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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블리스 오블리주’

총리지명자가 언론에 다시 노출되면서 각종 논란이 튀고 있다. 그가 변호사로서 수임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의 신앙관이 공직수행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런 것은 청문회에서 잘 따져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병역과 관련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차원에서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에서 누리는 자가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는 뜻이다.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도 공직에 임한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이런 풍조는 청문회제도가 정착되면서 고위공직자들이 유행처럼 염치없이 만들어 놓은 풍조다. 오히려 병역을 완수한 자가 공직에 오른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가 되었다. 국방의 의무는 납세, 교육, 근로의 의무와 함께 국민의 4대 의무에 속한다. 국방의 의무는 여러 가지로 포괄성을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병역의 의무를 뜻한다. 그래서 공직을 수행할 사람이 병역을 제대로 수행했느냐 하는 것은 우리나라같이 항상 국방에 신경을 써야 하는 나라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6.25가 터졌을 때 고관대작의 자녀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수행한 젊은이가 많지 않다. 당시 총알받이나 다름없는 병역은 무지랭이 서민 자식들의 차지였다. 들리는 바로는 그 시대 부귀를 누리는 자들의 자녀들은 요리 조리 빠지고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도피까지 했단다. 유학생이 귀한 시절, 돌아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출세가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통해 누리는 자들에 의해서 사문화되어 갔다. 아무개도 그랬고 아무개도 그랬단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오히려 병역미필이 부와 권력의 상징인양 그걸 자랑까지 했다. 그래 그렇게 해서 출세하고 누렸던 자들이여, 병역의무를 곧이곧대로 믿고 길거리에서 징집되어 가족에게 편지 한 장 못 전하고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전사, 이제껏 뼈마저 찾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호국영령 저 무명용사에게 이제는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소..

돌이켜 보니 지체 높은 이들의 병역혜택은 조선왕조 때에는 제도적으로 주어졌다. 그때는 군역(軍役)이라 하여 그것이 서민 된 자의 의무였는데, 그들이 군대에 가는 대신 군포 2필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양반들은 군포징수에서 제외되었다. 군역을 거의 면제받았다는 뜻이다. 대원군이 양반에게도 호포를 지우기까지는 그랬다.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 나라 지키는 군역을 지지 않는 그런 나라가 어떻게 국방이 튼튼할 수 있었을까. 양반이 군포의무의 대상에서 빠지는 대신 서민에 대한 군포징수는 얼마나 가혹했던지, 5세 미만의 어린애(黃口)에게 군포를 거두는 황구첨정(黃口簽丁)이 자심했는가 하면, 이미 죽은 자(白骨)에게도 군포를 거두는 백골징포(白骨徵布)도 만연했다. 이게 삼정이 문란했을 때의 조선조다. 정다산의 <목민심서>에는 아들을 여럿 거느린 가장이, 매년 한 남자에게 2필씩 무는 군포 물기에 너무 힘들어, 그 해에는 키우던 소를 팔아 군포를 대신 바치고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성기(性器)를 베어버렸다는 서글픈 일화가 실려 있다. 왜 그랬을까? 거듭 말하거니와 그 사회의 온갖 특권을 누리는 양반들이 군역(병역)에서 제외된 이런 나라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만났을 때 어떻게 되었는가.

MB 정권 하에서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던 때, 청와대 지하벙커에 대통령 이하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10여명 모였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거기에 모인 10여명의 고위인사 중에 병역의무를 수행한 자가 몇 명에 불과했다. MB는 물론이고 총리도 미필자였다. 그런 위인들이 입만 열면 안보를 외쳐댔지만, 연평도 사건이 터졌을 때 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우리는 보았다. 또 가관인 것은 그 뒤 연평도를 방문한 병역 미필의 여당 대표에게 장군 출신의 의원이 파괴된 보온병을 포탄이라 보고하고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연평도 시찰에 임한 망신스런 사건도 있었다.

   
 

천하의 나라 걱정은 다하며 입만 열면 ‘안보’와 ‘종북 척결’을 외치는 분들, 그대들이 진정 건전한 보수요 애국자라면 왜 이런 병역미필자가 ‘장관이다’ ‘총리다’ 하면서 후보로 오르면 그냥 침묵을 지키고 있소. ‘병역까지 미필’하는 그 허약한 몸과 정신으로 어떻게 그 막중한 공직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왜 따지지 않소. 걸핏하면 목소리 높이고 그것도 모자라 고소고발하는 데에 이골이 날 이 땅의 ‘가스통 할배’들, 이런 때는 왜 굳이 침묵하고 있소. 애국에 여야가 있을 수 없는 법, 입에 거품을 물고 ‘종북’을 외치는 그 심정으로 “병역미필자는 안된다”고 소리를 높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소? “몸이 아파 3년간 병역도 미필한 분이라면 장관, 총리직을 사양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요?”라고 삿대질이라도 해야 하지 않소. 그것이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애국의 한 방법이 아닐까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 글은 이만열 명예교수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됐습니다.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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