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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 해법은 오바마의 “핵없는 세계”

북한 핵문제가 커다란 이슈입니다. 최근에 불거지는 사드배치 논란도,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연이어 대한민국을 찾고 있는 것도,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옛날과 달리 보이는 것도, 기본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데 이어 핵무기를 늘리고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4월 10일에는 애슈턴 카터(Ashton Carter) 미국 국방장관이 청와대를 찾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카터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은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고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집하고 있는데 과거와 같은 북한의 도발과 위기조성, 타협, 보상, 도발의 악순환은 용납될 수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그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인권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통일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체제를 붕괴시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그러니까 사실상의 흡수통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박근혜 대통령, 카터 美 국방장관 접견).

북한의 핵개발, 그리고 한반도 핵문제가 세계에 알려진 지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북한의 핵을 제거하기 위해 대북전쟁도 계획해보고,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하기도 하고, 북한에 대한 냉전과 정보전, 사이버전도 해보고,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며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피나는 노력과 반대로,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지하 핵시험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북한 핵무기는 이제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핵보유는 사실로 인정받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폐기는 과연 가능할까요? 북한 핵을 폐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북핵문제의 해결방법을 살펴보려면 한반도 핵문제의 뿌리부터 추적해야 합니다.

미국의 핵 위협으로 자라난 북한 핵
북한의 핵 활동은 연구단계까지 포함하면 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 핵을 이해하려면 지난날 북-미가 전면전을 치렀던 6·25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53년 7월, 6·25전쟁은 휴전에 들어갔지만 평화회담으로 이어져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한반도 영구주둔을 담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이어 1958년부터는 대한민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1956년 11월 작성된 미 극동사령부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한국은 당시 일본기지와 함께 14개의 핵무기 예비기지로 이미 지정돼 있었다고 합니다. 이 문서의 ‘무기배치력(WEAPONS DISPOSAL CAPABILIY)’ 목록에는 의정부와 안양리 등 한국의 두 곳이 포함돼 있었습니다(Far East Command Unclassified).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배치는 계속 늘어나 1967년에는 대략 1000여기에 육박하게 됩니다.

1975년 5월 30일, 미국 민주당 소속 의원인 델모스는 미 하원 심의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에 1,000여 발의 전술 핵무기와 54대의 핵 적재기를 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2005년 10월 9일,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정보공개법(FOIA)에 의해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한 주한미군 핵무기 배치 현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최 의원은 군산의 미 공군기지에 1977년까지 중력탄 192개 등 최소 453개의 핵무기가 존재했으며, 1985년에는 151개의 핵무기가 한반도 지역에 추가 배치되는 등 1958~91년에 11개 종류의 핵무기시스템이 16곳에 배치됐거나 배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91년까지 남한내 16곳에 핵무기 배치" .. 최성 의원 주장).

최성 의원은 ‘주한미군 핵 수송 및 배치 현황도(1958~1991)’라는 자료를 통해 핵무기가 배치된 곳으로 서울 용산, 서울 도봉산, 경기 오산 공군기지, 춘천 캠프 페이지, 군산 공군기지, 대전 캠프 아메스 등 6곳을 지목했습니다. 핵무기 배치 추정지역으로 의정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 캠프 에세이온스, 동두천 캠프 케이시, 수원공군기지, 대구 캠프 헨리, 부산 캠프 하야리아, 광주 공군기지 등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대한민국의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주요 대도시에 핵무기를 배치했거나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자 주한미군은 1991년에 이르러 대한민국에 배치한 핵무기를 철수시켰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트라이던트 등으로 행태가 진화한 채 태평양함대와 한반도에 인접한 미군기지에서 여전히 북한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 핵문제의 중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핵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반대로 1958년까지 주둔하고 있던 중국군을 모두 철수시켰습니다. 북한은 미국의 핵무기에 직면해 국방력 강화에 집중하였습니다. 마이클 J. 마자르는 [북한핵 뛰어넘기]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확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난 1950년대부터 나타났다. 북한의 핵추진 정책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제스처라기보다는 미국의 위협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핵위협은 한국전쟁 이래 줄곧 북한의 전략적 사고와 행동을 규정지어 왔으며 북한지도자들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촉발케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라고 서술하였습니다.

