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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학대 받은 자의 지혜’에서 나온다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동경대 교수 "조선인 어머니 부끄러웠지만…"

 

“저쪽에 빨갱이들이 있다.”

1966년 여름, 한국정부가 후원하는 ‘재일교포 학생 모국 하계학교’에서였다. 휴전선을 견학하던 중 망원경으로 북한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한 것이다. 수십 명의 재일조선인 학생(한국국적)들이 2~3주간 합숙생활을 하며 모국어 교육과 반공교육을 받았다. 서경식 도쿄대 교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 고1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을 첫 방문했던 이때의 혼란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지난 2월말 잠시 한국을 들린 서 교수를 만나 재일교포로서 느끼는 분단, 그리고 통일에 대해 물었다.

- 반공교육이 어색하고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저쪽에 빨갱이들이 있다”며 전쟁이 나면 죽여야 할 사람들이라 표현했다. 나는 그 말이 어색하고 혼란스러웠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같이 살던 이웃들 중에 적지 않은 분들이 북한으로 귀국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북한에 살고 있을 텐데, 전쟁이 나면 그들을 쏴야 한다고 하니까 혼란스러웠다. 당시는 사춘기 때였고, 일본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분단을 느꼈다면, 남한에 와서는 북한과 남한의 분단을 느껴, 이중의 분단을 사는구나, 생각했다.

- 당시 북한으로 귀국한 이웃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정치적 이념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아주 가난해서였다. 보통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갔다. 그때에 이북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면서 간 사람들이다. 통일이 되었다면 통일된 나라로 귀국했을 사람들이다. 이북에 가면 교육비가 무료이고, 일자리가 있다고 하니까 간 것이다. 최근의 연구는 당시 일본이 그들을 계획적으로 북한에 추방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인도적’이라는 명분으로 추방정책을 편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반공적인 분이셨고, 조금은 여유 있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가난을 버티지 못하고 간 사람들을, 전쟁이 나면 쏴야 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 유코리아뉴스와 인터뷰 중인 서경식 교수 ⓒ유코리아뉴스

   
▲ 사진 속 화면이 재일조선인 2세인 서경식 교수의 가족사진, 그의 생애는 일본TV의 다큐멘터리로도 소개가 되었다. 사진은 지난 2월23일 숭실대에서 열린 목민기념강좌에 참석한 서경식 교수  ⓒ유코리아뉴스

서 교수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다. 지금은 동경대학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분단을 살다> <경계에서 춤추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의 책에는 기본적으로 재일조선인들의 삶과 아픔, 두 개의 고국을 가진 자로서의 정서가 깔려있다. 그래서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생각에 잠긴다.

- 고향이 어디인지?
고향이라 할 때는 ‘태어난 장소’ 또는 ‘귀성할 곳’이라는 의미 말고도 ‘친족의 출신지’라는 뜻인데, 나는 태어난 곳은 쿄오또시, 친족의 출신지는 충청남도 청양군이다. 그러나 40여년 전에 한번 가본 것이 다이다.

- 외국에도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있는지?
독일에도 고향과 비슷한 개념이 있다. ‘하이마트(Heimat)’라는 단어이다. 독일에서 청중들이 나에게 ‘당신의 하이마트는 어디인가?’라고 물었을 때도 당황했었다. 하이마트의 정서는 반유대주의, 대독일민족주의, 나찌즘의 대두로 귀결되기도 했던 터라, 현대의 독일인들은 그 말을 신중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게다가 어투는 “너는 하이마트가 없어 안됐지만 우리에겐 그게 있어 다행이다”하는 것 같았다.
어떤 언어에 대한 애착, 어떤 문화나 기후에 대한 향수,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친밀한 그것을 ‘하이마트’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고 하는 공상적인 일체감은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위험하기도 하다. 독일에는 약 300만명의 터키계 시민도 살고 있다. 하이마트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불만 있으면 나가”라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재일조선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향, 지역, 국적 등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에 더 민감하신 것 같다.
우리들 대부분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선을 긋는다. 그것의 이쪽 편에 자신을 가두어둠으로써 안심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때 자칫 방심하면 ‘이상한 자’를 만들어내고 배제하면서, 학살하는 폭력자가 될 수도 있다.

- 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의 어린 시절은 ‘비정상’ ‘이상한 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어릴 적, 일본 아이들과 싸움이 일어나면, 마지막에는 언제나 ‘조센(조선), 조쎈, 꺼져, 꺼져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럴 때 무슨 말도 하기 전에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무조건 아들을 꼭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했다.

