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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논의 너무 합리적..이제 초월성 강조될 때 됐다"북한교회연구원장 유관지 목사 인터뷰

기독교인들에게 남북 통일은 기도와 직접 관련이 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이고,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심을 믿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분단의 역사를 흔들어 놓으시고 정치, 사회적 변화를 통해 통일을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지금도 교회나 산 등 곳곳에서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다.

특히 기도는 분단 현장에서 더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기도가 메아리치는 산하 6백리 DMZ와 교회’(도서출판 진리와자유)는 바로 이 목적 하나로 최근 발간됐다. 서해 강화도에서 시작해 동해 고성까지 북한 개성을 포함해 10개 군의 기독교 역사를 소상히 다루고 있다.

저자는 북한교회 사학자인 유관지(69․북한교회연구원 원장) 목사와 북한 선교사역자 안부섭 TNF 대표다. 유 목사가 글을 쓰고 안 대표가 사진을 찍었다. 유 목사의 몸 상태와 DMZ라는 특성상 횡단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에 쏟은 땀만큼은 횡단할 때의 노력 못지 않다. DMZ 내 기독교 유적지를 20여번 방문했다는 게 유 목사의 설명이다.

최근 유 목사를 만나 책 출간에 얽힌 사연들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화여대 후문 다락방전도협회 사무실에서 있었다.


   
 
-책을 쓰신 동기는?
2년 전에 북한과 중국 변경지역의 교회 이야기를 다룬 ‘기도가 흐르는 3천3백80리 강물’을 출판한 적이 있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초판이 다 나가 곧 개정신판이 나올 예정이다. 그 책은 주로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의 교회를 다루고 있는데 ‘먼 곳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까이서 통일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유다.

-책 반응은 어떤가.
출판사에서 아직 본격 홍보는 안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격려의 말을 듣고 있다. 한 신학교 교수는 학생 10여명과 함께 이 책을 들고 강화도 토마스 목사 기념관을 찾았는데 길을 알려달라며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어떤 목사는 자신이 강원도 화천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그 지역은 왜 소홀히 다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군부대 지역이기 때문에 1주일 전에 신청해야지 들어갈 수 있는데 신청서를 보내달라고 했더니 오질 않아 들어가지 못했다. 근처까지 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몇날 며칠 횡단하신 건가, 아니면 띄엄띄엄 다니신 건가?
몸 상태, 날씨, 군부대 상황 등을 고려하느라 계속 횡단할 수는 없었다. 한 지역을 방문하고 다시 돌아오고 하면서 약 20여 차례 방문했던 것 같다. 처음엔 ‘이게 가능할까’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 1970년대 극동방송 PD로 일할 때 광복 기념으로 민통선 내 교회를 취재한 적이 있다. 국방부에 취재 신청을 한 후 다시 민통선 내 정훈장교에 신청하고 승낙이 나면 보안대 하사관이 따라와 붙었다. 누구를 만나서 녹음을 하면 보안대 하사관이 일일이 다 적고, 사진 찍는 것도 옆에서 적고 그랬다. 그렇게 엄한 지역인데 가능할까, 회의가 들었던 것이다. 저보다는 안부섭 대표의 열심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위해 첫 탐방을 한 건 2010년 10월 휴전선 제일 끝 강화도 부속도서인 말도(唜島)에서다. ‘끝 말’ 밑에 ‘꾸짖을 질’ 자가 있는 독특한 한자다.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알아봤더니 관공서에 보고할 때 제일 늦게 했기 때문에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하더라. 말도가 휴전선 끝이라는 것도, 꾸짖는다는 것도 내겐 의미심장한 말로 들렸다. 마치 하나님이 분단을 꾸짖는 말처럼 보였던 것이다. 말도의 등대감리교회에 가서 문의한 후 거기서 기도하고 시작했다. 강화도, 김포, 연천, 철원, 양구를 다녔다. 동쪽 제일 끝이 고성인데 거기에 탈북민인 오 테레사(NK100일중보기도연합) 선교사가 세운 ‘하나님의 집’이라는 아파트 기도처가 있다. 거기서 기도하면서 마지막 일정 끝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낸 셈이다. 보안문제 때문에 제약이 참 많았다. 태풍전망대에서는 수속 밟고 올라가야 하는데 카메라를 두고가라고 해서 못가지고 갔다. 카메라를 가져갔어도 못찍게 하기도 했다. 망원경으로 보고하니까 이상했던지 초병이 바짝 붙어서 감시를 하기도 했다.

