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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할 21가지 전조증상' 대통령감의 실종

[연재서문]
IMF, 구조조정, 2008년 경제위기, 가계부채, 자영업 파산… 한국사회에서 어렵다는 말은 이제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민들은 희망을 잃었으며 삶의 활력을 놓쳐 버렸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어려운 세상살이를 견뎌왔던 어른세대의 고뇌와 애환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움도 어른세대와 같은 묵묵히 견뎌야 할 대한민국 국민의 숙명인가요? 아니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완전한 파국으로 빠져드는 전조증상인가요?

여기에 한국사회가 붕괴하는 21가지 전조증상을 밝힙니다. 현 시기 한국사회가 이전과는 다른,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위험에 빠져 있다는 점을 알리고자 합니다. 우리사회가 국민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구조의 신호를 전하고자 합니다.

2. 대통령감의 실종

IMF보다 더 어려운 경제, 미국발 경제위기 7년째… 수시로 언급되는 청와대의 국가위기상황센터… 국가적 위기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위기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역량을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해 나갈 지도력입니다. 전쟁시기의 지도력은 이순신 장군과 같은 군사영역에서 나타나겠지만 평화시기의 지도력은 대체로 정치영역에서 나타납니다. 역사적으로도 지도력이 출중한 인물이 통치하는 국가는 번영하였고 지도자의 정치적 안목이 협소하고 출중한 인재가 없는 나라는 끝내 패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어느덧,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급이라고 불릴 만한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대통령이 동물로 풍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쓸 만한 정치인이 없는데, 다음 대선 때는 상황이 나아질까요? 대통령이 바뀌어본들 대체 누가 이 나라를 이끌겠느냐, 기성세대에는 이런 민심도 상당합니다.

   
 

 

 


대통령은 권력의 최정점

대통령은 한국사회 권력의 최정점입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 중심제의 국가입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이며 행정부의 최고수장입니다. 대통령은 정부조직의 최고대표자로 행정부에 막강한 인사권을 쥐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책임자로 모든 공권력을 총괄하며 평상시 국군을 지휘합니다.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으며 다른 나라와의 외교도 대표합니다. 대통령은 국회가 만든 법률안도 다시 되돌려보낼 수 있으며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사법부에 대해서도 대법원장 임명권과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면권은 어떻게 보면 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는 권한입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독보적 위치에 있는 대통령은 한국사회에 막대한 권한과 영향력을 갖습니다.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한국사회가 좌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군부출신의 대통령이 제멋대로 집권했던 시기,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없었습니다. 참여를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 시기에 국민참여제도의 많은 시도들이 있었고, 재벌을 중시한 이명박 정부 시기에 재벌은 미국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재부를 축적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래, 대체로 수십 년 공직생활로 국민들로부터 인지도가 넓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1993년에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민주진영에서 일정한 평판을 획득했습니다. 1998년에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71년부터 대통령 후보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1988년 5공 청문회에서부터 일약 전국적 정치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1990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 주인공으로 주목받았으며 <현대건설> 사장이라는 이력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조폭정치, 계파정치로 제거당한 정치새싹들

그런데 2015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적어도 지난 15년간 한국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며 시대의 정치지향과 노선, 정치세력을 이끌어 온 차세대 정치지도자를 알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지금 대한민국에는 대통령감이 없습니다.

우리사회에 대통령감이 없는 것은 계파정치, 과열경쟁으로 될성부른 떡잎들을 채 자라기도 전에 마구 쳐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는 지금은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보수우익정당과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이름을 쓰는 중도적 보수정당이 정치권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이 두 정당들은 모두 당내에서 여러 계파를 만들어 세력다툼을 일삼는데요, 새누리당에서는 이른바 친이계와 친박계의 내부갈등이 있었고, 새민련에서는 친노계와 비노계, 동교동계 등 여러 계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분열되었지만 진보진영에도 계파라고 부를만한 그룹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의해 강압적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이들과 통합을 했다가 분열한 정의당, 통합진보당과 통합을 반대했던 노동당, 그리고 녹색당 등 여러 원내외 정당과 조직들이 있습니다.

각 정치세력들은 나름의 계파들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이전투구를 하는데요, 그 방식이 여전히 비민주적이란 점이 문제입니다. 새누리당은 원내대표와 주요당직자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지만 친이계와 친박계가 내부적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친이계의 관건은 얼마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나이고,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 얼마나 좋게 보였나가 핵심 기준입니다.

