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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라고요? 그러나 사실입니다”연세대 김경일(중문과·4)씨, 11살 때 공안에 잡혀 ‘수용소’ 行


“탈북자가 북송되면 어린아이까지 죽인다는데, 너무 과장된 것 아닌가요? 너무 자극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질문을 던지자, 연세대 김경일(중문과·4년)씨는 “자극적이라고요? 사실인 것을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1997년 10월 17일에 탈북했다. 당시 나이 아홉 살이었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 탈북을 결심했고, 한국으로 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가족들과 함께 중국에 터를 잡았다. 다행히 그곳에서 한국 선교사를 만났다.
“중국에 오자마자 선교사님을 만났어요. 저는 행운아였던 거지요. 일반 한족학교에도 다녔어요. 성경공부도 했고요. 정말 평화로웠지요.”


11세 때, 가족들 모두 북송..보위부 조사받아

그러나 그 평화는 1999년 8월 23일 깨지고야 말았다. 경일 씨가 11살 때였다. 9월에 시작되는 새학기를 앞두고 교과서와 학용품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AK소총 총부리였다. 그는 “여기서부터 진짜 인생의 시작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후송되는 기차에서 기도했어요.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요.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으로요. 멈추게 해주세요, 기도했지만 기차는 점점 더 속력이 붙더라고요.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어요. 도착하자마자 보위부 사람들이 저희 가족들을 질질 끌고 나갔죠.”

가족 전체가 탈북을 하는 것은 중죄였다. 경일 씨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봐야 했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비참하게 밟히는 장면은 11살 소년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당시의 장면을 잊지 못해요. 어머니는 그때에도 ‘무조건 엄마 따라왔다고 해라. 너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해라. 바보인 척해라’라고 말씀 하셨어요.”

온 가족이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시키는 대로 “엄마를 따라왔다”고만 하였다. 그리고 가족들과는 이별을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보위부 지하에서 2년을 더 있었다고 한다. 경일 씨는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후송되었다. 무서운 마음에 다른 가족들을 걱정할 여유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한밤 중에 숨넘어가는 소리

경일 씨가 후송되어 가는 곳은 ‘직결소’라는 곳이었다.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풀려나기 위한 절차였다. 원래 살던 곳(고향)과 가까운 직결소로 후송되는 것이었다. 후송기간은 6개월이나 걸렸다. 모든 도마다 직결소가 있었고, 여러 곳을 거쳐야 고향인 함경북도 온성에 닿을 수 있었다. 직결소 생활은 수용소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맞고 노동하는 일이 전부였어요. 어린아이들은 환자호동에 있어요. 그 사람들은 화장실에도 갈 힘이 없어서 구석으로 가서 대변을 봤어요. 방구석에 배설을 하는 거죠. 똥이 허리높이까지 쌓여요. 제가 막내니까 그 옆자리가 항상 저고요. 병이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에요.”

죽는 사람들도 너무 많이 봤다. 밤에 자고 있으면 “컥컥..커거걱”하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단다. 어제 저녁까지 저와 먹는 이야기를 나눴던 분이 아침이 되면 하얗게 식어 있는 것이다.

같은 시간 어머니는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첫 재판에서 25년형을 받았다. 진술서에는 ‘배고파서 나간 것도 죄냐’는 내용만을 반복해서 적었다. 세 번의 재판이 있었고, 평양에서 온 사람에게 조사를 받고 나서야 감형이 되어 풀려났다. 경일 씨와 어머니가 재회한 것은 2005년 한국에서였다. 서로의 생사를 모르고 있던 터에 한국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으니 그곳은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곳이라 했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겪었던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다 아프더라고요. 어머니는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해주려 하시는데 뻔히 그 상황이 보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또 제가 부모님을 그곳으로 보낸 것이 아닌가, 죄책감도 들고요. 언론에서 이런 이야기 하면 자극적이라고 하는데, 어떡해요. 사실이에요.”


   
▲ 경일 씨는 현재 연세대 중앙동아리 ‘통일한마당’의 회장을 맡고 있다. 남한 학생과 탈북 학생이 한 데 모여, 통일을 준비하는 모임이다.(‘탈북 공동체 속으로’ 코너를 통해 소개 예정) ⓒ유코리아뉴스


사실이지만 지금은 소통할 때

그러나 경일 씨는 북한인권문제에 섣불리 나서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이용을 많이 당한 탓이다. 자극적인 내용이 사실임을 몸으로 겪었고 눈으로 보았지만, 그것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학생으로서 그것을 한 번에 변화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정치색을 강하게 내고, 북한인권 문제에만 치중을 하면 평범한 학생들과 소통하기가 어려워져요. 서로 토론하면서 배워가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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