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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사슴이라 불러야

“천하라는 것은 텅 빈 큰 그릇이다. 무엇으로 그 그릇을 유지하는가. 바로 이름[名]이다. 무엇으로 이름에 이끌 것인가. 바로 욕구[欲]다. 무엇으로 욕구를 기를 것인가. 바로 부끄러움[恥]이다.”

연암 박지원이 쓴 ‘명론(名論)’의 첫 부분이다. 명론에서 ‘이름[名]’은 ‘명칭’, ‘명예’ 또는 ‘명분’으로 조금씩 뜻이 다르게 쓰였지만 서로 통한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이름(명칭)은 중요하다. 대개 이름으로 구성된 언어 체계에 따라 사물을 인지하고 생각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혼란해지자 천하가 위태로워져
“만물(萬物)은 흩어지기 쉬워서 서로 붙어 있을 수 없는데, 이름으로써 머물게 한다. 오륜(五倫)은 어그러지기 쉬워서 서로 친할 수 없는데, 이름으로써 묶어둔다. 무릇 이렇게 한 후에야 큰 그릇이 충실하고 완전해져서 기울거나 뒤집어지거나 망가질 걱정이 없게 된다.”

오륜의 질서가 이름으로써 유지된다는 것은, 공자가 말한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부모가 부모답고, 자식이 자식다운(君君 臣臣 父父 子子)’ 사회를 의미한다. 각자 제 이름, 즉 자신의 지위와 신분에 충실한 사회다.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이름(명예)에 대한 기본적 욕구가 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된다.

“온 세상의 벼슬과 녹봉으로도 선(善)을 행하는 사람을 모두 포상할 수 없으니, 군자에게는 이름으로써 선행을 권할 수 있다. 온 세상의 형벌로도 악(惡)을 행하는 사람을 모두 징벌할 수 없으니, 소인에게는 이름으로써 악행을 부끄럽게 할 수 있다.”, “사람이 심히 바라는 게 부귀이지만 도리어 부귀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어 벼슬과 돈을 사양할 수 있다. 사람이 크게 치욕스러운 게 형벌이지만 도리어 형벌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이 있어 가혹한 형벌을 감수할 수 있다. 이른바 이름(명예) 때문이다.”

이름(명칭)이 어지러워지면 어떻게 되는가. 연암은 그 심각한 결과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예시했다. 진시황이 죽은 뒤 환관 조고가 후계자 부소를 죽게 하고 무능한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했다. 황제 권력에 기생해 권세를 휘두른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馬]이라 우겼다. 어리둥절한 호해가 주위 신하에게 물었다. 권력에 굴종한 신하는 말이라 대답했다. 사슴을 사슴이라 말한 신하는 조고에 의해 제거됐다. 사슴이냐 말이냐 진실이 문제가 아니었다. 권력이 이름을 어지럽히면서 달리 생각하는 사람을 억압하기 위한 술책이었을 뿐이다.

“사슴과 말의 형상이 비슷하지만 한번 그 이름이 어지러워지자 천하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가 나타났다. 오호, 저 사슴과 말의 이름이 천하의 존망(存亡)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마는 하루라도 분변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선과 악, 영예와 치욕과 같은 구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명(正名)과 명실상부는 인식과 실천의 문제
이름이 어지러워진 사례가 어디 진나라뿐인가. 며칠 전 고세훈 교수의 칼럼(‘말의 오염, 정치의 타락’, <다산포럼>)에서 말의 오염 사례가 열거되었다. 목록은 얼마든지 추가될 수 있다. 가령 ‘민영화’란 이름도 수상하다. 공기업을 사기업에 팔아넘기면서 비효율을 이유로 내걸지만 공적 기능 포기나 후퇴는 감춘다. 요즘 검은 거래의 의혹도 제기된다. 민주, 복지, 보수, 진보 같은 좋은 이름은 점점 알맹이가 빠지고 껍데기만 남는 듯한 느낌이다.

화제가 되고 있는 미국 CIA 고문보고서를 둘러싸고, 베트남전 참전 베테랑인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고문을 인정했지만, 군 복무를 한 적이 없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은 그것을 고문이라고 부를 수 없고 애국적 행위였다고 강변했다고 한다. ‘고문’과 ‘애국’의 이름이 어지럽다. 고문보고서 공개야말로 문명적 가치의 수호이자 애국일 것이다.

   
 

공자는 정치의 우선적 과제로 ‘정명(正名)’을 들었다. 헛된 이름은 인식을 그르치게 하고 그릇된 실천으로 이끈다.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헛된 이름에 현혹되지 않고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요, 또한 제대로 된 이름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름[名]과 실체[實]가 부합하고[名實相符], 사슴을 사슴이라 부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과제이다. 이를 누가 가로막을 것인가.

김태희/ 다산연구소 기획실장, 정치학 박사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김태희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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