-그때가 건강이 안좋은 상태였다고 들었는데?
2010년 7월에 복막염 수술을 받았다. 그 수술이 끝난 다음에 장 계통 이상이 생겨 3개월 큰 어려움이 있었다. 그에 앞서 심장 수술을 세 번이나 한 처지이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시작했다. 김포의 애기봉 올라갈 때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서 올라갔는데 힘들었지만 무난히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걸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내 생명을 연장시켜주셨구나, 생각했다.

-사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아내는 거창읍 사람이다. 내가 거창고 교사할 때 만났다. 아내는 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세미나도 많았는데 기저귀를 차고 다닐 정도였다. 장 쪽에 말썽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행이 힘드니까 안부섭 대표가 부축하거나 엎다시피 하면서 다녔다.

-그럼에도 탐방을 강행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주신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북한선교에 헌신하게 된 것은 1974년 극동방송 PD로 입사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방송을 듣고 중국 동포들이 수없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걸 뜯어서 읽으며 울고 감격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님이 나를 북한선교에 부르셨다는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건 감상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북한선교는 내 삶의 우선순위 1번이었다.

-평소 한 주 일정은 어떻게 되나?
북한교회연구원에 나가서 해방 후 북한교회 자료 수집하는 게 일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엔 일산과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열리는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에 참석한다.

   
▲ 북한교회연구원장 유관지 목사는 "2000년대 이후 통일논의가 너무 합리적으로 흘러왔다"며 "이제는 초월성, 즉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유코리아뉴스

-남북 통일의 시기는 어떻게 보나?
통일 문제에 있어 초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갑자기 이뤄지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걸 강조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내일 당장 통일을 주시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죽음이 보여주듯 통일이 임박한 것만은 사실 아닌가. 나는 탈북자 문제에 일찍 눈뜨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탈북자들이 입국하면 제일 먼저 서울 대방동 대성공사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거기서 신우회도 만들고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평화교회로 발전하고 새벽기도회도 하게 됐다. 난 그때 한 달에 한번 가서 100여명씩 탈북자들을 앉혀놓고 예배를 인도했다. 그러면서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떻게 해서 그 나라를 버리고 도망쳐 나왔을까, 탈북자들을 양산하는 북한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이런 나라는 오래 못갈텐데…. 지금도 탈북자 합동심문소에 가서 가끔 예배를 인도한다.

-가장 시급한 통일 준비는 뭘까?                                                                       옛 원한은 잊어버리고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작해야 통일이 되는 것이다. 통일이 늦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때가 될 때까지 바라시면서 늦추고 계신 것 아닐까 생각한다. 통일 집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은 통일 이후, 통일 목적을 북한 복음화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운동도 그냥 통일 통일 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영혼구원, 그것을 기독교인들은 빼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도 정치인들의 통일에 쉽게 휩쓸리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통일이라고 하지 않고 통일선교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통일에서 정치나 사회과학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북한은 이해 못할 문제를 많이 안고 있다. 남북이 정상적인 루트로 통일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점이 많다. 1980년대 통일부의 통일 관련 책자 안에도 갑작스런 통일, 합리적인 것을 넘어서는 통일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2000년대 이후 이론이 분분해지면서 너무 남북 관계나 통일이 이론 중심으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우리의 기도가 향료가 되어 하나님 보좌에 올라간다는 표현이 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교회가 통일에 대해 가르치거나 기도하지 않고 현실에서 잘 사는 것만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이 지금 교회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불러왔다고 난 생각한다. 교인들을 끊임없이 깨우치고 환기시켜야 한다. 하나님 앞에 금향로가 찰 때, 즉 우리의 기도가 찰 때 통일의 때가 이른다고 생각한다. 감사한 것은 요즘 통일에 대한 기도운동이 다시 활발히 일고 있다는 점이다.

