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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의 비밀을 통해 본 분단 70년의 극복 방향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5.03.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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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카우프(freikauf)의 비공개 추진이 통일을 촉진

“한국형 프라이카우프를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2015년 2월 취임 직후 납북자문제 해결을 묻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무총리가 말한 답변이다. 프라이카우프와 관련된 한국 고위당국자의 발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해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검토하겠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통일부장관의 발언이다. 2009년 11월 국회 대정부 질문 중, 국군포로와 납북자문제 해결에 관한 당시 통일부장관의 답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한국형 프라이카우프를 통해 자유를 찾은 납북자나 국군포로는 단 한명도 없으며, 이산가족문제가 해결된 사례도 없다.

프라이카우프는 동서독 분단체제에서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오던 사업을 말하며, 1963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1989년까지 지속되었다. 사업이 지속된 26년간 3만 3,755명의 동독 정치범이 서독으로 넘어왔으며, 이에 대해 34억 6,400만 마르크(약 15억 달러) 규모의 생필품이 대가로 동독에 지급되었다. 동독 반체제 인사 1인당 약 10만 마르크를 지불한 셈이며, 이는 당시 서독 1인당 국민소득의 5배를 상회하는 큰 금액이었다.

사업은 서독 정부의 지원하에 서독 교회와 동독 비밀경찰을 창구로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당시 서독의 유력 언론이었던 <슈피겔>지가 프라이카우프 관련 내용을 보도했을 때 서독 정부는 사업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으며, 나중에는 언론사 편집인들에게 국익 차원에서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언론사들은 숙고 끝에 정부의 방침에 협력하기로 했으며, 사업이 종료될 때까지 이 사업은 단 한 번도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은 동독정권의 안정에 기여한다.” 이는 1970년대 서독 내 보수진영이 동독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기본논리였다. 그렇지만 신동방정책을 추진하던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는 “대가의 지불이 동독 주민의 복지증대에 기여할 수 있고 동독의 철권통치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들어 사업을 강행했다. 이후 서독 보수정당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지속되어 많은 동독의 반체제 민주인사들에게 자유를 부여했으며, 결과적으로 동독체제의 부도덕성과 정당성의 결여를 동독주민들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다.

프라이카우프 사업이 성공을 거둔 열쇠는 비밀유지와 함께 정권의 성향을 넘어선 정책적 지속성에 있다. 비밀유지는 “우리에게 정치범은 없다”고 주장했던 동독 정권의 협력을 유도했고, 서독사회 내의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동독 정권은 서독으로부터 받은 물질적 대가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프라이카우프가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을 둘러싼 공허한 메아리
한국의 역대 통일부장관들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공개적으로 프라이카우프를 역설해왔다. 그러나 최악의 인권국가로 낙인된 북한이 공개적으로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프라이카우프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는 난망하다. 한국형 프라이카우프를 고려하겠다는 정치권과 고위당국자들의 공개적인 발언은 그래서 공허할 뿐이고 진정성이 담긴 것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 서독교회와 동독의 비밀경찰을 창구로 대가를 지불하고 동독 정치범을 데려왔던 프라이카우프('자유를 산다'는 의미)를 북한에 대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이미 공론화가 된 마당에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프라이카우프를 설명하고 있는 화면 ⓒArirang News

국군포로와 납북자, 그리고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당국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여야간 합의를 토대로 비밀리에 추진하면 그만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특수이산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가족상봉이 성사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프라이카우프 사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오히려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물론 일반인의 이산가족 상봉마저 차단되었다.

인도적 문제에 있어 여야와 정파간의 인식차가 있을 수 없다. 국군포로, 납북자와 이산가족 문제의 신속한 해결을 넘어 인권의 절망적 사각지대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루 빨리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급박함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 않은가? 또한 그것이야말로 우리 체제의 도덕적 정당성을 스스로 확인하는 당당한 길이지 않겠는가?

언론매체들은 2014년 초 등장한 ‘통일대박론’을 거의 매일이다시피 다루고 있으며,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이후 전체회의와 분과회의들이 쉼 없이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이후 현재까지 굶주림과 질병의 상시적 위협에 놓인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당국도 할 말이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 없이 5·24조치를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인도적 대북지원이 북한의 핵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그릇의 밥과 한 봉지의 약이 없어 생존을 위협받는 북한의 많은 취약계층들에게 이 같은 논리가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근년간 북한주민의 대남인식이 악화되고 대남 적개심이 확대되고 있다. 북한의 체제위기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향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이전보다 줄어들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감시와 통제가 강화된 결과로만 해석할 대목이 아니다. ‘통일대박론’의 이면에 존재하는 슬픈 현실이다.

북한주민의 ‘남한체제 선택’은 지속적인 신뢰 확보에서 나온다
독일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동독주민 스스로의 선택과 서독의 수용에 의한 자발적인 편입통일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10월 이후 1990년 3월의 자유총선 때까지 동독주민들은 스스로의 토론과 선택을 통해 서독 체제에 편입하는 방식으로 통일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서독이 주도하는 통일과정에 기꺼이 동의했다.

독일통일은 준비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고도 장기적인 준비의 산물이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서독은 통독 직전까지 연 평균 23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의 대동독 지원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동독 정부는 프라이카우프를 통해 골칫덩이인 반체제인사들을 서독으로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독의 지원을 자신들의 정권을 안정화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동독주민에게 서독의 정통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동독주민의 어려움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서독 정부의 지속적 노력을 동독 주민들에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동독주민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서독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몇 년 전이지만 어느 대북사업가가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주민들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당시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한국이 아닌 중국을 선택했다.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장기화된 현재의 상황이 당시보다 나을 리 없다. 북한 주민이라고 해서 중국에 대한 정서가 우리와 크게 다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핏줄보다 중국을 선택한 북한주민의 마음을 어찌 해석할 수 있을까? 그들이 어렵고 힘들 때 우리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포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 같은 결과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동독의 주민들은 서독을 선택했으며, 이는 동독을 향한 서독의 장기 전략에 입각한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한 주민들이 독일과 유사한 상황에서 한국을 선택할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분단 70년, ‘통일대박론’과 ‘통일준비’의 홍수 속에서 던지는 씁쓸한 자문이다. 통일은 요란한 구호로 오지 않으며, 실천의지를 담은 구체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도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북·통일정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통일을 향해 가용한 모든 정책과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며, 그 첫째가 북한주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한주민의 고통을 경감하고 인도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야와 정파를 초월한 협력체제의 형성과 국민적 합의구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에 대한 북한주민의 신뢰 없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오지 않는다. 분단 70년을 다시 공허한 담론과 말의 성찬으로 보낼 수는 없다. 독일통일의 평범한 비밀을 우리 모두가 깊이 반추할 때이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yoomik@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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