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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세안 상생의 구조와 전략

아세안은 2015년 말 정치안보공동체, 경제공동체, 사회문화공동체를 뼈대로 한 아세안공동체를 출범시킨다. 공동체 출범의 목적은 아세안이 통합을 공고히 하여 아시아의 정치경제 질서 구축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출범을 협력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하면서도 아세안은 지금 팡파르를 크게 울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공동체의 출범시기가 다가오면서 아세안은 초조해졌다. 2011년 5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 18차 아세안정상회의 개막연설에서 인도네시아 유도요노(Yudhoyono) 대통령은 “Post-2015 ASEAN” 비전에 대한 긴급한 필요성을 성공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2014년 11월 미얀마에서 열린 25차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향후 10년 기간에 대해 Post-2015 비전을 올해 11월 예정된 27차 정상회의까지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왜 아세안이 환호성 없이 공동체의 출범을 기다리고 있는가? 첫째, 아세안 경제가 역동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재 아세안 경제발전 모델, 즉 1980년대 이후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를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 동안 FDI는 자본축적, 수출 및 고용확대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아세안은 다국적기업의 표준화 제품 생산기지로 고착되었다. 한때 말레이시아 총수출의 60%를 넘나들던 전자제품 수출은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고, 태국이 자랑하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도 14개 다국적 자동차업체가 생산을 담당하고, 그 중에서도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업체가 90%을 생산하고 있다. 독자적인 산업기반이나 브랜드를 만들지 못한 가운데 경쟁국인 중국의 상품은 세계시장에서 아세안의 몫을 잠식한다. 나아가 중국제품은 섬유, 의류에서 자동차 및 무선전화 부품까지 아세안 역내로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그래서 2011년까지 대아세안 교역에서 적자를 보였던 중국은 2014년에는 636억 달러의 대규모 흑자를 냈다. 그 과정에서 아세안의 제조업 기반은 취약해졌고 아세안 선발국들 대부분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

둘째, 그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역내 발전 격차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인당 소득이 1,000달러 남짓한 미얀마와 4만 달러 이상인 싱가포르가 같은 정책을 쓰기는 어렵다. 아세안이 체결한 역내 및 대외 FTA에서 경쟁력이 낮은 저개발국은 개방을 늦추거나 아예 경쟁력이 낮은 품목에 대해서는 개방을 유예한다. 개발 격차 때문에 공동체는 느슨해져 아세안의 역내 교역비율은 25% 정도에 불과하게 되고 수출을 위해 역외시장에 의존해야 한다. 아세안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는 2013년 1,220억 달러였는데 아세안 역내투자는 210억 달러 17%에 불과했다. 또 아세안에 유입된 투자의 50%가 싱가포르로 들어갔다. 이러니 역내 구성원들이 모두 아세안 국민으로 단일 정체성을 갖기 어렵고 역내 모든 정부도 기대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도 아세안과 같이 경제적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받아 산업의 활력은 떨어졌고, 고용 기회는 축소되어 내수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수출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세계 모든 나라가 같은 생각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었던 대중국 수출은 2014년 0.4% 감소했다. 중국의 성장률이 낮아져 수입수요가 정체했고, 조립산업뿐만 아니라 부품 및 소재산업까지 육성하기 때문이다. 중국 수출은 계속 감소할 수 있고 수입은 반대로 늘어날 것이다.

비록 미래가 다소 어두워졌지만 아세안은 한국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아세안에는 2013년 세계 인구의 7.8%인, 6.2억 명이 살고 있고, 구매력평가기준 GDP도 세계 전체의 6%인 6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 2014년 한국의 아세안 수출은 848억 달러로 전체의 14.8%인데 이는 미국 12.3%, EU 27개국 9.0%에 비해 더 높다. 2013년에 아세안을 찾은 한국인은 460만 명으로 중국과 일본을 찾은 한국인 수보다 더 많았다. 또한 한류에 영향을 받아 160만 명의 아세안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인적 교류는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고 관련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촉진한다. 또한 아세안의 안정과 발전이 동아시아의 발전을 통해 한국에게 긍정적 영향을 준다. 중국의 산업발전으로 아세안이 아시아의 생산네트워크에서 탈락하고, 아세안의 제조기반이 허약해진다면 아시아에서 아세안의 중심적 역할이 약해질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미들파워로서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은 아시아를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아세안은 어떻게 서로 상생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아세안의 미래 비전 실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모색 단계에 있지만 아세안의 Post 2015 비전은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competitive and dynamic), 포용적 성장을 하는(inclusive and equitable growth), 그리고 연계성이 높아진 아세안(connectivity)을 목표로 할 것 같다. 아세안은 중국의 산업발전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시아생산네트워크에서 주요 역할을 하기 위해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고, 역내의 발전 격차를 줄여서 공동체를 강화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역내의 연계성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