-목사님은 요즘 어떤 기도를 하나?                                                                                      나의 기도는 남은 시간을 하나님 뜻에 맞게 원하시는 일 하다가 부름받는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상급문제도 생각하게 된다. 2007년엔 심장을 크게 다쳐서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없었다. 그때 기도가 ‘살려주시면 하나님 뜻에 맞게 살겠다’는 거였다. 내 친구가 50세가 가까워서 신학을 했는데 내가 말렸다. 목사 아니어도 하나님 일 할 수 있다고. 공부하고 안수받아서 몇 년이나 사역하겠느냐고. 그 친구가 ‘1년을 10년같이 쓰겠다’고 했다. 나도 요즘 친구처럼 그 기도를 하고 있다. 남은 기간 하루를 1년처럼 하나님 부르신 이 일에 최선을 다해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DMZ와 교회’ 독자들에게 한마디?                                                                                    

북한 자강도에 중강군이란 곳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알듯 중강진이 있는 곳이다. 아주 추운 곳이지만 여기에 중강제일교회, 중강제이교회 등 교회가 꽤 많았다. 오지이고 토질도 나쁘고 제일 추운 곳인데 말이다. 우리나라 기록에 보면 겨울에 중강진이 영하 43도까지 내려갔던 적도 있다. 그 옆이 만포인데 거기도 교회가 많았다. 그곳은 6.25 때 김일성이 후퇴해 마지막 집결했던 곳이다. 납북 목사들이 끌려간 곳이기도 하다. 그곳이 왜 그렇게 교회가 많을까, 나름대로 얻은 답은 존 로스 목사다. 물론 상상이다. 중국에 있던 로스가 한국땅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압록강을 타고 가면서 조선 땅을 보며 기도했다. 압록강 림강시에서 중강진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을까. 중강진, 만포에 그토록 교회가 많은 이유는 바로 로스 선교사의 기도의 열매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척박한 곳에 교회가 그렇게 많이 있을 이유가 없다. 이 책을 들고 강화도 끝에 가서 연안군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애기봉 올라가서 개풍군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언젠가는 그 열매가 맺히지 않겠나 생각한다. 비이성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나의 신앙고백적인 생각이다.

   
▲ 유 목사가 소개하고 있는 북한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는 DMZ 근처 전망대들.

-북한 교회 재건은 여전히 유효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나?
필요는 하다고 본다. 다만 한국교회 현실상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것은 무질서 속의 질서, 즉 개신교회 특징이 다양성에 있는 만큼 다양하게 전개해 나가는 것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2월에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서울신학대 박명수 교수가 ‘개신교는 갈라지기 마련인데 그것을 잘 선용하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 북한교회세우기연합김중석 목사님(사랑교회) 같은 분은 북한교회 재건과 관련해 단일교회 등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교회 현실상 그게 가능하겠나.

-여생을 통해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하나는 해방 전에 북한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의 일람표(백과사전)를 만드는 것이다. 책으로 만든다면 지면 제약이 많겠지만 일단 인터넷에라도 수집해놓고 싶다. 왜냐하면 북한에 있던 교회들은 한국 교회사에 아주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교회역사에 있어서 개 교회사가 점이고 지역 교회사가 면이고 그걸 종합한 게 입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사는 너무 이론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북한의 교회는 대부분 파괴됐다. 6.25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폭격이 심했던 것도 있고 의도적으로 파괴한 것도 있다. 1952년 12월엔 북한이 행정구역을 뜯어고치면서 옛 주소를 가지고 교회 유적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한국의 첫 교회인 소래교회가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황해남도 룡연군 구미리로 아예 바뀌었다. 실제 평안도 지역을 몇 군데 찾아가봤는데 도저히 교회터를 찾을 수가 없었다. 후손들에게 예전 주소나 지형을 가지고 찾아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 자리에 조그만 돌비석이라도 세워주고 싶다. 그게 하고 싶은 일이다. 남북한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이 일을 하고 싶다.
그 다음에 온라인 상에서 교회들을 일목요연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복음적인 입장에서 해방 이후 북한교회사를 쓰고 싶다. 현재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홈페이지(jubileeuni.com)에 연재하고 있다. 그걸 보고 미국에서 전화오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 교회에 나갔었다는 것이다. 북한선교는 외로운 작업이라는 게 고정관념인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진 것을 보고 놀랐다.

유관지 목사는 황해북도 사리원이 고향으로 연세대, 호서대, 중앙대를 거쳐 거창고 교사, 극동방송 PD, 목양감리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현재 북한교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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