북한은 1962년 12월, 조선노동당 제4기 5차 전원회의에서 ‘국방에서의 자위의 원칙’에 따라 경제발전과 군사력을 함께 강화한다는 ‘국방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전 인민의 무장화, 전 군의 간부화, 전 군의 현대화, 전 지역의 요새화라는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였습니다. 북한의 군사중시는 미국의 핵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4대군사노선이 대남적화통일야욕의 발로라고 배웠던 우리에겐 깜짝 놀랄 내용입니다(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

6.25 전쟁 이후 북-미의 대결이 이어진 결과, 오늘날 한반도 핵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핵연구, 그리고 충돌
북한은 1962년 평안북도 영변과 박천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2MW 핵연구로 IRT-2000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3년에는 국방연구원에 원자력공학과를 두고 과학연구소에도 원자물리학과를 두었습니다. 1965년, 영변에 연구용 원자로가 완공되고 작동이 개시되면서 북한은 기초적인 핵기술을 완성하였습니다. 중국의 핵시험이 1964년이었음을 감안하면 북한의 핵연구는 상당히 빨랐던 셈입니다.

북한은 1973년에 이르자 김일성종합대학 내에 핵물리학과를 신설하였으며 김책공업종합대학에는 핵전기공학과와 연료공학과, 원자로공학과를 설치했습니다. 핵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 연구기반과 인적 자원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이미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관련 전문인력이 3000명 가량이며 핵 관련 기술자들도 6000여명 수준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북한은 1974년 3월에는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그 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면서 평화적 핵개발 활동을 공식화했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 초부터 평화적 목적의 공개적인 핵개발을 추진하였습니다. 북한은 1980년 7월부터 5MW 흑연감속로 설계에 착수하였으며 19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1986년 10월부터 영변의 5MW 원자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였습니다.

이 시기까지의 북한 핵은 군사적으로는 무의미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미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경제적으로는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가 되자 이른바 ‘북한 핵위기설’이 대두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핵연구에 정치적으로 긴장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한 것입니다.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한반도 밖으로 옮긴 미국은 대한민국 땅에는 핵무기가 1발도 없는데 북한은 핵을 개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은 대남적화통일 야욕의 발로라며 대북군사적 압박태세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은 그야말로 시험용 원자로라서 대전의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보다도 더 작았다는 점이죠. 시험용 원자로가 대남적화통일 야욕의 결정적 증거로 된 셈입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전쟁의 문턱까지 도달했습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6월, 북한의 영변 핵발전소에 대한 폭격계획을 세우고 구체적 작전계획을 확정한 것입니다. 미국은 폭격에 앞서 주한미군 가족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이른바 ‘전쟁위기’가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그제서야 한반도 전쟁을 인식하고 안절부절 못하였습니다. 훗날 김영삼 대통령은 본인의 회고록에 그때 자기가 클린턴 대통령을 만류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조엘 위트, 대니얼 폰먼, 로버트 갈루치 등이 쓴 <북핵 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 협상>에 따르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시종일관 밀어붙인 것은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었고,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며 1994년 전쟁위기의 책임을 한국정부에 떠밀었습니다.

1994년의 전쟁위기가 가까스로 파국을 면하게 된 것은 그 해 6월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급히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카터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북한핵문제와 북한체제보장 등의 복잡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본적인 방향을 합의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북-미는 핵과 체제보장을 다루는 외교적 협상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핵 폐기와 북한체제보장을 맞교환하는 “제네바 합의”가 타결되면서 한반도 전쟁위기는 일정하게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국
그러나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급서한 데 이어 1995년부터 북한의 경제난이 본격화되자 미국은 북한체제가 곧 붕괴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북한은 망할 것이니, 제네바 합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지켜 영변 핵발전소를 중단하였지만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북한 측 표현을 빌리면 신포경수로는 “구덩이만 파놓은”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예측과 달리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1990년대의 극심한 경제난에도 살아남자 미국은 다급해졌습니다. 2000년, 부시행정부가 집권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을 전면화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칭하며 핵태세검토보고서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핵선제타격설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미국의 핵태세검토보고서). 부시행정부가 핵선제타격 검토로 북한에 대한 원초적 적개심을 드러내자, 북한은 그 동안 정치적 안건이었던 핵문제를 군사적 카드로 전환시켰습니다.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입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가 표류하고 부시행정부의 일방적인 대북적대정책이 전면화되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2005년 2월 10일, 핵보유 선언을 하였습니다(핵 보유를 공식 선언한 북한). 그리고 2006년 10월 9일, 제1차 지하핵시험을 단행해 핵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북한 핵은 한반도 최대의 군사현안으로 부각되었고 이른바 북한 핵 보유설은 북한의 지하핵시험을 통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핵보유국에 진입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제1차 지하핵시험을 하였으며 2009년 5월 25일에는 두 번째, 그리고 최근인 2013년 2월 12일에는 세 번째 지하핵시험을 단행하며 지금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능력을 살펴봅시다. 2011년 6월 14일,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미 두 차례 핵실험을 했던 북한이 지금쯤이면 핵무기 소형화에도 성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MBC>는 “전문가들은 북한이 40kg 가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면 소형화된 핵무기는 20개 정도 보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 3호>에 대해 미국이 유엔을 앞세워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또 다시 핵시험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가장 최근에 있었던 북한의 제3차 지하핵시험입니다;.