새민련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데 친노계의 핵심이랄 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수진영의 정치공세 속에 생을 마감하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생을 달리 하였습니다. 민평련의 핵심인물이었던 김근태 전 장관도 고문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새민련은 그 누구의 ‘점지’를 받아야 하는 조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새민련 역시 계파갈등이 노골적인 점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계파갈등에 대해서는 진보진영도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출범한 지 얼마 못가서 이내 정당이 분열하더니, 그 중 가장 큰 정당이 박근혜 정부로부터 해산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죠. 통합진보당 해산에 결정적 작용을 했으며 이후로도 진보진영의 발걸음을 걸음마다 붙잡는 "종북"이란 단어가, 같은 진보진영의 정의당 조승수 전 의원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통합의 정서가 없이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도토리 키재기 마냥 이리 물어뜯고 저리 물어뜯는 것이 지금까지의 한국정치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대통령이 될 만한 될성부른 떡잎들은 상대계파에 의해 제1 제거대상으로 찍혀 제거되는 것입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해도 정당정치의 민주화가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정치가 후진국 수준입니다. 그나마 인지도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다 돌려먹고 난 지금, 대한민국에는 차기 대통령감이 없습니다.

이미지 정치에 취한 차세대 주자들

여러분은 저의 이런 말에 반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진영에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있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건재하다고요. 통합진보당이 종북논란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어도 진보진영에는 아직 정의당 정치인들이 있다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차기 정치인들도 저마다 자기 이미지를 포장해 내세우는 이미지 정치에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정치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표에 이어 대선주자가 되고 대통령까지 오른 비결이 무엇입니까? "선거의 여왕"이란 별칭처럼 여러 선거에서 한나라당, 새누리당에게 우세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거우세의 결과만 강조될 뿐, 그 비결은 간과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날 선거는 대체로 이미지 정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부친 박정희를 빼면 뭐가 남습니까? 매일 갈아입는 옷과 수첩, 그리고 해외순방이 남습니다. "눈물정치"로 다 죽어가는 한나라당을 살려냈다?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입니다.

대통령은 모델이 아닙니다. 이미지 정치는 아무런 실체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3년차의 대한민국의 현실과, 현재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활동의 과정에서 늘 스스로 “원칙과 신뢰”를 중시한다고 말해왔습니다. 물론 그 “원칙과 신뢰”가 무엇인지는 그 때마다 상황이 바뀌었지만요. 2002년 단독으로 북한을 방북했을 때는 북한지도자와 과감히 손잡는 것을 원칙과 신뢰라고 했다면, 10년 뒤 지금은 북한지도자와 거리를 두는 것을 원칙과 신뢰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박근혜라는 인물에 공감해 온 보수적 성향의 국민들은 “원칙과 신뢰”의 내용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신뢰를 내세우는 박근혜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 박근혜가 거대보수정당의 당 대표가 되고. 그 당의 대선주자가 되고, 결국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 핵심동력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불거진 “청와대 문고리 권력파문”은 기성세대들이 신뢰했던 박근혜의 "원칙과 신뢰"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려 버렸습니다. 청렴결백을 내세우던 진보진영에서 비리문제가 터지면 사소한 문제에도 사람들이 더욱 분노하듯이, 십수년간 "원칙과 신뢰"를 내세워왔던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몇몇 비서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니! 그리고는 나아가 청와대 운영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죄하지도 않다니! 이런 충격 속에 국민들은 국정운영도 물론이거니와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우르르 접은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의 차세대 정치주자들이 이처럼 위험천만한 이미지 정치를 흉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권에서 이미지 정치에 가장 힘쓴 정치인은 안철수 씨였습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세간에는 “한국에서 가장 애매모호한 것은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안철수의 새정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안철수 씨가 정치활동을 선언하고 가장 주력한 것은 정치철학과 노선을 알리고 이를 현실에서 정책으로 검증받는 행동이 아니라 바로 "참신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IT 업계에서 불세출의 업적을 쌓은 그 참신한 이미지가 진흙탕 정치권으로 들어갔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국 안철수 씨의 정치활동은 오로지 내리막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안철수씨는 내용없는 “참신한 이미지”를 고집했습니다. 그 결과는 정치의 지각변동이라던 안철수 신드롬 3년만에 우리 국민 누구도 안철수씨에 대한 관심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건 신념인 듯 호소해 온 안철수의 ‘새정치’는 정작 대통령 선거 끝나버리자 홀연히 사라진 것입니다. 안철수의 ‘새정치’가 우리 국민들이 질릴대로 질린 ‘철새정치’는 아닐텐데 말이죠.

