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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청산 수준을 목격한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보면서, 독일의 역사청산을 떠올린다. 젊은 검사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검사라는 자리가 그런 식으로 다뤄져도 괜찮을지? 참, 그들의 논리가 이상하고 야릇하다!!! 과연 그런 식으로 말하며 넘어가도 맞을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일 나치 처벌은 철두철미하다. 말단 장교 신참 소위였다 할지라도 유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근무했다면 독한 처벌을 망설이지 않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미에라도 찾아가 독일 나치 청산 재판대에 세운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불의와 불법에 저항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가 명령 집단 군대에서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그저 하라는 명령대로 복종하며 자기 자리에서 근무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불법에 동조한 자이기 때문이다. 탈영하지도 않았으며, 불의의 나치에 대항하지도 않고 결국 공범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나치는 600만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젊은 검사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그 무서운 독재 시절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맞는 말일 수 있다. 논리적일 수 있다. 순간 국민을 불의와 불법으로 호도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말들은 역사의식 부재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거꾸로 묻고 싶다. 한 젊은 대학생의 죽음이 무슨 역사를 바꿀 수 있겠는가? 묻는다면,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역사는 한 사람 젊은 힘없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결정적으로 열었다.

사실 역사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칼빈도 젊은 무명의 신진이었다. 그런데 20대 30대 그들이 잘못된 지도자, 불의한 시대를 대적해 일어섰을 때 새 시대 새 세상이 도래했다. 역사를 바꾸었다.

   
 

그런데도 한국이 만약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의 역사인식 내지는 역사의식은 일본의 역사의식을 그대로 닮아 있다. 만약 이런 식으로 불의의 시대에 적든 크든 야합한 자들을 어쩔 수 없었다고 옹호해 준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캄캄하다. 사실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우리 시대 마지막 양심의 보루가 아닌가! 어찌 그런 식으로 역사를 호도하며 살려 하는지? 왜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다본다.
구름 하늘을 쳐다본다.

주도홍/ 백석대 기독교학 교수, 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

*이 글은 주도홍 교수님의 페이스북(/pauldohong.jou)에도 게재됐습니다.

주도홍  joud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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