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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 이것은 어제 출간한 내 ‘산문집’의 제목이다. 부제로 “한 역사가의 시대 읽기, 하나님의 뜻 찾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출판사에서 붙인 것이지만, 내 지향하는 바와 어긋나지 않아 그대로 수용키로 했다. 이 산문집 간행소식을 페이스북 동료들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제 오늘 고민하다가 알리기로 했다.

그 동안 역사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주변 이야기를 담아 글을 썼다. 그것들을 두 번이나 책으로 묶었다. “한 시골뜨기가 눈 떠가는 이야기”(두레시대, 1996)는 신군부 시절 해직(1980-84)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변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그 뒤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지식산업사, 2010)는 참여정부 말기부터 신문 등에 기고한 것을 모은 것이다. 이번에 모은 것은 페이스북에 기고한 것이 많고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것도 간혹 있다.

이번에 글을 묶으면서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그 일부를 소개함으로 책을 펴내는 심경을 조금이라도 공유했으면 한다.
“2003년 대학에서 정년 은퇴한 후 3년간 국사편찬위원장 직에 있다가 물러났다. 곧 ‘잃어버린 10년’을 맹공하면서 노획물을 잔뜩 들고 MB정권이 들어섰다. 그 이전 정권의 유산은 무조건 배격하겠다는 뱃장으로 MB가 남긴 것은 ‘통일·남북 문제’ ‘4대강 사업’ ‘방산비리’ ‘자원외교 탕진’ ‘선거부정’과 그와 연관된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저분한 떡고물들이었다. 나는 이 시대를 단순히 정치학적 언어로 그걸 수사(修辭)하지 않고 그가 교회장로라는 점과 연관시켜 종교적인 의미를 곁들여 들여다보니 한마디로 ‘사악한 정권’이었다. 그 시대에 그의 이런 ‘사악성’에 덩달아 동참한 인물들도 정리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한참 ‘친일인명사전’으로 역사의식이 고조된 때이기도 해서 MB시대를 적나라하게 정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4대강 인명사전’이나 ‘천안함 인명사전’ 같은 것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지만, 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떨어지고 있다.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오죽했으면 언론들이 불통정권이라고 딱지를 붙였겠는가.

   
▲ 이만열 명예교수의 산문집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 책표지

이런 상황에서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는 어떤가. 올해는 복음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처음 이 땅에 온 지 130주년이 되는 해다. 아펜젤러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한국에 도착하면서 행한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주옵소서!”라는 기원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동안 한국 기독교는 세계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했고 기독교의 영향력이 우리 한국 사회에 크게 미치고 있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함에 선한 영향력을 과연 얼마나 미쳐 왔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 영성(靈性) 향상에 얼마나 기여했으며, 기독교적 도덕 윤리와 정의, 사랑에 바탕한 공동체를 이뤄왔는지도 자성해 봐야 한다. 시장화의 물결이 교회에 범람하여 기독교적 가치관은 찾아볼 수 없게 된 딱한 현실을 보면서, 이제는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 것인지 모를 정도로 안타까운 상황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시장의 원리가 휩쓸어버린 교회의 맨살 모습, 그것은 머리털이 깎인 삼손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다.

정치와 교회가 이 지경이 되어버리니 경제, 교육, 사회도 희망을 말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경쟁에 맡겨버린 교육은 유초등 학교에서부터 창의성을 잃어버렸고, 신자유주의물결에 휩쓸려버린 젊은이들은 열심히 스펙은 쌓지만 미래에 희망을 볼 수 없어 삼포(三抛)세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크게는 자본과 노동이 충돌하고 취업과 미취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라진다. 거기에다 남북,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이념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공동체는 붕괴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판을 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배제하려는 풍조는 남을 정죄하고 고립화시키는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너무 능숙해졌다. 어디서 배워왔는지 상대를 저주하고 몰아내는 수법은 이제 ‘종북’이라는 우리 속에 반대자를 몰아넣고 난타하기에 여념이 없다. 극단적인 말로 상대를 단죄하는 그 수법이야말로 정말 ‘종북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편가르기에 바쁘니 더 이상 이들을 통섭할 능력을 잃었고, 종교마저 교리의 이름으로 남을 정죄하기에 혈안이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갈기갈기 갈라놓고 있으니, 어디에서 통섭과 화해, 용서와 평화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이런 세태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괴롭지 않다. 전문적인 글쟁이도 아니지만, 이 시대에 산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허튼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 나이 값을 하라고 핀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침묵은 금이라고 했을까. 그래도 뒷날 메시아가 나타나기라도 해 역사를 광정(匡正)한다고 하면, 그 근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헛소리로 뒷북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시대를 향한 소리를 남기기로 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도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이라 달았다. 소리는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나타나기도 했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울림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고 반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시대를 증언하는 소리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책에 수록된 단편적인 글은 소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매도되는 시기에서 시작, 이젠 ‘더 잃어버린 시대’로 매도당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세련되지 못한 덜된 소리들을 모은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 글은 이만열 교수님의 페이스북(facebook.com/mahnyol)에도 게재됐습니다.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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