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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한국주도론의 허실

미국 소니사 해킹 사건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무엇인지 도대체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는 얘기들이 많다. 미국 외교관들이 레토릭에 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통령과 국무부 사이의 엇박자도 있는 듯하다. 북한에 대해 무시전략으로 일관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연말연시에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정권 붕괴를 언급하며 북한을 비난했지만 오히려 국무부 관료들은 ‘북한과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미국 대북정책의 변화는 없다’는 얘기를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한국주도론의 허실
지난 해 워싱턴의 대북 대화파들은 한국 대통령이 직접 나설 때가 되었다는 권고를 많이 했다. 이는 양국 외교라인에 맡길 일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하면 한국의 대북 이니셔티브에 대한 워싱턴의 부정적 분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였다.

이 같은 전제에 대해서는 3가지 점에서 의문이 드는데, 첫째는 한국 대통령의 대북협상 의지를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둘째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외정책과 동맹정치를 너무 순진하게 해석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고, 셋째는 미국 국무부 내 동아태 관료 라인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의문이다.

세 번째 의문과 관련해서, 동아태 외교 라인의 대북정책에 다소 비판적인 일부 인사들조차도 ‘결국 대북정책은 외교 관료들이 하는 것’이지 오바마 대통령이 하는 것은 아니라며 관료들의 정책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 2월 4일 대니얼 러셀(Daniel Russel) 동아태 차관보가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북핵문제와 대북정책에 대해 언급한 바를 곱씹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러셀 차관보가 말하는 대북정책
먼저, 미국은 북한과의 접촉(talk)과 협상(negotiation)을 분리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과 마주하는 대화 테이블은 사실상 접촉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부시 행정부 시절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빅터 차(Victor Cha) 라인이 정리한 대북접촉의 원칙과 일치한다. 미국 외교관들은 접촉 수준을 전제로, 북한과 마주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이를 거부한 적도 없다는 레토릭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사용하는 대화라는 용어를 접촉이 아니라 협상으로 이해하는 한 한국의 기대(wishful thinking)는 항상 배반당한다.

접촉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미국이 평양에 들어가 북한 대표와 마주앉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지난 연말과 연초에 이뤄진 성김 대표의 베이징(北京) 방문은 북한과의 협상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에 대한 미국의 성의 표시라고 보아야 한다. 북한과의 ‘접촉’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과 북한의 ‘협상’ 의지 부재를 주변국에 증명(proving)하기 위한 성격의 순방인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의 북핵 원칙은 여전히 ‘CVID’이다. 러셀 차관보는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완전하고(complete) 불가역적인(irreversible) 핵 폐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검증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미국의 북핵정책은 여전히 ‘CVID’임을 짐작하게 하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최종 목적이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이는 ‘선 핵폐기, 후 평화협정 및 관계 개선’이라는 9.19 공동성명의 순서를 ‘선 평화협정, 후 핵폐기’로 바꿔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비판하는 의미이다.

각본에 없던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
러셀 차관보의 발언에서 다소 새로운 뉘앙스를 풍기는 부분도 있다. 먼저, ‘북한의 핵실험 협박(?)이 두어 달 전부터(two or so months ago) 시작되었다’고 언급한 부분이 그것이다. 북한은 지난 1월 8일 한미군사연습을 중지하면 핵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성명을 공식 발표하였다. 러셀 차관보의 2월 4일 발언이 실수가 아니라면, 북한은 비공식적으로 이런 입장을 2달 전, 즉 작년 11~12월경에 전달하였다는 뜻이다. 유엔 총회에서의 북한인권 결의안 통과, 소니사 해킹, 그리고 백악관의 행정명령 발동과 같은 정책 공방들의 수면 아래에서 이같이 급박한 밀고 당기기가 있었다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는 핵폐기 과정에 대해 러셀 차관보는 동결(freezing), 롤백(roll back) 그리고 폐기(dismantlement)라는 순서와 용어를 사용했다. 여기에서 동결을 시작 단계로 인정한 것이나 북한이 사용한 모라토리움(moratorium)이라는 용어를 거론한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는 미국과 북한이 대화의 입구에서는 최소한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다만 러셀 차관보는 북한이 보상 요구라는 구태를 벗어나지 않고 있고, 유엔제재라는 규범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협상론이 의무 이행과 거래를 착각하고 있다고 못 박고 있다.

끝으로, 1월 23일에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유튜브 기자회견에 대한 해명성 설명이다. 러셀 차관보는 미얀마 케이스를 거론하며 미국이 김정은 정권과의 대화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재론했다. 유튜브 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사전 각본에 없던 북한관을 내놓는 바람에 외교 관료들이 이를 수습하느라 고생했다는 후문인데, 러셀 차관보의 이날 발언 역시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회견 내용에서 군사적 해결책이나 제재가 비효율적이라고 언급한 ‘전제’와 북한 정권이 자연스럽게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 중 어디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양론이 가능하다. 미국의 큰 전략적 구상이 드러나는 2015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나 신년 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과 같은 공식 정책을 기준으로 할 때에는 지난 6년간의 노선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니사 해킹 사건이 미국 사회에서 일시적으로 북한에 대한 주목과 긴장을 현격하게 높여 놓은 것이지, 정책 변화를 가져올 상황 변화는 없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MB의 길?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는 대통령과 외교협상의 창구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면서 시간을 허비하고”(「조선신보」, 2015년 2월 3일자) 있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강경책으로 경도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미국 것들과 더는 마주앉을 필요도, 상종할 용의도 없다”는 국방위원회 성명 이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연말 공식·비공식적인 한국 고위급 인사들의 방미가 잇달았는데, 북한의 이러한 분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한국이 미국과의 정책 조율에 나선 것인지 속내를 알 수 없지만, 그 성과는 시원찮아 보인다. 대화파의 입장에서는 소니사 해킹 사건이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는 푸념도 나올 만하다.

   
 

누구보다도 북한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국부무가 요지부동이며 아시아 정책, 그 중에서도 대북정책이야말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bipartisanship) 협력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대외정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발 정책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오히려 인권 문제 등 ‘가치 외교’라는 새로운 기준이 덧대어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대화파들에게 남은 옵션은 북한발이거나 한국발일 텐데, 전자에 관한 한 해피엔딩으로의 극적인 반전 과정에서 느낄 피로도가 지대하고 심지어는 파국적 경로로 빠져들 리스크마저 상존하고 있다. 결국은 후자에 기대는 게 합리적인데, 문제는 한국 외교가 MB 정부 외교의 유산을 헤쳐 나가지 못하거나 그럴 생각이 없을 경우이다. 이것이 워싱턴에서 그나마 소수인 대화파의 입지가 더 좁아지고 있는 이유이다.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조지워싱턴대 Visiting Scholar

*이 글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ifes.kyungnam.ac.kr)에도 게재됐습니다.

이정철  rheeplan@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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