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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을 배격하던 옛날의 목민관

『목민심서』를 읽어보면 옛날 어진 목민관들의 훌륭한 인품과 뛰어난 정사(政事)를 알아볼 수 있는 대목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산의 대선배로 다산이 직접 상관으로 모시면서 함께 벼슬했던 유의(柳誼, 1734~ )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여러 곳의 목민관 생활을 하였고, 뒷날에는 대사헌(大司憲)·참판(參判) 등의 고관을 역임했던 뛰어난 벼슬아치였습니다. 다산은 『목민심서』의 여러 곳에서 유의의 행적을 높게 평가하는 내용을 소개하였습니다.

“참판 유의가 홍주(洪州) 목사로 있을 때, 찢어진 갓과 성긴 도포에 찌든 색깔의 띠를 두르고 조랑말을 탔으며, 이부자리는 남루하고 요도 베개도 없었다. 이리하여 위엄을 세우게 되니 가벼운 형벌도 내리지 않았으나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赴任:治裝)라고 말하여, 자신이 홍주목의 소속이던 금정도 찰방으로 근무하면서 상관인 홍주목사 유의의 행실을 목격했노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은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는 것이 아전들을 단속하는 근본임을 알게 되었다(知律己爲束吏之本)”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청렴하고 자신의 행동에 절제가 있던 유의가 청탁을 깨끗하게 배격했던 목격담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참판 유의가 홍주목사로 있을 때, 나는 금정역 찰방으로 있었다. 목사에게 편지를 보내 공사(公事)를 의논했으나 답장이 없었다. 뒤에 홍주에 가서 서로 만나 말했다. 왜 답장을 주지 않았습니까. 그가 답하기를, ‘나는 수령으로 있을 때는 본래 편지를 뜯어보지 아니하오.’라고 말하고 아랫사람에게 명하여 서류 상자를 쏟아 내리니 상자의 편지가 하나도 뜯기지 않았는데, 이는 모두 조정의 귀인들의 편지였다. 그래서 내가, ‘그거야 그럴 것이지만, 내가 말한 것은 공사였는데 뜯어보지 않아서야 됩니까.’라고 말하자, ‘만일 공사에 속한 것이라면 왜 공문으로 보내지 않았소.’라고 하였다. 내가 ‘마침 그것이 비밀에 속한 일이었소.’하니, 그가 ‘만일 비밀에 속한다면 왜 비밀히 공문으로 보내지 않았소.’라고 하기에 나는 거기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가 사사로운 청탁을 끊어버리는 것이 이와 같았다.”(律己·屛客)

다산은 자신이 직접 당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여 유의라는 어진 목민관의 깨끗하고 공정한 행정을 높이 칭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결백하고 지나치게 막힌 사람으로도 보이지만, 조선이라는 세상은 온통 청탁 관행이 만연해 있던 시대였음을 감안한다면, 유의의 과도한 배격은 역시 훌륭한 조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참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세상입니다. 그 모든 잘못 중에서도 ‘청탁’이야말로 가장 큰 부정과 부패의 근원입니다. 이런 것을 막자고 ‘김영란법’ 같은 것도 논의되었는데, 유의 같은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 제발 부당한 청탁문화( )가 근절되기만을 원하고 바랄뿐입니다.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www.edasan.org)에도 게재됐습니다.

박석무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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