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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되는 것이 아닌 하는 것!

대화를 하다가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50대가 되었을 때에나 통일이 되지 않을까?” 이 질문을 통해서 지난 2년 간 내게 큰 변화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2년 여간, ‘에덴그리닝’이라는 회사를 함께 세워서 윗동네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선례를 만들어보리라 열심히 뛰었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였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그려왔던 모습에 닿지는 못한 게 사실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윗동네 친구들을 접하며 깊이 알게 된 사실은 이 친구들에게 ‘경제적 자립’ 못지않게 ‘정서적 조력자’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부끄럽고 안타까우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은 우리 아랫동네 청년들이 윗동네 청년들과 함께하기엔 너무나 바쁘다는 것이었다. 취업은 어려워졌고, 경쟁은 치열해졌으며, 그러다보니 ‘통일'을 코리아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하나의 방법으로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아랫동네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윗동네에서 온 청년들이 이 땅에 마음의 둥지를 틀기 어려워하는 것에 십분 이해가 갔다.

우리는 어렸을 적, 친구와 다툼을 하고서 화해를 할 때엔 불편함을 감수하고 당사자끼리 얼굴 맞대고 풀어야지 문제가 풀리는 걸 경험했다. '아이 싸움이 부모 싸움이 된다'는 말도 있듯 당사자가 풀어나가야 한다. 분단을 거대한 다툼으로 본다면, 과연 당사자는 누구일까? 나는 군에 가기 전까지 문제를 풀 당사자가 당연히 국가 혹은 정치인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연평도 포격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어느 날 주임 원사님이 소리를 치시며 사무실로 병사들을 모아놓고 뉴스를 보여주실 때, 죽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 북한이 정말 있긴 있구나”하는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 그제서야 내게 다가왔다. 내게 강력한 위협을 주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닥치고서야, 북한과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그때 최초로 “아, 이게 누구한테 떠넘길 문제는 아니겠구나”고 막연히 생각했다. 스물 다섯의 일이다.

   
▲ 남북 청년들이 모여 에덴그리닝 회의를 하고 있다. 서서 발표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필자 ⓒ에덴그리닝

통일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해서 증식하는 개념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주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되었다. 또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삶의 과제를 개인적인 것에 두기 시작하면서, 누군가가 이 거대하게 증식한 통일을 언급하려고 하면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더욱 관심을 끄게 되었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느 병사가 순간적으로 인식의 전환을 경험했던 것처럼 통일을 ‘누군가의 문제’에서 ‘내 문제’로 인식하도록 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통일을 말하기 앞서 ‘우리 사이의 분단’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얼룩진 이념 다툼의 상흔으로 인해서 건강한 토론을 하는 게 어려워졌음을 인정하고 건강한 토론의 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또 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어떻게 가져야 할지 이야기해야 한다. 윗동네에서 온 27,000여 명의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도 같이 배워야 한다. 거대한 문제 앞에 선결과제가 꽤 많은 셈이다.

지난 4월부터 윗동네, 아랫동네 청년이 삼삼오오 참여하는 ‘윗동네x아랫동네’모임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아주 작은 주제를 두고 있다. 딱히 모여서 뚜렷하게 하는 것도 없지만 지속적으로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힘써 모이고 있다.

어렸을 적 학습지를 제때 못 풀고 밀리면, 몽땅 책장 뒤에 숨겨놓고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숙제를 제거하는 게 가능했다. 통일이라는 숙제는 다르다. 왜 우리의 숙제가 되었는지, 학습지처럼 제거하는 게 왜 불가능한지, 어느 하나 답하기 어렵지만 숙제는 숙제다. 자꾸 미루어서는 안 되는.

나는 통일을 모른다. 해 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부끄럽게도 독일의 통일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조차도 부박하다. 어떤 정치적 조건 하에서 이뤄지는도 아는 바가 없다.

이런 내가 통일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 있다. 바로, 통일은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서민규  minkyu.seo@edush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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