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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 터럭 하나, 생명공동체로 살아가기

십 년째 연말연시 연휴를 바다 건너에서 보낸다. 어머니와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 참에 지난 해 마지막 날, 그리피스 천문대에 올라가 천체 스펙터클을 보며 우주적 감성에 접속하는 경이로움에 젖어든다.

빅뱅 이후 우주 속 먼지처럼 탄생한 지구를 따라잡는 이미지들, 그 밑에 장식된 해, 달, 별들을 모티브 삼아 만든 온갖 장신구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태곳적부터 천체를 바라보며 운명을 점치며 별자리 신화를 만들어낸 인류가 이젠 우주선을 만들고, S.F. 영화들을 생산해내는 현실이 저릿하게 다가온다. 지구라는 행성을 우주의 먼지라고 표현한 구절을 마주하며 내 입장이 체득된다. 나 역시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깨우침이 작동한다.

사라져 가는 빛 속에서 〈인터스텔라〉를 보다
UN이 2015년을 ‘세계 빛의 해’로 정하고, 여러 나라와 에너지, 교육, 의료 등 인류 복지와 관련된 해결책을 논의한다는 소식도 우주적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인터스텔라〉에서 멸망할 지구를 떠나 생존지를 탐험하러 가는 주인공 쿠퍼가 읊었던 딜런 토마스의 시도 떠오른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요./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해.”

그 사라져 가는 빛을 찾아, 어둠 속에서 빛을 보내는 별들 사이로 인류가 살아갈 곳을 찾아가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놀란 감독이 북미지역보다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더 큰 호응을 얻는 데 놀라 감사인사를 전했을 정도다. 왜 그럴까? 쉽게 이해하기 힘든 블랙홀과 웜홀, 상대성 이론 등이 등장하는 인류 구원담으로서의 S.F. 블록버스터에 열광하는 것, 그것은 현실의 답답함, 억울함을 벗어나고픈 억압의 표출이었을까?

궁금하던 그 이유가 천문대 산책을 하노라니 다른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둥근 천정이 스크린이 되어 별자리에 얽힌 신화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우주 과학 이미지를 펼쳐 보이는 극장에 반 정도 누운 자세로 하늘을 본다. 한순간, 느닷없이 윤동주의 ‘서시’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간단하고 매혹적이어서 절로 외워지는 시여서일까?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이 시가 들려오곤 한다.

교토에 갔을 때, 도시샤대학에 그의 친필이 새겨진 시비를 보면서도 궁금했다. 독립운동으로 옥사한 그가 아프디 아픈 삶 속에서 별을 노래하는 우주적 감성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블랙홀 같은 사랑은 어떤 것일까? 그 물음은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블랙홀에 빠져드는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하늘과 강물에 흐르는 별빛을 잡아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이미지도 겹쳐진다. 그 그림에 매혹돼 돈 맥클린이 부른 팝송 〈빈센트〉도 마음 속에서 울려온다.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
2004년 미항공우주국(NASA)이 고흐의 별밤 그림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며 공개한 천체 사진도 떠오른다. 허블망원경의 고성능카메라가 찍은 별들의 사진에는 소용돌이치는 우주먼지도 보인다. 그 광활한 구석에서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으로 드러난다. 이 점을 보고 칼 세이건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지구적 삶을 노래한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이런 우주적 감성 여파인지 장일순 선생님의 이야기 모음집 〈나락 한알 속의 우주〉를 다시 집어 든다. 십여 년 전 읽으며 그저 넘겼던 대목들이 천체를 강렬하게 접하고 나니 새삼스레 다가온다. 터럭 하나 속에도 생명의 진수가 담겨 있다는 대목이 더욱 그렇다. 오늘도 먹을 곡식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는 깨우침, 그 힘으로 아픈 세상 풍파 속 작은 터럭 같은 소우주로 대우주를 호흡하는 한 해를 기원한다.

유지나/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유지나  regard1@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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