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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알아서 기는 정부의 탄저균 대응

주한미군기지에 반입된 살아 있는 탄저균이 메르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대량살상무기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메르스 치사율은 10~20%인데 탄저균은 95%에 이른다. 2001년 미국에서는 미 육군 생화학연구소의 연구원이 탄저균이 묻은 편지를 유명인사들에게 보내 5명이 숨지고 17명이 감염된 사건이 있었다. 탄저균이 반입된 이상 한국에서도 고의든 실수든 상관없이 이 같은 사고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박근혜정부는 미국 눈치 보기에 바쁘다. 범인을 잡아야 할 경찰이 범인 무서워 눈치를 보는 꼴이다.

박근혜정부는 미국이 살아 있는 탄저균을 반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 5일이나 걸렸고, 탄저균이 들어온 주한미군 오산기지 내 합동위협인식(JUPITR)연구소에 대한 현장조사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활성화된 탄저균의 위험을 지적하고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과 야권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른 미국을 두둔하는 인상마저 풍겼다.

늑장 통보 받고도 찍소리 하나 못하는 정부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내 반입될 당시 탄저균 샘플은 액체상태로 3중 포장용기에 담은 뒤 얼린 상태로 민간배송업체인 페덱스(FEDEX) 화물기에 실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별다른 검역과정을 받지 않고 오산기지로 옮겨졌다. 오산기지에 도착한 뒤에는 JUPITR연구소에 마련된 생물안전도-2(BSL-2) 레벨의 실험실의 냉동고에 보관돼 오다가 5월 21일 유전자 분석장비에서 사용하기 위해 해동 작업이 진행됐다.

미 군 당국이 이 사실을 파악한 것은 5월 22일이고 이를 공식 발표한 것은 5월 27일이다. 스티브 워런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5월 2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유타 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 있는 탄저균 표본이 캘리포니아와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옮겨졌다”며 “탄저균 표본 1개는 한국 오산에 있는 주한미군의 합동위협인식연구소로 보내졌다”고 발표했다. 탄저균이 국내에 반입된 사실이 공식 확인된 순간이었다.

미 군 당국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위험물질을 반입할 때 우리 정부에 통보해야 한다. 게다가 탄저균을 살아 있는 채로 국내에 들여오려면 질병관리본부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정부는 미 군 당국이 성명을 발표한 날인 5월 27일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이 살아 있는 탄저균을 발견한 뒤 1차 조사를 마치고 이렇다 할 징후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배달 사고 사실을 발표했고 이를 우리 정부에 늑장 통보한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행위 역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위반되는 행위였다. “질병이 발견되면 주한미군은 한국 보건당국에 즉시 통보한다”라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탄저균의 노출 사고는 질병의 수준을 넘어서는 위급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은 사고를 인지한 22일 직후 한국 정부에 통보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정부는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늑장 통보한 미국에 대해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현지조사 거부당하고도 미군 입장 두둔하는 박근혜정부
박근혜정부는 미 군 당국으로부터 탄저균 사고가 일어난 오산 미군기지에 대한 현지 조사를 거부당하고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 살아 있는 탄저균 샘플이 국내에서 봉인 해제되고 22명이 감염된 상황에서, 사건 현장에 대한 조사는 필수적이다. 그동안 반입된 탄저균 양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반입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사고가 난 실험실 내부의 멸균 상태는 완벽한지, 감염자들의 상태는 어떤지 등 기초적인 사실관계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산기지에 있는 실험실은 생물안전도-2 레벨의 시설로, 살아 있는 탄저균과 같은 치명적 세균을 다룰 수 없는 시설이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음을 인지한 박근혜정부는 다음날인 5월 28일,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를 오산 미군기지로 보내 현지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거기까지였다. 현지 조사단이 현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지 조사단은 주한미군 측이 해당 시설이 폐쇄됐다는 이유로 현장 접근을 거부하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채 돌아오고 말았다. 현장 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주한미군 측이 탄저균의 국내 도착 시점과 운송 기록이 담긴 배송장과 운송 과정의 안전성을 살펴볼 수 있는 운송용기가 폐쇄된 시설 안에 있다며 구두로만 확인해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현지 조사단이 범죄자인 미군 측 설명만 듣고 돌아선 셈이다.

