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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오염, 정치의 타락

권력의 타락은 말을 오염시키고, 오염된 말들은 다시 정치의 타락을 부추긴다. 오웰의 『1984』가 그린 세계다. 한국 정치가 빈말들의 격전지로 된 지는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정치인들에게 무노동 무임금을 들이대는 것은 본질을 빗겨간 해법이다. 정작 눈을 부릅뜨고 따져야 할 것은 노동의 질이거니와, 선진국정치에서의 치열한 정책논쟁을 볼 때마다, 이 땅의 정치인들이ㅡ아예 소통의 문을 닫아건 대통령은 논외로 하자ㅡ정말 공짜로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그 와중에 기득권층의 지배담론은 은밀히 강화되고 조용히 확산된다.

왜곡된 말과 담론이 판단을 불가능하게 해
돈이건 권력이건 힘있는 자들은 먼저 말과 담론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는다. 가령 현실의 세계화가 계층간 국가간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데도 ‘대안은 없다’ 유의 담론들이 먹히고, 재정적자는 불황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긴축이 대세”라는 강변이 통한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도 지적했듯이, 긴축으로 불황을 벗어난 역사적 예는 없다).

성장이 있어야 분배도 있다는 이른바 적하(滴下, trickle-down)이론은 어떤가.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이 성장이 부족해서 복지국가에 들어서지 못했다고 말할 대담한 이는 없을 것이다. 서구의 복지선진국들은 전후의 폐허를 딛고 복지국가를 구축했고, 오늘날의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훨씬 뒤처지던 1980년대에 그들의 분배체계는 이미 완숙기에 들어섰다. 성장은 분배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현실이 매번 확인시키듯 성장과정 자체가 권력적인 한국적 상황에선, 성장이 거듭될수록 분배는 더욱 요원해지리라는 논리가 훨씬 설득적이다.

왜곡된 담론이 만드는 인지 부조화는 논점 자체를 가리고 가장 조야한 도덕적 판단 이외의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한국은 분단 이후 일련의 권위주의체제를 겪으면서 말의 왜곡을 각별히 심하게 겪었다. 가령 자유주의는 그 풍요한 역사, 내용이 사상된 채 북한과 대비된 남한체제의 선전을 위해 동원되었다. 그리하여 혹독한 권위주의하에서도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는) 체제에서 살았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시장) 자유화가 ‘시장을 거스르는 정치’를 주된 내용으로 삼아야 하는 민주화로 전치, 호도되었다.

사회과학에서 중요한 학술적 개념인 계급이 사실상 금기어가 된 지는 벌써 꽤 되었다. 실은 필요할 때마다 일사불란한 계급적 연대를 실천해온 자본이야말로 가장 계급적일 터이지만, 자본은 다양한 차원에서 계급 내 분열을 거듭하는 노동을 오히려 계급적이라고 비난하며 계급을 경멸적인 단어로 만들어 왔다. 계급을 부정하는 이러한 담론에는 이미 권력자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찌라시와 국기문란이란 단어도 함부로 취급돼
급기야 찌라시나 국기문란 같은 단어도 온전한 대접을 못 받는 상황까지 왔다. 한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고 했지만, 우리 실정에서 찌라시는 함부로 취급돼도 좋은 단어가 아니다. 수많은 사건의 단서가 거기에서 시작되었고, 왕왕 그것은 미처 확인되지 않은 정보원의 역할을 해냈다. 특히 정보와 소통이 억눌린 사회에서 고급정보는 찌라시 형태로 우선 회자될 수밖에 없거니와, 그것이 권력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이는 상황이 그만큼 위중하다는 반증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익충돌의 중심에 서 있는 최고 권력자가 먼저 나서서 관련 정보를 찌라시로 내치는 것도 참으로 염치없지만, 정상적이라면 대통령은 무죄추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무죄가 확증될 때까지(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죄인의 자세로 상황에 임하는 것이 맞다. 그 ‘찌라시’로 인해 사람이 죽고 나라 전체가 온통 혼란을 겪고 있지 않은가.

최근 미국에선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CIA의 민낯이 까발려졌다. 그간 CIA의 비행과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찌라시 수준의 흉흉한 풍문들이 떠돌았던가. 마침내 의회의 조사를 통해 그간의 풍문들을 적나라하게 확인시키는 보고서가 공개됐고, 미국 민주주의의 치명적 결손을 대통령이 즉각 나서서 사과했다. 어느 단계에서도 국기문란 운운은 없었다. 우리에겐 언감생심,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 조사란, 언급만으로도, 국기문란이 될 테니까.

   
 

신비주의가 일상이 된 여성대통령 밑에서 우리는 언제 풍기문란이란 단어마저 시련을 당하지 않을까, 곡예하듯이 세월을 살고 있다. 소통의 부재로 인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소통 대신 막무가내의 호통으로 자신의 충정을 하소연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그래서 더 딱하다. 최근의 ‘땅콩 회항’은 그나마 유도로(誘導路)에서 행해졌지만, 대한민국이란 비행기는 아예 활주로 위에서 위험한 후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모골이 서늘해진다.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고세훈  shk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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