“조선은 나쁘지 않아, 나쁜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 어머니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조선은 나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많이 받았을 텐데….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다. 모욕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려진 사람, 얼굴을 감추고 몹시 외면당하는 사람, 우리들의 병을 안고, 우리들의 슬픔을 떠안은 사람, 이런 사람들은 우리도 공경하지 않는 이들이다. 식민지 지배와 전후 일본의 차별사회에서, 민족분단체제와 군사독재 하에서, 언제나 짓밟히고 경멸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온 사람, 부도 지위도 권력도 지식도 갖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바로 그 때문에 “우리들은 조금도 나쁘지 않아”라고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경계인인 그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원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서 교수의 정의는 조금 다르다. 노예나 식민 지배, 경제적 어려움 등 외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공동체를 떠나 흩어진 사람들과 그 후손을 디아스포라라 칭한다. 자신과 같은 재일조선인을 포함해 한반도의 궤에서 원치 않게 이탈한 이들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라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 ‘디아스포라(diaspora)’의 의미를 설명하는 서경식 교수. ⓒ유코리아뉴스

- 통일에 있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할이 있을 것 같다.
나는 '학대 받은 자의 지혜'를 믿는다. 소수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중심에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도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비록 위치상으로는 한반도와 멀리 있다하더라도, 경계인인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적지 않다. 그들은 민족의 슬픔이나 고통을 온 몸으로 체험한 이들이다. 통일의 기억을 모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 통일의 기억이란?
19세기 중반만 해도 조선 민족은 한반도에 살고 있었는데 흩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한반도에 있었던 기억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아니다. 디아스포라들이 갖고 있는 기억들도 모아져야 온전한 하나의 기억이 된다. 분단된 기억을 모으는 과정도 통일이라 본다. 하나의 기억이 재생하고 현실로 이뤄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말로만 소통할 것이 아니라, 다언어와 다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 ‘민족’이라고 표현했다. 민족을 어떻게 정의하나에 따라 통일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땅이냐, 국가냐, 아니면 언어나 문화이냐, 말들이 많다. 나는 민족이라는 것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세계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19세기말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인간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민족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다른 땅에 사는 우리 사람들도 있다. 언어도 다르다. 문화도 다르다. 혈통도 달라졌다. 그렇지만 그들은 민족이라는 틀 밖으로 나가버린 사람은 결코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있지 않은가. 식민지 지배, 냉전, 동서대립에 영향을 받고 살아온 삶 말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없더라도, 같은 역사를 살며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같이 살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땅이 두 개로 갈라진 게 하나로 되는 것뿐만 아니라, 흩어진 조선 민족이 모두 함께할 수 있고, 같이 즐길 수 있는 게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 코리안 디아스포라만의 특징이 있을까?
조선 민족은 분명 통일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전통은 아마도 하나의 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꿈이 아닐까. 그 안에서 평화를 지향하고, 학대, 고난을 받는 사람으로서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런 것을 소중히 하기 시작하면 우리에게도 유대인과 같은 디아스포라 적인 서사가 발견되지 않을까 한다.

- 하나로 모아야 할 기억이란 것은 예를 들면 어떤 것일까?
식민지 시대의 기억들도 모아야 한다. 불편해도 그래야 한다. 나쁜 기억이라도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창씨가 ‘토요타’이다. 얼마나 불편한 역사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타국의 성을 가졌었다. 식민지 시대의 불편한 기억이다. 이런 불편함, 수치스러움을 함께 기억하고 모아야 한다. 한 때는 우리가 겪었다는 것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 이런 아픔들이 얼마나 많겠나. 누가 무시하더라도 우리는 다 기억해야 한다.


   
▲ 서경식 동경대 교수. ⓒ유코리아뉴스

서 교수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이주자들에 대해서 자신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차별을 인정한다”며 탈북자도 우리 자신의 범주 안에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에 억류된 탈북자들에 대해서도 “인간으로의 권리가 우선이라는 게 디아스포라적인 사고”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런 고통으로 가득찬 생애를 보내는 디아스포라들에게서 예측을 뛰어넘는 빛을 본다고 말했다. 그 빛은 앞서 말한 ‘학대 받은 자의 지혜’이며 강인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통일의 동력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저는 어머니에게서 그런 모습을 봤습니다. 비록 어렸을 때는 차별과 모멸을 당하고, 학교에도 못 가서 조선민족의 문화와 역사도 모르며 글자조차도 읽지 못하는 어머니가 부끄러웠지만 말입니다. 어머니는 후에 독재정권 아래에서 형들(서승, 서준식)이 방북을 했다는 이유로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몰려 한국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형들을 ‘빨갱이’라 몰아붙일 때에도, 다시 몇 번이나 형들을 껴안고 말했습니다.”

“빨갱이,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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