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통진당 해산결정 그후

지난 19일 통합진보당의 헌법재판소 해산 결정이 있었다. 헌재는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직접적·실질적 위협이 되기에 시급히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예상과는 달리 8:1이라는 압도적인 해산 찬성 결정이 나온 것은 지난 정부와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권의 하의 헌재 인사권자에 의한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따라서 사실 재판소 내 보수화 경향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럼에도 8:1이라는 판결 정족수는 국민들의 총의를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번 통진당의 해산은 1958년 진보당의 강제해산 조치 이후 내려진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 정당해산 조치이며 현행 헌법과 1988년 헌재가 출범한 이래 내려진 최초의 결정이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통합진보당은 해산명령과 함께 소속 국회의원 5명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며 정당의 모든 재산은 국고로 귀속되게 된다. 또한 향후 유사정당의 창당도 금지된다.

헌재가 내린 통진당 해산의 결정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근거규정인 헌법 제8조 4항에서 비롯됐다. 당초 헌재는 경찰법 11조 제4항 등 위헌사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려는 조직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한 ‘정당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 경우에 해당하며, 오직 헌재가 그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경우에만 정당은 정치생활의 영역으로부터 축출될 수 있다”라며 정당 해산의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이 판례의 문구는 정당설립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내겠다는 헌재 스스로의 고뇌가 담긴 신앙고백과도 같은 문구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정당은 분산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결집하여 상향적으로 국가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중개자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써 헌법상 매우 중요한 제도적 보장의 한 형태이다. 특히 이번 정당해산심판과 같은 중대 사안의 경우 국민 다수의 정치적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함이 옳다. 그러나 필자는 헌재의 결정문과 같이 과연 통진당의 해산이 그렇게도 민주주의를 심각히 위협할 만큼 사안이 급박하고 중대했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통진당은 지난 총선에서 200만표를 획득하였고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만 3만여명에 이르는 매우 건실한 정당이었다. 민주적 정당성이 농후한 이 집단 전체를 종북세력으로 결론짓는 것은 법조인의 양심에 비추어서도 사려 깊지 못한 결정이었다. 설령 당내 소수인사 내지 지도부가 종북적 행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헌당규에 의한 징계조치나 지도부의 해산 내지 형사법적 처벌에 의한 보충수단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해산이라는 강력한 결론을 내린 헌재의 결정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섣부른 결정이었다고 본다.

헌재의 결정에는 피청구인 통진당이 서면 제출한 900여건보다 월등히 많은 청구인 법무부의 2,900여건의 증거서류의 분량에도 좌우되었다고 본다. 사실심이 아닌 헌재에게 있어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을 내려야 할 헌재 재판관으로서는 방대한 법무부측의 증거자료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제출한 그 방대한 자료의 상당수는 정보기관 내지 사법기관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 또는 가공한 자료가 상당부분 섞여 있어 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 법무부가 제출한 증거내용 중에는 이석기의 종북적 발언이 다수 나타났는데 이는 판타지 소설에나 있을 법한 비상식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설령 이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구체적, 기능적 역할의 분담이 없이 단순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던 개인의 발언 그 자체만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할 만한 구체적 위험성이 나타났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발언들로 일반 국민들이 설득되리라 보는 것도 기우이다.

여러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번 헌재의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불가하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종북논란이 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통진당이 해산된 이후에도 제2, 제3의 매카시즘은 계속될 것이다. 종북세력이 사라진 이후의 타깃은 북한 정권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려는 세력 즉, 친북세력이나 평화론자들에게까지 옮겨질 소지가 크다. 이로 인한 남남갈등과 사회분열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향후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더욱 억압받을 것이며 신은미씨와 같은 통일운동가들은 더욱 쉽게 종북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제는 진보세력 스스로도 낡은 이념의 깃발을 내리우고 자성과 반성의 시간이 필요한 때이다. 오래도록 이어져 온 진보세력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파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영영 사라질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다. 이 위기의 시간들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 대한민국 진보의 미래와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이장한/ 통일미래사회연구소 연구원

이장한  janghan32@hanmail.net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