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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성애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한 서울시 인권헌장 제정을 철회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 시장은 얼마 전 보수 기독교단체와의 면담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시장후보 시절 제시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과 인권위원회 설치 등을 사실상 무산시킨 것이다. 이에 성소수자단체와 인권운동단체들은 서울청사 1층 로비를 점거한 채 박 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규탄농성을 벌이고 있다. 잊을 만 하면 재발하는 동성애 논란에 다시 박 시장이 불을 지핀 것이다.

과거 동성애 문제는 일반인들 사이에선 우리의 문제가 아닌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으며 극히 이례적인 행위로만 치부하여 은폐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동성애와 인권문제가 동시에 논의되면서 점차 가족관계 등에 변천이 가해지고 미국 등 서방사회에서는 이를 공론화하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박 시장의 논란을 보면서 어느덧 우리나라도 이러한 동성애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성애와 성소수자의 문제는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 시대적 감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에 따른 제도적 보장은 일반인들간의 많은 대화와 소통을 통한 다양하고도 폭넓은 사회적 담론으로 해결해야 함이 마땅하다. 물론 찬성, 반대 어느 쪽이든 이를 주장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일관되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고 억압인 것이며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과 질서에도 반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과거 차별금지법 논란의 태풍 속에 있던 곽노현 전 교육감의 축출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성애 문제는 이념과 종교, 나아가 개인의 세계관이 얽힌 매우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와 건전한 논의의 장을 전복시키고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통상 과거의 사례에서처럼 상대 후보를 넘어뜨리기 위한 정략적 목적 하에 이뤄진다. 이러한 동성애 프레임은 그 어떤 정치인이라도 한번 갇혀버리면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는데 이러한 차원에서 동성애와 성소수자의 프레임을 활용한 정치공학은 매우 치명적인 공격수단이 되곤 한다.

동성애가 문제되는 것은 차별금지법에서와 같이 아동,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과 함께 논의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입법 금지운동을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이다. 그러나 동성애의 허용과 소수자의 인권옹호가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는 것은 큰 오류이다. 동성애 문제는 단순 제도의 차원을 뛰어넘는 윤리와 도덕의 문제가 결부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동성애 문제는 우리 사회 내 가정(假定)적 동의에 기초한 장애인, 아동, 노동자와 같은 소수자 인권보호를 위한 논증방식과는 양립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성애를 소수인권의 문제와 동일시하는 것은 양적 유사성을 질적 개념과 혼동한 인식론의 착오이자 유추해석으로 볼 수 있다.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자들이라도 동성애에는 충분히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박 시장이 동성애를 반대한다 하여 그가 소수의 인권을 경시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엄연히 틀린 명제가 된다.

보수기독인들이 동성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큰 문제가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바라본 동성애자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질서와 본성에 반하는 비유형적 인간의 한 형태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러한 동성애자는 구약시대 그리고 역사상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 동성애는 그간 숨겨왔던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 유독 현 시대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대중들에게 지탄을 받는 것도 동성애를 속칭 말세의 징조로만 바라보는 흑백논리와 비성경적 자기확신의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동성애는 후천적 학습에 기초한 모순적 결과로서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회복과 치유의 대상인 것이지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동성애 논란 또한 우리 사회 내 소통의 부재에 기인한 만성적 결과라 생각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협상기술과 민주적 리더십의 부족, 소수자를 배려하는 관용과 배려심의 결핍, 논리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집단간의 전달방식은 막대하고 소모적인 사회비용으로 환원되는 악순환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가치와 목소리를 존중할 줄 아는 시민의식, 그리고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와 문화를 누리는 데 있어 우리는 아직도 많이 서툰 것 같다. ‘천민자본주의’,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비아냥처럼 서방국가들과는 달리 비교적 손쉽게 얻어진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누리기엔 아직까지도 역부족이란 말인가?

이장한/ 통일미래사회연구소 연구원

이장한  janghan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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