기상청은 2013년 2월 12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규모 5.1의 인공지진이 감지됐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국방부는 “북한의 3차 핵실험 감행을 공식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일 정부 산하 연방지질자원(BER) 연구소는 북한 핵시험의 인공지진의 규모를 진도 5.2로, 미국 지질조사국은 5.1로 각각 분석했습니다.

당시 정승조 합참의장은 2013년 2월 6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해 “완전한 수소폭탄이라고 하면 핵융합 폭탄을 의미할 텐데, 완전한 수준의 수소폭탄에 이르기 전 단계의 위력이 증강된 탄의 단계가 있다”며 증폭핵분열탄(boosted fission weapon)을 언급하고 “그러한 부분을 시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발언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소폭탄은 그 폭발력의 대부분을 수소 행융합 반응에 의존합니다. 증폭핵분열탄은 수소의 핵융합 반응이 발생하긴 하지만 중심폭발력은 고전적인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원자탄 핵분열 반응에 의거하고 수소의 핵융합 반응은 이를 단지 “증폭”시키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폭탄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승조 합참의장은 북한의 핵무기 실용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사일 탑재는 핵실험 후 4년 뒤가 일반적”이라며 “북한은 2006년 1차, 2009년 2차 핵실험을 했고 지금이 201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핵무기 소형화 수준이 상당 부분 진전됐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답했습니다(증폭핵분열탄, 핵탄두 소형화 가능···파괴력은 5배). 많은 분들은 북한 핵은 아직도 히로시마 급의 조잡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군의 판단은 그와 달랐습니다. 북한이 원자력을 50년간 연구해왔다는 점을 유념해야겠지요.

제3차 핵시험 이후 국방부 관계자는 지진파가 4.9로 줄어들었다며 “북한의 핵실험 폭발력이 (수소폭탄 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에는 못 미친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반론들이 존재합니다. 당시 <서울신문>은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우리 정부가 북한핵시험의 세기를) 한 시간 만에 5.1에서 4.9로 낮췄는데 (폭발규모가 TNT) 10킬로톤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온 값인 것 같다”며 “왜 이렇게 일관성있게 과소평가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본 ‘북핵 프로세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학과 교수는 “핵실험장에 완충장치를 설치했다면 실제 폭발력은 추정치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지질에 의한 효과나 폭발이 일어난 깊이 등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핵증산에 나선 북한
북한의 제3차 핵시험을 계기로 북-미간에는 첨예한 군사적 대결이 이어졌습니다. 치열한 대결의 와중에, 북한은 사실상의 핵증산을 선언해버렸습니다. 2013년 3월 3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입니다. <병진노선>은 핵무기를 늘려 재래식 무기를 대체하고 그 여유분을 경제에 투입해 경제도 함께 발전시킨다는 주장입니다(北 "영변 5㎿원자로 재가동"…核·경제 병진노선 실행).

북한이 플루토늄과 더불어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탄두도 개발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은 채굴 가능한 매장량만 400만톤에 이릅니다. 북한은 2010년 11월, 지그프리드 해커 미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장에게 농축우라늄 설비를 공개했습니다. 북한의 플루토늄 등 핵물질은 대략 40kg내외로 알려졌지만, <병진노선>을 기점으로 우라늄 농축설비는 최대한으로 가동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 핵물질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의 핵증산을 선언한 북한은 이제 다양한 핵공격수단들을 계속적으로 생산해내면서 이를 실전배치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미 북한은 제3차 핵시험 당시 그들의 핵능력을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었다고 자평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지금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핵무기가 최악의 경우 5년 뒤에는 100여기에 이를 수 있다, 북한의 핵공격을 막으려면 MD를 더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등의 전망이 이어지며 미국사회를 갈수록 분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은 북한전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고서는 날로 늘어나는 북한의 핵탄두를 저지할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실패한 북핵폐기
지난 20년간 이어진 한미연합군의 북핵폐기 정책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실패입니다. 북한의 핵은 폐기되기는커녕 핵무기로 전환되었음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하핵시험만 3차례를 했습니다. 그 폭발양상도 지속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북한은 사정거리가 1만 ㎞로 추정되는 장거리발사체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컴퓨터로 제어되는 정밀가공 공작기계도 만들고 있고 최근에는 LCD 모니터와 스마트폰까지 조립생산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핵탄두를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북한핵에 대응한 외교적 접근이 그나마 통했던 것은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이었습니다.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은 북한과 관계개선을 약속하였고 그 결과 북한은 10년간 영변 핵발전소를 동결하였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매년 제공하였지만, IAEA가 영변 핵발전소에 설치한 CCTV를 통해 북한의 핵활동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6자회담의 과정에서 9.19 공동성명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미국은 2008년, 북한의 냉각탑 폭파를 이끌어내기도 하였으며 북한으로부터 1만 8000쪽에 달하는 냉각탑 사용일지를 제공받기도 하였습니다.