사실 정부 당국이 의지를 갖고 강력하게 항의했다면 현지 조사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사고를 저지른 미국은 탄저균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2001년 탄저균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인이 배달한 우편물 때문에 5명이 사망한 사건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정부가 미군이 비밀리에 운영해 온 세균전 관련 실험실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 하고 현지 조사를 요구했다면 얼마든지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들이 현장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현지조사 당국은 “실제 실험실 내부 상태와 서류, 용기 등을 직접 확인해야 하지만 군 시설의 특성상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변명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군 시설이라 행정 당국이 접근하지 못했다면 우리 군 당국이라도 조사에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군 당국도 손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6월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문성준 국군화생방방호사령관은 “우리가 합동조사를 해서 (탄저)균이 죽어 있는 균이었는지 살아있는 균이었는지 확인을 했다는 거냐”는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에 “직접 조사한 바는 없다”고 답했다. 윤 의원이 “미군이나 미국 측에서 통보한 대로 우리가 국민한테 알리고 있는 수준이냐”고 재차 묻자 문 사령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미국 입장 두둔하기 바쁜 한국 관료들
이로부터 며칠 뒤,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6월 5일 작성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탄저균 관련 보고서가 <USA투데이> 보도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더그웨이 미 육군 연구소는 지난 10년 동안 방사선을 통해 박테리아를 살균하는 효과적이고 표준화된 절차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며 “그 결과 2005.1~2015.5월까지 살아 있는 탄저균이 적어도 74번, 수십 개의 미국 내 연구소와 5곳 이상의 외국에 배달됐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은 탄저균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탄저균 사태의 심각성이 날로 높아져 가지만 박근혜정부의 주요 국무위원들은 하나같이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6월 19일 탄저균 불법반입문제에 관한 법적 대응을 요구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미국과 우리가 특수한 군사동맹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제약들이 있다”며 “가장 중요한 국민 안전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한미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답변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미국이 탄저균에 대한 관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민의 안전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법무부 장관 출신인 황 총리는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 주한미군의 불법 행위를 법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한미군사동맹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황 총리의 입장인 듯하다. 황 국무총리는 지금도 “진상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미 사고가 알려진 5월 28일, 우리 정부가 현지 진상조사 자체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듯하다.

주한미군이 취급하는 우편물에 대해 검역을 하지 않도록 하는 현행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9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국무위원들은 하나같이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SOFA 개정에 대한 강한 입장은 없는 것인가”라고 묻자, “네”라고 대답한 뒤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답변했다. 강제조항인 SOFA도 잘 지켜지지 않는데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하겠다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인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1998년 오산공군기지에 탄저균 실험시설이 만들어졌는데 이번 실험이 처음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는 추궁에 “탄저균을 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미군측에) 확인했다”며 주한미군사령부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탄저균 사태에 대한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인식은 더 심각하다. 미군 당국에서 한국에 보낸 탄저균이 살아 있을 가능성을 먼저 실토했음에도 한국의 외교부장관이 오히려 이를 부인하는 발언을 계속했던 것이다. 윤 장관은 6월 19일 국회에서, ‘살아 있는 탄저균이 보관되고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은) 그런 기술적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 살아 있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진 않고 있다”며 미국의 입장을 오히려 변호하였다.

게다가 윤 장관은 “국제 생물무기금지협약에서 탄저균 이전을 제한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의 질문에 “평화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민간 연구소의 세균실험도 아니고 미군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터져 나온 탄저균 사태에 대해 “평화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상대국의 생물무기 포기 압박’과 ‘선제공격 시 보복’이라는 방어 개념으로 포장한 생물무기 유지정책을 포기한 적이 없다. 미국 국방부가 1990년대 말부터 들고나온 바이오디펜스(Biodefense)라는 개념도 민간인보다는 군인들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춰 결국 생물무기 실험과 개발용 핑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본디 생물무기 실험이란 게 방어용과 공격용으로 구분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 까닭이다. 당연히 국회 내에서는 “군 부대에서 하는 탄저균 실험이 평화적 목적이란 말이냐”는 고성이 오갈 수밖에 없었다.

황교안 국무총리, 한민구 국방장관, 윤병세 외교장관의 행태를 보면, 미국 주장이면 ‘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태세다. 한 나라의 행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와 외교안보를 책임진 국방-외교장관의 태도가 이와 같은데, 우리 국민은 누구를 믿고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청와대나 국방부는 그 미군한테 찍소리 한 번 못했고 그 흔해빠진 외교용 유감 성명서 하나 못 날렸다. 시민 생명 보호는 말할 것도 없고 외교도 모르는 이런 희한한 걸 정부라 불러야 할까? 과연, 우리는 독립국가에서 살고 있기나 한 걸까?”라고 개탄했다.

박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 사과를 받아내야
미국 육군 ‘에지우드 화학 생물학 센터’(ECBC)의 생물과학 부문 책임자로 생화학전 관련 프로그램을 이끄는 피터 이매뉴얼 박사는 생물학전 대응 실험 장소로 한국을 택한 이유에 대해 ‘주둔국(한국)이 우호적’이기 때문이라 했다. 한마디로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만만하다는 의미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정문태 기자의 말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5,000만 국민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한 탄저균 사태에 대해 미국에 제대로 항의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국민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해야 하며,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최소한 못난 국무위원들을 임명한 것에 대해서 국민들 앞에 사과라도 해야 한다. 이조차도 못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김성훈/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성훈  punkkid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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