   
▲ 아세안 경제 공동체 구상

무역과 투자에서 한국은 아세안의 경제적 역동성 회복이 한국기업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먼저 대아세안 무역수지 균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세안의 무역수지가 악화될수록 아세안의 경제 회복은 어렵다. 한국은 2014년 아세안에 31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체 흑자 475억 달러의 66%이었다. 무역수지 흑자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아세안으로부터 수입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아시아 생산네트워크 강화에 기여할 수 있고 현지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아세안의 부품과 소재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이미 POSCO나 롯데케미칼 등이 아세안의 소재업체들을 매입하여 현지에 진출한 바 있다. 현지 자원개발 투자를 통한 수입을 확대하면 무역수지 흑자 축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세안의 포용적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개발협력의 지원 분야나 방법도 보다 전략적으로 다듬어야 한다. 개발협력에서는 기술개발협력, 중소기업육성 협력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특히 아세안 저개발국에 대한 기술협력은 역내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저개발국의 인적 자원 개발을 기술개발협력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중소기업의 발전은 아세안 각국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동시에 아시아 생산네트워크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 개발협력과 관련해서 중국과 일본은 막대한 ODA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물량으로 그들과 경쟁할 수 없다. 한국식 ODA 모델을 개발해야 하고, 아세안과의 기술개발협력과 중소기업 협력을 한국식 개발협력 모델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연계성 강화를 위해서는 메콩강 유역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프라 개선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700여㎞ 거리인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에서 태국의 치앙마이로 가는 하루 한 대의 노선버스는 20시간을 가고,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남부의 중심도시인 하자이행 기차는 940㎞를 18시간 걸려 도착한다. 놀랍게도 방콕-하자이의 소요시간은 25년 전에 비해 줄어들지 않았다. 이처럼 아세안의 연계성 제고를 위해서는 국가간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의 인프라 개선도 필요하다. 인프라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중국과 아세안은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을 설립할 계획이다. 한국은 미국의 반대로 참여를 주저하고 있지만 AIIB 설립에 주요한 주주로 참여한다면 쌓이는 외환보유고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인도차이나 저개발 지역의 내수를 개발하는 데 기여하며, 한국기업의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세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대아세안 전략에는 일관성이 없었고 기저에는 중상주의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아세안을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고 아세안+3 체제 구축을 주도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아시아 전략의 중심을 동북아로 후퇴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아시아구상은 아세안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세안을 시장이나 자원외교의 한 대상으로만 간주했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은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해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그리고 아시아지역 및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2020년까지 교역규모를 2천억 달러로 확대하고 이를 위해 FTA의 추가 협상을 한다는 것이 주요한 목표가 되었다.

지금 아세안에서는 열강들의 원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중시전략(Pivot to Asia)의 주요한 파트너로 삼기 위해, 일본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그리고 중국은 미국의 포위에 대응하고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모두 아세안에 원조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이 이들과 같이 경쟁할 수는 없다. 대신 향후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의 갈등을 고려할 때 아세안과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아시아 무대에서 아세안의 중심적 역할(ASEAN Centrality)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도 기존의 4강 중심에서 아세안을 포함한 5강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고, 특히 경제적으로는 아세안을 미국이나 유럽연합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중국과 함께 2대 협력국이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제 한국이 아세안을 이해해야 할 때이다. 아세안 전공 학생, 언론인, 학계인사들의 파견을 늘려가야 한다. 2017년 부산에 개원할 동남아문화원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세안을 이해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아세안의 미래 비전 모색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세안의 Post-2015 비전에는 일본의 지원으로 자카르타에 설립된 ERIA가 지난해 초에 출간한 ASEAN Rising: ASEAN and AEC Beyond 2015, 그리고 일본 동경에 자리잡은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Asian Development Bank Institute: ADBI)가 지난해 7월 발간한 ASEAN 2030: Toward a Borderless Economic Community가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오랫동안 아세안에 경제적 토대를 쌓아온 그리고 지금은 아세안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일본이 이 연구를 주도했다.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기관이 보다 객관적 역할을 할 수 있고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박번순/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를 받았다. 산업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을 거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동남아 경제와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대해 연구했다. EAVG Ⅱ 한국 전문가를 지냈으며 현재는 홍익대학교 경제학부에서 초빙교수로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경제, 동아시아 경제통합이며 『아시아 경제 힘의 이동』 (2002)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의 대응」 (2006) 등을 펴냈다.

*이 글은 동아시아재단 홈페이지(www.keaf.org)에도 게재됐습니다.

박번순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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