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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도적 위기에 대해 무한책임을 선언하자!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5.06.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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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없는 교류와 협력으로 통일을 이룬 독일

1989년 가을, 동독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당국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여행자유화 정책을 내놓기는 했으나 실상은 여권발급기간 단축 이외에 별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이를 발표하는 TV 기자회견장에서 이탈리아 기자가 “언제부터 국경이 개방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를 “새로운 여권발급정책이 언제부터입니까?”로 잘못 알아들은 동독의 정치국원은 “지체 없이, 즉시”(Sofort, unverzuglich)라고 발표해버렸다.

이 단순한 헤프닝은 TV를 통해 동독 전역으로 방송되었고, 동독 주민들은 그 즉시 국경으로 달려갔다. 국경에 몰려든 수많은 주민들을 막기 위해 동독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초소의 지휘관은 결국 국경의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소식을 들은 서베를린의 서독인들은 망치와 곡괭이, 그리고 포크레인까지 동원하여 베를린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반세기 이상 독일을 분단시키고, 동독을 탈출하려던 수많은 동독 주민들을 희생시킨 장벽은 하룻밤 만에 무너졌다.

이 극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는 우연이 아니며,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각고의 노력의 결과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동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버렸으며, 서독체제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통일 당시 서독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고, 선진 민주주의체제와 투명한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신뢰한 보다 중요한 이유는 분단 전 기간에 걸쳐 서독이 동독 주민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시행했다는 점이다. 서독은 동독 주민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정책이라면 조건을 달지 않고 시행했다. 프라이카우프로 명명된 비밀사업은 1963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1989년까지 3만 3,755명의 동독 정치범을 서독으로 이주시켰으며, 34억 6,400만 마르크(약 15억 달러) 규모의 대가를 동독에 지급했다. 동독 반체제 인사 1명을 데려 오기 위해 서독은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의 5배에 달하는 대가를 지불했다.

1975년부터 통일 직전까지 서독은 공식, 비공식 형태로 매년 52억 DM(약 23억 달러) 규모의 물품을 동독으로 이전했다. 서독 정부의 동독에 대한 공식적 재정지원 이외의 비공식 지원은 연 평균 34억 6,000만 DM으로 전체의 2/3를 넘었다. 동독에 대한 비공식 지원은 서독인이 동독 방문 시 제공한 금품(연 10억 DM), 동독의 친지들에게 발송한 소포물품(연 7억 5천만 DM), 서독교회의 동독교회 지원(연 8,500만 DM) 등을 포함하고 있다. 서독의 정부와 민간은 동독 주민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했으며, 서독에 대한 동독 주민의 신뢰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북한 주민의 생존 위기와 부정적 대남 인식

동독은 통일당시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사회주의 발전공업국으로, 기아에 시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은 동독 주민을 배려하는 정책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비해 북한의 상황은 어떠한가? 비공식적 시장화로 북한 인구 1%인 24만 명은 가구당 연간 소득이 5만 달러에 달하는 부유층이 되었으나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으며 살고 있다. 금년 4월 초 유엔은 북한 인구 70%가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FAO도 2014∼2016년간 북한 주민 1천 50만 명가량이 영양부족 상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5세 이하 어린이의 1/4이 영양실조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작년부터 시작된 가뭄이 7월 초까지 이어진다면 북한 식량생산은 작년의 480만 톤보다 20% 줄어든 384만 톤이 된다. 이는 북한에서 대량아사가 발생한 1990년대의 생산량에 근접한 수치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식량난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 인구 중 적정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며 절반가량이 정상적인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김정은 정권출범 이후 북한 주민 중, 공식소득이나 비공식소득이 전혀 없는 층이 급증하여 인구의 1/4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실상 언제든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극빈층에 해당한다. 결핵과 간염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고 있다. 고급 간부들의 잇따른 처형을 비롯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북한의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듯 북한 주민 대부분의 삶은 고되고 절박하다.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위원회의 부산한 움직임으로 한국사회에는 통일담론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의 신뢰는 얻지 못하고 있다. 195억 원, 이는 작년 한국의 대북지원 총액이며, 그나마 54억 원은 민간이 지원한 것이다. 북한판 한류를 통해 남한의 발전과 실상을 아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각종 통계와 조사는 오히려 북한 주민의 대남 적개심과 거리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체제가 붕괴하면 남한이 아니라 중국으로 가겠다는 북한 주민이 더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북한 주민이 같은 동족보다 중국을 좋아할 리가 없건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한보다는 다소간의 도움을 주는 중국이 낫기 때문일 터다. 이 상황에서 ‘북한붕괴=통일’ 이라는 등식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통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제고되지 않고 있다. 특히 통일의 주역이 될 청소년세대의 경우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절반에 불과한 실정이다. 긍정적 통일비전 제시가 미흡한 것도 있지만 꽉 막혀 있는 남북관계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대북 인도지원정책의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국제법상으로는 2개의 주권국가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며, 북한지역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적 조건에 의해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 주민의 인도적 위기를 해소하고 고통을 경감시킬 능력과 헌법적 의무는 당연히 우리에게 있다. 혹자는 대북지원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전용가능성을 우려한다. 북한 정권의 실적으로 그칠 뿐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천에서 쌀을 실은 배가 남포로 출항하는 순간 북한 장마당의 쌀값은 떨어진다. 북한 내 식량의 총량이 증가하면 결국 취약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분단 70년, 남북관계의 틀을 변화시킬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도적 위기의 해소와 고통경감을 위한 ‘무한책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을 제안한다. 8.15광복절을 계기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조건 없이 재개한다고 발표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대북 식량지원을 포함하여 북한 식량난의 근본적 해결을 제안하고 임산부, 영유아,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지원, 간염과 결핵 등 보건의료 분야의 대폭적인 지원 등이 그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금이 아닌 물품지원이라도 상관없지만, 반드시 조건과 제약을 달지 말아야 하며 또한 지속성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인도적 지원으로 북한체제가 안정되면 오히려 안보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것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감안할 때 소아병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전쟁 중에도 상대방 병사를 치료해 주는 것이 인도주의 정신의 기본이다. 하물며 같은 동포 간 인도적 차원의 협력에 이러저러한 제약과 조건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1971년 적십자회담이 개최된 이래 북측에 대해 이산가족문제 같은 인도주의 문제는 어떤 조건도 달지 말고 순수한 자세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온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 정권이 아무리 자기 실적으로 분식해도 우리가 주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또 양자관계에서는 언제나 주는 쪽이 힘을 갖게 마련이다. 결국 생존권이 위협받는 북한 주민들을 구제하는 일 자체가 정통성의 강화이고 적극적 평화구축이며 통일시대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북한 주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통일준비다. 통일민족사를 주도해 나간다는 당당한 자세로 소량의 일회성 지원이 아닌 획기적인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아울러 비정치적 남북 민간교류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 단절상황이 지속될 경우 남북한 주민의 거리감은 커질 것이며, 통일에 대한 열기도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에서 치러진 통일박람회 내내 이 나라 지도자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으며, 카메라 앞에 웃음 짓는 그 흔한 국회의원들의 모습도 찾기 힘들었다. 진정 우리는 통일을 바라는가?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는 있는 것인가? 통일로 가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통일은 말로 오지 않는다. 광복 70년, 이제는 통일을 소원하고 꿈꿀 때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이다. 

*이 글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staff@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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