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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

성탄절 오후 3시 30분부터 안산세월호합동분향소 야외무대에서 ‘고난받는이들과함게하는성탄절연합예배준비위원회’ 주최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2014 성탄절 연합예배>가 있었다. 다른 어떤 성탄절 행사보다도 의미있는 모임이어서 원근각처에서 많은 이들이 모였다.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우리 주님을 이곳에서 맞는 한편 세월호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참석했다.

‘예배부름’의 순서에서 인도자는 “오늘 우리는 기쁘고 축하해야 할 성탄에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연약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설명했다. 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54일이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아직 진도 앞바다에는 9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해 가족들의 절규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인도자는 참석자들을 향해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 오십시오”라고 당부했다. 그렇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 못지않게 진실이 규명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순서에 따라 ‘세월호 유가족의 위로와 진상규명을 위해’ 그리고 ‘한국 사회의 고난반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진행했다. 이어서 ‘가족 대책위’의 대변인 유경근 선생의 성경봉독(시편 85:8-13)이 있었고,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이루자”는 제목으로 방인성 목사가 설교했다. 지난 가을 광화문에서 40일 단식으로 방 목사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오늘 설교 시간에 보니 예전보다 더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씀을 선포했다. 예배 후에 들으니 단식 후 회복기에 섭생에 유의하다가 오늘부터 정상적인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제목 그대로, 정의는 평화를 수반해야 하고 평화는 정의를 토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순서에는 성만찬이 있었다. 성만찬의 집례위원에는 여덟 분의 목사님과 아홉 분의 유가족이 참여했다. 목사님 가운데는 희생된 학생의 아버님 한 분이 있었고, 아홉 분의 유족 중에는 희생된 선생님의 아버님도 참석, 성찬식의 의미를 특별하게 했다. 성만찬은 떡과 잔을 먹고 마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게 되는 은혜를 받게 한다. 동시에 성만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함으로 서로가 형제요 자매됨을 확인하게 된다. 오늘 성만찬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희생에 참여함으로 같은 형제자매인 세월호 유족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의미를 갖게 했다. 그러기에 회중들은, 떡을 받으면서 “이것은 고난받는 세월호 가족들과 연약한 자들의 이웃이 되어 주셨던 그리스도의 몸”이요, 잔을 받으면서 “이것은 고난 받는 세월호 가족들과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시고 새 소망을 주시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만찬의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화해를 이루시기 위해 희생시키신 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만찬에 참여한 우리도 형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한 것이다.

예배를 모두 끝낸 후, 러시아 선교사로 20년 동안 사역한 이형근 목사님 내외와 함께, 세월호정부합동분향소에 들어가 헌화하고 아직도 해맑은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는 젊은이들을 대하면서 쓰린 가슴을 주체치 못했다. 이들을 보면서 다시 유족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아픔이 있었다. 사진이 없는 빈 자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학생과 교사들의 영정만 모셔놓았고 다른 희생자들의 영정은 인천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세월호 관련 어느 모임에서 앞으로 유족들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런 기도에 휘말리지 말 것을 간곡하게 당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려대로 안타깝게도 세월호 유족들이 이렇게 분열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은 또 보였다. 대부분의 희생자의 명패에는 ‘고(故)’라는 글자가 있었지만 다음 여섯 분의 이름에는 ‘고’자가 없었다. <교사 양승진, 교사 고창석, 2-1 조은화, 2-2 허다운, 2-6 박영인, 2-6 남현철>, 이 여섯 분이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들이 생존해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시신’조차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않아 차마 ‘고’자를 붙이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아픔 앞에서 망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 분향소에 안치된 해맑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거기에 겹쳐 우리 사회의 부정과 부패, 무능과 무책임이 다시 부각되고 그 순간 분노로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들 주검 앞에서 산자들의 진정한 책임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글은 이만열 교수님의 페이스북(facebook.com/mahnyol)에도 게재됐습니다.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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