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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 다 아십니다”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부영이 보낸 편지(2월 23일자 편지에 3월 1일자 추신이 붙은)를 전병용으로부터 내가 받은 것은 1987년 3월 중순이었다. ‘우촌전’(友村前-우촌은 이돈명 변호사가 내게 지어준 아호다)으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실로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해 1월 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을 고문치사시킨 범인으로 같은 교도소에 구속되어 있는 조한경 경위는 박종철군을 조사하는 조(組)의 반장이기는 했지만 고문행위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또 다른 고문경관 강진규 경사는 다른 반(班) 소속으로 그들이 찾고 있던 황 아무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왔다가 욕조 안에서 박군의 다리 가랑이를 들어주는 보조역할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편지는 팔다리가 묶인 박군을 뒤에서 붙잡고 억지로 물을 먹이다가 박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관은 따로 있다면서, 그 세 사람의 이름과 직위를 적시하고 있었다. 구속된 두 사람은 사건 후 경찰간부들에 의해 짜여진 각본에 따라 범인으로 지명, 차출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2월 27일, 검사에게 자신들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사정과 진짜 고문경관 3명에 대해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어느 쪽이 유리한지 잘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면서 며칠 후에는 의정부교도소로 이들을 이감시켜 버렸다.

1986년 5월 3일의 인천사태로 수배 중이던 이부영은 그 해 10월 하순 불광동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가 체포되어 그때는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었고, 나는 이부영에 대한 도피방조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 중이었다. 전병용 역시 이부영, 장기표 등 5.3 인천사태 수배자들에게 편의와 은신처를 제공한 것이 드러나 쫓기고 있는 몸이었다. 전병용은 내게 편지를 전해 준 며칠 뒤 경찰에 체포, 구속되었으니 하마터면 그 편지는 영원히 공중에 뜰 뻔 했던 것이다.

   
▲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주항쟁 제7주기 미사’에서 고(故)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진상 조작 폭로 성명을 읽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는 이 편지를 받고 바로 박종철의 죽음 이후 그와 관련된 신문보도를 세심히 챙겨 스크랩하고, 이부영의 편지와 인권변호사 그룹 등 제한된 범위 안에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성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만약 천인공노할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국민이 결코 저 부도덕한 정권의 무리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상황이 바뀌거나 새로운 사실이 입수될 때마다 성명은 수정과 다시쓰기를 수도 없이 거듭했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년 기념 명동성당 미사에서 김승훈 신부에 의해 사제단의 이름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그 성명의 마지막을 나는 이렇게 썼다.

“이 사건 범인 조작의 진실이 박종철 군 고문살인 진상과 함께 명쾌하게 밝혀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과연 우리나라에서 공권력의 도덕성이 회복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결말이 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진실과 양심, 그리고 인간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중대한 관건이 이 사건에 걸려 있다.”

5월 18일, 명동성당 미사 때 성명서를 읽는 김승훈 신부의 목소리는 크게 떨리고 있었고 절할 때는 제의가 머리를 덮을 정도로 엄숙, 경건했다고 한다. 김승훈 신부는 그 전날 받은 성명을 읽고 또 읽어 글자 수가 3,120자라는 것까지 헤아렸다는 얘기를 나는 뒤에 들었다. 성명을 발표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조심스러웠으면, 그 성명을 쓴 나도 헤아리지 않았던 글자 수까지 헤아렸을까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가슴이 찡하다.

불의와 기회주의가 승리하는 역사

최근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에 참여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놓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하느니 마느니, 당시의 검찰수사팀이 잘했느니 못했느니 공방이 치열하다. 청문회를 하고 하지 않고는 정치권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과연 사제단의 발표가 없었어도 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을까. 박종철 군에 대한 물고문을 밝혀낸 부검을 결정, 지시한 것도 이들 형사2부 수사팀이 아니라 공안부장 최환이었다. 3명의 살인고문경관 명단을 진술한 2월 27일로부터 사제단의 성명이 발표된 5월 18일까지 그들은 무엇을 했던가. 이후에도 그들의 은폐와 축소는 계속되었을 뿐이다.

나는 당시의 수사검사가 마치 자신이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정의의 투사인 것처럼 쓴 책을 보고, 거짓과 위선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불의와 기회주의가 승리하는 역사가 어떻게 쓰여지는지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반면에 이 사건의 진실을 빛 속에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부영이 얼마 전 이 나라 정치판에 지쳐서 스스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을 보았다.

   
 

김승훈 신부는 생전에 자신이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당신께서 다 아십니다”는 말로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했다. 우리가 헤쳐온 1970년대와 80년대가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으면 그 말을 달고 살았을까. 거짓과 위선, 불의와 기회주의로 살아온 사람들의 진실도 당신께서는 다 아신다는 말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김승훈 신부의 영전에 고해부터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김정남/ 언론인, 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이 글은 (사)다산연구소 홈페이지(www.edasan.org)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정남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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