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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공동비전 성명과 한국외교의 선택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5.05.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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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공동비전 성명’과 미일동맹의 현주소
지난 4월 28일 오바마 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미일관계가 적대관계에서 ‘부동(不動)의 동맹(unshakeable alliance)’으로 발전했다고 규정짓고,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변경 반대, △미일방위지침 개정에 의한 ‘동맹의 변혁’, △오키나와 미군의 재배치 등 주일미군의 재편,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협정의 조기타결 등을 골자로 하는 「미일 공동비전 성명」을 발표했다.

하루 전날에는 미국의 국무장관, 국방장관과 일본의 외상, 방위상이 만난 2+2전략대화 성명을 통해 평시, 유사시, 주변유사시의 종래 구분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영향사태’를 추가한 「2015 미일 방위지침」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 내용에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섬) 분쟁을 상정한 ‘섬 지역 방위’와 우주 및 사이버 분야에서의 미·일 협력을 명시하였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2015 미·일 방위지침」의 비판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대해, “1960년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할 때 사람들은 (일본이) 미국이 벌인 전쟁에 휘말려들 것이라고 비판했다”며 “지난 55년의 역사는 그 비판이 완전히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대답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용의자로 3년간 옥살이를 했고, 미일안보조약의 개정을 밀어붙이다 국민의 비판을 받고 사임했던 자신의 외조부 기시(岸) 총리의 행보를 정당화하고 나선 것이다.

4월 29일에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 의회 상하양원 합동연설을 했다. 예상대로 아베 총리는 이 연설에서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의 태평양전쟁 피해국가들에 대한 사과도, 종군위안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 대신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으로 미일동맹이 격상되었음을 강조하고, 올 여름까지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답했다. 이것이 바로 미일동맹의 현주소다.

   
▲ 지난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 활동을 담은 사진 ⓒ일본총리관저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미완의 과거사 청산
그렇다면 최근 들어 미국이 일본의 우경적 행태를 두둔하며 보통국가화를 적극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의 핵심적 키워드는 아시아로의 회귀이며, 그 전략적 중심에는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패권국가화를 저지하겠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 아시아로 전략적 무게중심을 옮겨오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이는 이미 「2014년 판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 일본에 대한 ‘미완의 전후처리’로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특징은 하버드대 동양사 교수 출신이자 1960년대 주일 미 대사를 지낸 라이샤워 교수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전후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중요성을 인지했으며, 한국 등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보다 공산화된 중국에 대항하는 거점으로써 일본의 가치를 재발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전후처리 과정에서 나찌즘 청산을 시도했던 유럽의 경우와 다른 태도를 취했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은 천문학적인 물적, 인적 피해를 초래한 나찌즘의 유산을 근본적으로 청산하기를 원했으며, 이는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반면, 미국은 일본의 전후처리보다 중국의 공산화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한국 등 주변국들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지배에 대한 과거사 청산을 ‘미완’으로 남긴 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통해 일본을 전범국에서 미국의 동맹으로 재탄생시켰다.

미국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함께 무장해제된 일본을 자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두는 「(구)미일안보조약」을 제정했고, 1960년 개정된 「(신)미일안보조약」을 통해 미일관계를 동맹으로 격상시켰다. 이제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로 회귀하면서 미국은 다시금 일본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이번 「미일 공동비전 성명」을 통해 ‘부동의 동맹’으로 다시 한 번 격상시킨 것이다.

‘미완’의 전후처리와 미일동맹을 특징으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기조는 2015년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지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 즉 일제 침략 및 식민지지배로 야기된 해상영토문제와 위안부 강제동원 등 과거사의 부정, 그리고 진정한 역사적 성찰이 없는 보통국가화는 최근 아베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지향성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본의 그릇된 과거사 인식에 대해 미국은 미일동맹의 강화를 빌미로 방조를 넘어 지지를 보내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최근 미국 고위관리들이 보여준 일련의 한일 과거사 발언과 미일정상회담 직후 제프리 베이더 전임 미 백악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아베 총리의 과거사 발언은 미국이 볼 때 충분한 것이었다”는 발언 등은 모두 일본의 행보를 긍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민주당 정권에서 외상을 역임했던 겜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의원의 “아베 총리는 고노담화의 취지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평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오바마 행정부 亞정책 입안자도 “아베 과거사 사죄 충분”-국민일보).

미일동맹의 강화와 한국의 외교적 선택
지난 3월 30일 외교부 재외공관장회의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 마이클 그린이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를 길들인 의기양양한 새우’라고 말한 것을 소개하면서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국내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최근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신 밀월관계’라고 평가하며, 한국외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윤병세 외교장관 AIIB 가입 자화자찬…“고래 길들인 새우” 비유 눈총-한겨레).

4월 22~23일에는 21개국 국가원수를 비롯해 91개국 대표가 참석한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주년 정상회의가 열려, 시진핑 중국주석과 아베 일본총리가 중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한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하여 인도네시아, 이란, 베트남, 짐바브웨와 정상외교를 벌였다. 하지만, 정작 박근혜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회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 황우여 교육부총리를 내보내는 등 외교력 증강의 기회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역사문제를 ‘미완’으로 남겨놓은 채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재강화 하려는 지금과 같은 외교적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미국과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역사문제를 뒤로 하고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일동맹과 손잡고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샌프란시스코 체제로의 역류를 막기 위해 과감히 중국과 손을 잡을 것인가?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것도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선택은 한국의 국익을 실현하는 자기주도 외교(self-directed diplomacy)를 구현하는 길이다. 자기주도 외교는 우리 국익에 기초해 외교전략을 수립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 나간다는 외교전략이다. 이러한 외교전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당면한 한반도문제를 주도하고 관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강대국들 사이에서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지 않고 우리 외교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주도 외교가 남북분단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한미동맹이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미동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양자동맹이라는 성격에 맞게 한반도의 지리적 범위를 넘어서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동맹의 범위가 한반도 방위동맹을 넘어 지역동맹으로 변질될 경우,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경제적·외교적 입지는 급격히 약화될 뿐 아니라 통일 실현을 위한 국제적 지지의 확보도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인식을 결여한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자칫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재강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지 않고 보통국가화를 지향할 경우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안보상황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지역동맹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한반도 방위에 국한된 한미동맹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는 일이 외교적 숙제로 남는다. 이러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한 한반도 안정화가 필요하다.

복 70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인 뜻 깊은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미일 동맹체제의 강화를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미일 동맹체제에 편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사과에 목말라 하고 미국에게만 매달리며 그냥 기다릴 수만도 없다. 중국이 부상하고 새롭게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재강화 되는 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전략의 출로는 당연하게도 남북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안정적인 남북관계 형성이야말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중국의 부상과 미일동맹의 강화라는 국제질서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 외교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아울러 남북관계의 발전은 한일 간 역사인식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가능케 함으로써, 실리외교의 토대를 훨씬 공고하게 다져놓을 것으로 믿는다.

*이 글은 평화재단 홈페이지(pf.jungto.org)에도 게재됐습니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yoomik@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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