저는 감히 발언하건데 민주진영과 진보진영도 이미지 정치에 포로가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민주진영의 대선경선주자였던 김두관 후보가 이순신 장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행위, 문재인 후보가 공수부대 시절에 찍은 사진을 홍보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였습니다. 평소 반전평화를 외치던 진보인사들이 "종북논란"에서 벗어나보겠다고 군부대를 방문해 군복을 입고 사진찍는 모습도 매우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이는 1988년 광주항쟁 청문회 당시 기성정치세력에 단호히 반발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87년 6월 항쟁의 국면에서 시위군중의 방패막이가 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시대를 반영하는 진정성이 없는 “연출”인 것입니다.

정치는 나라의 가야할 길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국민의 의사에 맞게 나라를 운영하는 철학과 노선,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 정치는 대중들이 정치인의 정치철학과 노선, 정책을 검토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정치인들에게 시대와 나라를 책임지려는 자세가 있다면, 이미지 정치와 결별해야 합니다. 이미지 정치를 하실 분은 연예계로 가세요. 정치인은 이미지가 아니라 정치철학과 정치노선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고통받는 대중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감’인 것입니다.

차기 지도자, 또 이미지로 뽑을 것인가?

어느덧 정치인을 이미지로 결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은 정치철학과 노선을 보고 뽑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차기 대통령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깊이있는 정치철학과 노선을 실천하는 정치인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이미지와 줄세우기에 끌려다니고, 이를 거부하는 모난 돌은 찍어내는 것이 한국정치판입니다.

한국정치의 노선은 큰 틀에서 대동소이합니다. 대선에 투표하지 않는 많은 분들은 대통령을 두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느니, “어느 놈이 당선되어도 똑같다”는 말을 자주 하십니다. 그 분들의 말씀도 일견 맞는 것이 모든 정치인들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친미반북”으로 일색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를 외치기에 앞서, 누구나가 북한에 총부리를 겨누고 한미동맹을 중시합니다. 북한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말자고 하면 “종북”으로 낙인찍힙니다. 한미동맹의 문제점을 언급해도 “종북”으로 찍힙니다. 민주주의보다 한미동맹이 우선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정치민주화가 가능하겠습니까?

이제 정치인들의 노선과 정책은 획일화되었습니다. 워싱턴에 자주 가서 미국이 바라는 대로만 하면 유능한 정치인이 됩니다. 보수와 민주진영을 떠나 이젠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들까지 주섬주섬 군복을 챙겨입고 “멸공”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정치인을 친미반북으로 걸러내고, 나머지는 “종북”으로 척결한 결과 정치인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었습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들은 국회에서는 싸우는 척 하다가도 사우나실에서 만나면 반갑게 악수합니다. 정서가 같고, 지향이 같으며, 노선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린 대통령감을 잃어버렸습니다.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국민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찍을 후보가 없습니다. 이런 식의 파벌정치, 이미지 정치가 횡행하면 낮은 지지율 속에 보수정치권이 갈수록 유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지를 가공하는 미디어매체들을 현 정부와 보수언론들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대선 때마다 사회적 유명인사들이 저마다 정치활동을 선언하며 군중의 이목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유한킴벌리 사장출신의 문국현 후보, 2012년 대선 때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후보도 그런 예로 볼 수 있을까요? 이미지 정치인들은 대선국면에서 잠깐 나와 대중을 현혹하고는 이내 사라집니다. 목이 말라서 마시지만 마실수록 더욱 갈증이 커지는 콜라처럼, 새정치에 목말라 이미지 정치인들을 지지할수록 허탈감과 공허함은 더욱 커질 뿐입니다. 이는 대통령 선거의 의미를 반감시킬 뿐입니다.

계파와 이미지로 대통령을 뽑으니 리더쉽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잘생기고 멋있는 순서 내지는 불쌍한 순서로 대통령을 돌려 먹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대한민국을 이끌 확고한 비전 아래 주변강국에는 줏대있게 대하며 그들의 과도한 요구에 때로는 싸울 줄도 아는 투사, 용광로 같은 포용력을 가진 인재, 늘 어렵고 힘든 서민을 중시하는 진정한 이웃이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비효율의 최절정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가 이미지에 취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역사적으로 멸망한 모든 나라들의 공통점은 그 지도자가 대중에게 알려진 바와 달리 실제로는 어리석고, 게으르며, 귀가 얇아 친인척과 환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차기 대선주자로 나설만한 대통령감이 없습니다.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www.urisociety.kr)에도 게재됐습니다.

곽동기  dkkwak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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