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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북송된 31명의 탈북자들을 보며[기고] 주도홍 기독교통일학회 회장(백석대 교수)
   
 

31명의 탈북자들이 암울한 북한 땅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쓰라리다. 그들과 함께 울고 싶다. 사실 탈북자의 눈물과 한숨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오래된 분단의 거대한 고통이다. 최저 삶도 충족되지 않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였고, 중국에 숨어 살다 중국 공안에 잡혀 다시 북한으로 북송되는 사건은 여태껏 반복되어 왔다.

김정은 정권 들어 모델로 공개처형하겠다는 협박 앞에 이번에 잔인하게 중국에 의해 북송된 그들의 한숨과 절규는 가슴을 도려내는 히틀러 권력의 잔인함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이래서는 결코 안 되는데 늘 인간들은 권력 앞에서, 그 권력을 위해 이런 일을 수없이 반복하여 왔다. 요사이 저질러지는 시리아 독재정권의 무차별적 만행 앞에서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침묵하고 동조하는 중국정권을 향해 안일하게 기대했던 한국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번지르르한 속빈 강정이었다. 역시나 비 인권적 중국은 이미 예측된 그 길을 지금까지 했던 대로 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중국 내 탈북자를 향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처방은 일대전환이 요구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분명히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북한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과 북한 독재 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아야 한다. 한반도의 반쪽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둘째, 남북 분단의 아픔과 현실을 정확히 이해함이 요구된다. 분단구조가 가져다 준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잔인함의 실체를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셋째, 정치권력의 속성을 꿰뚫는 안목이 요구된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허울 좋은 권력자들의 추구를 확인할 뿐 아니라, 중국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인식한다.

넷째, 함께 해야 하는 민족 공동체의 아픔이다. 탈북자들의 비참함을 넘어서 오늘 한반도의 비극이 어떠한 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의식을 확실히 가져야 할 것이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를 아무리 불러댄들 두 동강난 한반도는 수치요, 슬픔이라는 사실이다.

다섯째,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의 근원적 재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이 꼭 맘에 들어야 떡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속담에도 있듯이, 문제아, 미운 놈도 떡을 아니 떡을 더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혜로운 교육자의 입장에 서면 가능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듯이, 순수하게 인도주의 입장에서 한국정부가 어려움에 빠진 북한동포를 도우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때에 한국교회는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에로의 갈망, 기도 그리고 노력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하겠다. 사실 한국교회는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이 하나님이 한국교회에게 요구하시는 크고 놀라운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지 꽤 오래되었다. 어느 사이 한국교회의 기도소리는 줄어들었고, 통일을 향한 설교소리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는 한국교회가 분단을 넘어서는 통일에로의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아무리 세계선교를 외치고, 목 놓아 이웃사랑을 부르짖어도 2400만 북한동포를 향한 하나님의 숙제를 잃어버린 한국교회는 망망대해 가운데서 표류하는 배, 언제 깊은 바다 물속으로 잠길 줄 모르는 갈 길을 잃은 파산선과 다름없다.

한국교회는 다시 붙잡혀 들어가는 31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 할 뿐 아니라, 참으로 안타까운 분단 현실에서 하나님의 숙제를 잊어버린 채 영적 장님이 되어 있는 안일한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는 주님의 음성이 내 심령을 파고드는 순간이다.

 

주도홍  joud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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