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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차관·보좌관 따위에 흔들리는 대한민국 외교

“동북아 지도자들이 과거사를 활용해 값싼 박수를 받는다.”

지난달 27일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동북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한·일 양국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며 발언한 내용이다. 이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중단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전을 촉구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논란이 커지자 미국은 2일 “특정 국가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며 해명하였으나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기존 양비론적 입장에 대해서는 끝끝내 해명하지 않았다.

최근 미국은 동북아 지역의 과거사와 관련한 고려나,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배려하지 않은 채 미국 시각의 일방통행적 대외정책을 강요하는 모양새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우리 정부가 통준위 차원의 남북대화를 제시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때 미국은 대북 추가제재를 천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벤 로즈 미국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김정은 제1비서의 참석이 유력한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우리 정부 참석과 관련하여 부정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일개 차관이나 보좌관이 외국 정상의 국제행사 참석 여부나 대외정책 방향에 공개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외교적 관례상 심각한 무례를 넘어 주권침해로도 볼 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추락한 대한민국 외교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씁쓸한 한 단면이기도 하다.

출구전략 없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강경책, 외교적 선택폭 스스로 좁혀
미국 중심의 종속적 동북아 대외환경의 변화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강경책에 기인한 면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간 대북억지력을 강조하며 안보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대미 의존도를 높여왔다. 대표적으로 전작권 환수를 재연기하고, 킬 체인과 KAMD 배치는 물론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인 사드(THAAD) 배치까지 공론화하였다. 특히 북한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한미군사훈련은 지난해보다 3,400명이나 증원되는 등 오히려 확대되었다.

대북강경책에 발이 묶여 일본의 극우화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일본 아베정권의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 등 극우적 망동에 우리 정부는 겉으로는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면서도 뒤에서는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하고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립을 취소하는 등의 모순된 대일정책을 보여주었다.

물론 대외정책에 있어 안보는 기본이다. 그러나 출구전략 없는 대북강경책으로 박근혜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구현할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여러 외교현안에 수수방관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북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관하고, 남북교류협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5.24조치와 금강산관광 재개에 관련한 전향적 조치는 전무하다. 기대를 모았던 3.1절 기념사 역시 지난해 통준위 대화 제의 수준에 그쳤다.

실제 지난 16일 경실련이 발표한 박근혜 정부 2년 공약이행률 분석에 따르면, 외교·통일 분야의 공약이행률은 20%에 불과하다. 이행된 공약 대부분은 'NLL 도발 불용'과 같은 안보공약이 대부분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핵문제 큰 틀에서 해결 모색 위해 남북관계 발전과 동북아 협력 함께 추진',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사회·경제적 교류협력의 상호보완적 발전', '기존 합의에 담긴 평화와 상호존중의 정신 실천', '다양한 대화채널 상시 개설 및 정상회담 개최', '질적 평화 기초로 군사대결 완화', '경제공동체부터 건설'과 같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공약들은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남북관계를 기축으로 동북아 역내 현안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박근혜 정부 임기 3년차에 접어드는 해이다. 정치적 변곡점인 선거도 없다. 즉, 올해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마지막 골든타임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남북관계 개선을 기축삼아 한반도 주변 대외관계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북전단 살포 등으로 남북대화의 동력이 상실된 만큼 남북관계 개선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실천적 행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북전단 살포의 경우 ▲지역주민 경제활동에 위협이 되거나, ▲북한의 도발 빌미로 작용하는 경우, ▲남북합의사항 이행에 역행하는 경우 등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 으로 남북교류협력법 시행규칙으로 정해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

또는 이미 실효성을 상실한 5.24조치의 실질적 해제 역시 모색할 수 있다. 정치지형상 5.24조치의 전면적 해제가 어렵다면, 나진-하산 프로젝트와 같이 예외적 조치를 확대해 5.24조치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금강산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을 연계해 북한을 대화로 유인할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도 고려할 만하다. 작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북한 실세 3인의 방남(訪南)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었듯 평양특사를 파견해 남북정상회담의 로드맵을 마련하거나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해 분단 이후 최초로 제3국에서 다자외교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과거 노태우 정부는 과감한 북방정책을 모토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며 7.7선언이라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바 있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틀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대외정책을 발휘한 결과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 개선의 마지막 골든타임을 보내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참고할 지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소모적 기싸움에서 벗어나 남북관계 개선으로 남은 3년 조금 더 '비싼 박수'를 받기를 바란다.

홍명근/ 경실련 통일협회 간사

홍명근  lolen86@ccej.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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