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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개똥벌레다탈북자나 남한 사람이나 모두 외로운 실존임을 자각하는 것이 통일의 시작

“해가 질 무렵 개똥벌레가 태어났어요. 개똥벌레는 날개를 펴고 어두워지는 하늘로 날아갔어요. 개똥벌레는 외로웠어요.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가려고 불빛을 밝혔답니다. 개똥벌레는 불빛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날아갔어요. 그러나 불빛은 밤을 밝히는 전등불이었어요. 개똥벌레는 또 다른 불빛을 보고 그쪽으로 날아갔어요. 그러나 그것도 개똥벌레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물거리는 촛불이었어요.”

미국 태생의 세계적인 그림 작가 에릭 칼의 ‘외로운 개똥벌레’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개똥벌레 한 마리가 친구들을 찾아 밤을 헤매는 과정을 동화적인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개똥벌레는 마침내 친구들을 찾았고, 밤하늘을 수놓는 개똥벌레들의 화려한 불꽃쇼와 함께 동화는 끝을 맺습니다.

   
▲ 에릭 칼의 그림동화 '외로운 개똥벌레'의 한장면.

개똥벌레는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곤충입니다. 반딧불이라고도 하죠. 지금은 개체수가 크게 줄었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전국의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녀석입니다. 반딧불이란 고유 이름 대신 ‘개똥벌레’란 지저분한 별명을 달게 된 데는 두엄이나 퇴비 쌓아둔 곳에 주로 서식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이 ‘냄새나는’ 개똥벌레를 우리 곁에 친숙하게 데려와준 이는 신형원이 노래한 ‘개똥벌레’란 노래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어린이든 어르신이든 아마 누구나 친숙하게 부를 수 있는 가요 중에서도 대표적인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곡을 두고 국민가요라고 하지요. 가사도 길지 않은 만큼 마저 실어봤습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나 나나나나 쓰라린 가슴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든다/ (2절)마음을 다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 뿐인걸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손을 잡아주렴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든다 울다 잠이 든다 울다 잠이 든다”

개똥벌레의 아름다운 밤의 여행을 그린 에릭 칼의 동화와 달리 이 곡은 개똥벌레의 처절한 외로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의 왕따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스스로 친구를 멀리한 것도 아닌데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며 그 밤을 혼자 울다 지쳐 잠든다는 내용입니다. 어쩜 이 노래가 사랑받는 이유도 아이러니하게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밑바닥에 간직한 한(恨), 슬픔 따위를 흥겹고 간결한 리듬의 곡이 훌륭하게 승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인 거죠. 만일 느리고 슬픈 곡조에 이 노래를 담았다면 이 곡은 ‘한오백년’ 식의 구닥다리 노래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저는 어느날 이 노래를 듣다가 이 땅 탈북자가 오버랩됐습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북한을 버리고(버릴 수밖에 없었죠) 남한이라는 꿈과 환상의 땅에 기적처럼 당도했지만 정작 마음으로 자신을 반겨주는 이는 없었던 겁니다. 남한의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해도 못난 자존심 때문에, 오랫동안 몸에 밴 거칢이 오히려 남한 친구에게 상처만 주고 자신도 상처만 받고 마는 겁니다. 자신의 몸에 가시를 잔뜩 품은 고슴도치가 친구에게 다가갈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격이죠. 북한 땅에서도 그랬는데 남한 땅에서조차 그들은 기댈 언덕이 없었던 겁니다.

친구 없는 개똥벌레처럼 이 땅 탈북자들은 외롭습니다. 마치 외국에 유학이나 이민을 간 가난한 학생처럼 그들에겐 남한은 낯선 땅입니다. 외모와 언어만 닮았지 그들에겐 외국 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겐 진정한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 친구는 또 다른 탈북자가 아닙니다. 바로 남한 사람입니다. 남한 사람이 탈북자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두 사람의 우정은 두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 분단을 허무는 엄청난 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남한 사람에게 장애인 대하듯, 사회적 약자를 대하듯 탈북자들을 향해 선심을 쓰거나 긍휼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같은 마음은 오히려 탈북자의 자존심만 상하게 할 뿐입니다. 바로 남한 사람인 나 자신도 개똥벌레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 역시 누군가 진정한 친구를 필요로하는 외로운 실존인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이 땅 탈북자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하는 개똥벌레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개똥벌레의 존재감은 밤에서야 드러납니다. 냄새나는 두엄더미에서 몸을 쳐박고 있다가 깜깜한 밤이 찾아오면 비로소 그 밤을 수놓는 한 줄기 불빛으로 자신을 사르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나 남한 사람이나 각자가 개똥벌레임을 인식하는 것, 분단의 밤을 밝히고 통일의 새벽을 앞당기는 시작 아닐까요.

김성원(유코리아뉴스 대표)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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