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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과 ‘위기의 장군들’

류성룡의 <징비록>이 발간되자 동시대의 조선의 기득권층들은 이 책이 몹시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류성룡 자신도 일체의 관직을 물러나고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불편해 할 정적들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징비록>을 열독한 당사자는 일본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왜 조선 정복전쟁에서 실패했는지를 곱씹으면서 와신상담하는 그들에게 <징비록>은 훌륭한 참고서였던 것이지요. 조선에는 없었던 이런 진지함 덕분일까요? 결국 임진왜란 300년 만에 그들은 조선 정복의 성공이라는 숙원을 풀었습니다.

제가 2년 전에 <서해전쟁>을 집필하자 해군 수뇌부와 예비역들 역시 이 책을 몹시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런데 합동참모대학의 초급 장교들은 이 책에서 전술 연구에 대한 적잖은 참고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심코 사무실에서 책을 읽다가 대령급 과장에게서 “왜 그런 불온한 책을 읽으냐?”고 야단맞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방위연구소 관계자들과 한국을 연구하는 대학교수들이 제 책을 읽는다는 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분들이 책에 서명을 받는 방식은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읽기 전의 새 책에 저자 사인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제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국내에 들어와 호텔을 잡은 후 책을 쇼핑합니다. 그리고 호텔 방에서 이틀 정도 책을 완전히 정독하고 그 다음에 사인을 받으러 옵니다. 당연히 대화의 깊이가 다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위기의 장군들>이라는 기존 군 기득권층에게 더 불편한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올 무렵에 신문 서평만 보고 벌써부터 일부 예비역들이 반발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대부분 읽어보지도 않은 분들이 감정적인 반응부터 내놓더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군들끼리 자신들의 폐쇄적이고 성역화 된 문화를 갖고 있는데 왜 이질적인 사람이 들어와서 간섭하느냐는 거죠. 이게 그들에게는 자신의 권력과 명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기분 나쁜 겁니다. 혹시 후배 장교들이 이 책으로 인해 자신들을 존경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서해전쟁>을 집필하였을 당시 해군 참모총장은 저에게 사람을 보내 “이 책으로 인해 후배들이 선배에 대한 존경이 사라질까봐 우려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달하였고, 해군 법무실장은 아예 노골적으로 “책을 절판하라”고 요구하는 편지까지 보냈습니다. 사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제 책이 군 개혁에 교훈으로 삼을 대목도 많았을 것인데 우선 당장의 불편함이 싫은 겁니다. 당연히 저는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저는 책을 계속 쓸 수밖에 없는데요. 이러는 동안 일본 지식인들은 또 제 책을 읽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같은 시기에 한국군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며 더 높은 수준의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한 줌밖에 안 되는 권력과 명성에 집착하느라고 진실을 외면하려 할 것이구요. 이런 한국군의 자화상은 과거 싸우면 지기만 하던 조선의 군사지도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위기의 장군들>은 장군을 폄하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있었던 일을 쓴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는 건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참으로 딱하고 슬픈 현상입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이 글은 김종대 편집장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종대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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