라는 한 중년 여인의 전화통화 소리는 우연이 아닐지도 몰랐다. 대한민국 사회가 온통 우울하다는 생각은 나만의 주관적인 것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더욱 들었다. 전철에 탄 사람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어쩌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겉은 아닐 수도 있지만 속은 우울하고 슬플 거라는 생각….

물론 ‘나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울하지 않다’고 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깟 우울증은 믿음으로 극복하면 돼. 믿음이 없어서 우울하고 슬픈 거야’라고 할 신앙인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울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면, 극소수가 아니라면 뭔가 구조적인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해피하면 돼’ ‘믿음으로 극복하면 돼’라고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19세 이상 성인의 10.3%가 “최근 1년 안에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2013년 한 해 동안 성인 10명 중 한 명이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얘기다. 청소년 우울증 경험률은 11.2%였다. 이쯤 되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다.

   
▲ 2012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나타난 성인 우울증 경험률(도표: 연합뉴스),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한 세월호 유가족들, 지난 4월 29일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대한민국에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면 도대체 그 우울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정치권력의 탓도 클 것이다. 정치권력은 국민을 편안하게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국민이 그들에게 표를 주고 권력을 위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치권력이 경제 문제나 각종 사회·정치 현안 문제를 제대로, 정의롭게 대처하지 못할 때 국민은 불안하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한 마디로 ‘꽉 막힌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남북은 분단된 채 70년을 이어오고 있고, 더군다나 그 반쪽인 남한 내에서는 계급별, 정파별, 세대별 분리와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오죽하면 남북통일보다 남남통일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러는 사이 경제는 점점 활력을 잃고, 젊은이들은 꿈도 직장도 가정도 포기해야만 하는 불행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민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정치권력은 정권안보와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된 듯하다. 썩은 사회의 소금이자 어두운 역사의 별이어야 할 종교(교회)는 오히려 사회의 지탄과 걱정을 사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희망’은 그저 남의 나라 얘기만큼 공허할 수밖에 없다. 희망이 사라진 사회, 꽉 막힌 사회는 어쩔 수 없다. 내부 대립과 폭발을 가져올 수밖에. 그래서 대한민국은 우울한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직함, 이 우울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에게 우울증은 숨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털어놓기보다는 숨기게 되고, 그러니 자살로 이어지는 경향이 많다. 우울한 사회의 유일한 희망은 우울한 사람들끼리 서로 나누고 격려하는 일이다. '나만 우울한 게 아니었구나' 깨달을 때 우울증은 더 이상 병이 아니다. 거기서 공동체의식은 싹트고, 사회의 활력도 생긴다. 마침내 집단우울증은 우울의 원천을 제거하려는 거대한 움직임으로 화한다. 그것이 사회 개혁이고 역사 발전이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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