해법은 대화였습니다. 지금 보수진영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퍼주기가 북한 핵을 낳았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미국의 대북 군사적 위협이 북한 핵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적대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이 늘어날수록 적대정책의 도수도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제 대한민국에 들어온 탈북자들과 함께 대북전단을 날리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문제를 공론화해서 북한체제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흔들어보겠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당연히 북한 수뇌부 인사를 회유하고, 변절하게끔 공작을 펼칠 것이고, 때로는 북한 요인들에 대한 암살시도를 비롯한 테러도 검토할 것입니다. 실제로 2015년 1월 31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CIA가 2008년에 이스라엘 모사드와 합작으로 헤즈볼라 사령관 이마드 무그니예를 암살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헤즈볼라 사령관을 암살하는 미국이 북한요인에 대한 암살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은 순진한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전면전 시도, 외교전, 경제제재, 정보전, 사보타지, 사이버전은 모두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 핵무기만 계속 늘어났습니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한 핵폐기는 없다고 합니다.

한반도 핵문제의 유일 시나리오
물론 북한핵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핵대결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반도가 핵무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평화가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한핵은 어떻게 해야 폐기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북한핵을 강압적 방법으로 폐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핵무기를 배치한 북한을 군사적으로 붕괴시킨다는 것은 막대한 희생이 뒤따르게 됩니다.

지금처럼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해서는 북한핵은 폐기가 아니라 더욱 늘어나고 말 것입니다. 북한경제는 1990년대의 최악의 상황을 뚫고 갈수록 개선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경제 여건이 호전됨에 따라 북한은 <병진노선>대로 핵증산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미국과 한국보수세력은 북한핵을 결코 인정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북한급변사태설입니다. 그런데 북한체제를 내부적으로 붕괴시킨다? 90년대 경제난에도 붕괴되지 않은 북한체제입니다. 탈북자들이 대북전단을 보낸다고 북한이 과연 붕괴할까요?

결국 북핵폐기는 북한이 요구하는 북한체제 보장과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70년을 경과하였고 미국과 북한의 상호불신은 매우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체제를 보장한다고 약속을 해봐야 북한이 그 약속을 믿을 리 없습니다. 이미 미국은 유사한 “약속”을 뒤집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체제를 붕괴시켰고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을 납득시키고 그들이 핵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서 북-미가 함께 핵을 폐기하고 나아가 세계 모든 핵보유국들이 동시에 핵을 폐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핵없는 세계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오바마의 핵없는 세계
미국의 핵포기는 망상이 아닙니다. 미국은 이미 전세계 국방예산의 40% 가까이를 독점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군사대국입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가 1척도 유지하기 힘든 항공모함을 11척이나 보유하고 있으며 각종 스텔스 전투기와 폭격기, 원자력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한-미 군사동맹과 미-일 군사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각종 군사협정으로 사방에 든든한 동맹군을 포진시키고 있습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상에 보장된 핵보유국들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영국, 프랑스입니다. 이들만 결심하면 “핵없는 세계”를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핵없는 세계”는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입니다. 2009년 4월 5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전망을 제시했습니다(오바마 대통령 연설 “핵없는 세상”). 오바마 대통령은 이것으로 노벨평화상도 받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전 세계 핵보유국이 모두 핵을 포기하는 용단을 내려야 합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유훈관철을 강조합니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최우선과제로 상정하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북한은 비핵화의 당위성을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줄기차게 그들의 핵보유를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 만큼 미국이 핵없는 세계를 외치며 동시 핵폐기를 제안한다면, 북한은 이를 거부할 근거가 없습니다.

“핵없는 세상”은 전 세계 모든 진보적 인류의 소망이었습니다. 세계 핵보유국들이 순차적으로 핵을 줄여나가 종국적으로 지구상의 핵무기를 종식시키는 것. 오바마 대통령이 약속한 “핵없는 세상”은 미국만 결심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urisociety.kr)에도 게재됐습니다.

곽동기  dkkwak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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