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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맹(構造盲)에서 벗어나자

“세월호 100일이 지났는데 골목상권은 아직 허덕, 중소기업 정상가동 39%뿐” 이런 제목이 작년 8월 4일 자 <조선일보>에 떴다. 온 나라가 세월호 문제에 매달려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제가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내용이다. 그 직후 안산에서는 상인들이 세월호 현수막을 뜯어냈다. 그들은 장사가 안 되는 것이 세월호 정국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비위축이 세월호 정국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양자간의 상관관계를 은근히 암시하면서 유족의 목소리를 고립시키고 사건의 책임을 엉뚱한 데로 돌리는 언론 보도와 정치가들의 발언은 지난해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언론과 정치권력, 원인과 책임을 엉뚱한 데로 돌려
나라를 흔드는 큰 사건에서부터 구체적인 사회경제 정책, 그리고 개인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은 분명히 원인과 책임 소재가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은 여러 가지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보통사람들로서는 그 원인들의 경중을 일일이 따져 알기가 쉽지 않다. 정부나 기업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정부기관이나 법원이 증거들을 편향적으로 선택하면 아예 원인 규명이 불가능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삼성반도체에 근무했던 20대 초반의 여성 노동자들 수십 명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불구자가 되어도 삼성반도체에 근무한 일과 그런 죽을 병을 짊어진 것과의 상관관계는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삼성이나 정부, 법원은 제대로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명백하게 구조적인 이유로 발생한 사건이 있어도 언제나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다수의 희생은 물론이고, 큰 사회경제적 위기가 발생해도 정권, 대기업 등 그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 주체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을 극히 어렵게 만드는 힘이 도처에서 작동하고 있다. 1997년 말 재벌들의 과다차입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을 때 재벌개혁의 목소리와 경제 투명성 요구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런데 ‘내 탓이오’라는 담론과 연이은 ‘금 모으기 운동’은 이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향후의 지속적인 대책 마련 움직임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은 정부가 명백한 책임을 갖고 있는 일을 겪어도 개인의 운수나 부주의로 탓을 돌리거나 사태를 엉뚱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서 떠도는 ‘구조맹’이라는 단어가 이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고 본다. 구조맹이라는 것은 사회 문제를 인과의 고리로 연결된 하나의 구조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사회를 언제나 개개인의 잘못이거나 지도자의 인격의 문제로 보는 태도를 말한다. 자연의 힘이 불가항력적이고, 왕의 의지가 결정적이던 전근대 시절에는 대다수 백성들이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을 그냥 자연, 신, 군주의 뜻이라 해석하고 체념하고 순종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런 시대가 아닌데도 여전히 한국인들은 정치사회구조의 맥락에서 세상일을 보지 못한다.

문제를 구조로 보고 인과관계를 추출할 수 있어야
구조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정치집단과 언론이 퍼트리는 ‘오염된’ 언어와 뒤틀린 상황 해석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고, 거기다 약간의 독서습관만 있어도 누구나 구조맹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헤겔은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앞에 바로 주어진 것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부정적 사고란 수치의 마술, 궤변, 속임수, 관심과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권력·언론의 공모 등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교육과 학문의 목적도 바로 세상 일의 원리를 깨닫고 제대로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고,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할 수 있는 시민을 기르는 데 있다. 시민들이 보다 책임 있는 존재가 되고, 사회적 재난의 불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문제를 구조의 맥락에서 보는 능력과 인과관계를 추론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OECD나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상이지만 실질문맹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라고 한다. 국민의 학력만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구조맹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학교 교육과 성인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좋은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고, 정치집단에게 사건의 책임을 물어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겸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김동춘  dckim@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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