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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자의 책임

가진 자, 누리는 자들의 책임과 의무가 점차 실종되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볼썽사나운 꼴들이 사과 한마디로 예사로 무사통과되고 있다. 서민들에게는 사법적 잣대를 댔을 주민등록법 위반, 병역비리, 탈세 등의 불법이 인사청문 대상자에게는 어쩜 그렇게 뻥 뚫린 그물망으로 되어 버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를 허탈하게 보고 있는 백성들은 무엇을 배울까.

가까운 이웃에는 이런 행적이 있었다.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여순 공략에서만 6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 이 전투는 노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것이었지만, 승리하고 돌아오는 노기(乃木希典) 장군은 일본의 부모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정작 이 전투에서 자기 아들을 희생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 국민들은 ‘노기 장군 만세’를 불렀다. 중공의 한국 참전 때 마오쩌뚱(毛澤東)은 그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을 참전시켰다. 중국 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는 마오안잉을 군관으로 복무시키고자 했으나 마오는 반대했다. 마오안잉이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오는 “중국 인민군 수십만이 죽고 있는데 어찌 내 자식만 살아 돌아오기를 기대하겠는가”라고 하면서 그 시신마저 중국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여 예외를 두지 않았다.

더러 이런 질문을 한다.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 그렇게 충효를 강조하던 조선에서 몇 명이나 목숨을 끊었는가. 금산군수 홍만식과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 등 손꼽을 정도다. 거기에 비하면 고려가 망할 때에는 그래도 두문동 72현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조가 망할 때 국록을 먹은 자들 중에서 두문동 72현 같은 이들은 몇이나 나왔는가. 그보다 더 많은 76명에게 일본의 작위가 수여되었고, 또 더 많은 관료들에게 은사금이 주어졌다. 일제에 의해 재임용된 구한국 관료들은 감지덕지했다. 그래서 “조선조는 망해도 더럽게 망했다”고 비아냥거리는 항간의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말끝마다 충효를 외치며 벼슬을 누렸던 이들은 다 어딜 갔나.

그렇다고 한국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지도자의 전범(典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는 나라 망한 책임을 지고 망명하여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은 선진들이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와는 다른 경우가 삼국시대 말기에도 보인다. 660년 황산 전투에서 신라의 김유신은 5만의 병력을 거느리고도 백제 계백의 5천 결사대에게 4전4패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라군의 부사령관 김흠순은 그의 아들 화랑 반굴을, 부사령관 김품일은 그의 아들 소년 화랑 관창을 먼저 희생시켰다. 그러자 이들 지도자의 솔선수범을 본 5만의 신라 군대가 목숨을 내놓고 그 방어선을 뚫었다. 황산 전투의 승리는 이들 지도자의 자기희생의 대가다.

김유신의 가정교육도 누린 자의 책임과 의무를 보여준다. 당나라가 한반도를 삼키려 하자 신라는 8년간의 대당혈투에 나섰다. 임진강 유역의 석문전투(672)에서 김유신의 아들 원술 부대는 거의 전멸했다. 간신히 살아난 원술이 부친을 찾아갔지만 김유신은 그를 맞아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김유신은 '임전무퇴'의 화랑의 계율을 어긴 원술을 자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유신이 죽자(673) 원술은 그의 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나 지소 부인 또한 그 자식을 내쳤다. 그러나 김유신가의 이 같은 엄한 교훈이 원술을 역사에 살아남는 존재로 만들었다. 675년 당나라 이근행이 이끈 20만 군이 의정부 근처 매초(매소)성을 공격했을 때 신라는 당의 군마 3만여 필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뒀다. 이 싸움은 나당간에 반도 안에서 치러진 가장 큰 전투로 당군 20만이 거의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이는 원술이었다. 김유신가의 노블리스 오불리주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부끄러워 참아 꺼내기 싫지만, 지난 정권은 대통령부터 국무총리, 상당수의 고위직과 여당 대표까지 병역미필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병역미필정권’이었고, 그래서 ‘보온병’ 망신까지 당했다. 이게 입만 열면 안보를 강조했던 보수정권의 민낯이었다. 제나라 작전통제권을 남에게 진상하고, 미·중 관리들이 이 땅에 들락거리며 드잡질을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 ‘안보무능정권’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런 정권일수록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질타하고, 자신들은 청와대 벙커에 숨는 법이다. 값비싼 돈 들여 군비를 들여오면 뭣하나. 그런 안보방식보다는 정권에 기식하고 있는 불법병역미필자를 추방하는 것이 튼튼안보의 첩경이다.

   
▲ 지난해 10월 23일(현지 시간) 미국 국방장관 척 헤이글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2020년 이후로 연기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에 사인한 뒤 교환하고 있다. ⓒ 미국 국방부

가진 자, 누리는 자들의 책임이 어찌 병역의무에만 국한되겠는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가계부채와 국가부채의 신음소리,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데, 이 땅의 보수와 누리는 자들은 이를 외면하려 한다. 공동체가 붕괴되면 그들의 누림인들 안전할까. 이런 때에 생각나는 것이 바로 수만금을 독립운동에 바친 우당 6형제요, 홍만식 황현 같은, 누린 자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의식하는 이들이다. 이게 진정한 보수다. 전작권을 타국에 헌상해도 찍소리 안하면서 여차직하면 가스통 들고 종북을 외쳐대는 자들이 보수가 아니다. 가진 자들, 누리는 자들의 '노블리스 오불리주'가 입과 폼만 가지고 되는 법이 결코 아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위원장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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