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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세대에는 통일될 거다?

“니캉내캉 어제 @!#%#@”

중2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갔던 내 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경상도 아이들이 쓰는 방언에 여지껏 표준어와 전라도 방언만을 듣고 살았던 15살 소년은 처음 듣는 경상도 말에 이질감을 느꼈다. 서울은 물론이고 전라도권을 벗어난 적이 없던 당시의 내게 있어 크나큰 충격이었다.

21세, 원래 1년 더 있다가 군대에 가려 했건만, 아버지의 “너 군대 가기 싫어서 그러지?”라는 말에 홧김으로 입대를 한 나는 강원도 인제의 한 예비사단에 소속됐다. 그곳은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등 수많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한 소대에 모여 생활했다. 그중 어떤 경상도 출신 선임이 광주를 촌동네라 놀려도 장난으로 그런 것임을 알기에 “우리 지하철도 있습니다”라고 받아치며 그리 큰 지역감정은 느끼지 못한 채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 복학한 나는 당시 활동하던 선교단체에서 주최한 여름수련회를 위해 생애 두 번째로 경상도 땅을 밟았다. 광주 촌놈이었던 나를 비롯한 몇몇은 부산사람들은 우리보단 잘 살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버스에 올랐고, 광주보다 상대적으로 낡아 보이는 부산의 시내버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느끼며 수련회를 즐겼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이던 해라 국제적으로 상당히 크게 진행됐던 당시 수련회에서 나를 비롯한 캠퍼스 친구들은 마지막 밤 부산까지 왔는데 해운대는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해변으로 향했다. 즐겁게 놀다보니 바닷물에 신발이 모두 젖어버렸던 우리는 맨발로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야, 전라도 놈들은 돈도 없어서 맨발로 다니냐? 불쌍하네 내가 신발 사주랴?”

숙소로 가던 도중 한 취객이 우리 일행을 보고 조롱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나누던 대화에서 전라도 말이 섞인 것을 보고 객기를 부렸나보다.

“내가 광주 시내라는 데 한번 가봤는데 담배 한 대 피니까 다 돌았더라. 광주가 그만큼 못살아”

지금의 나였다면 못 참고 금방 멱살이라도 잡았겠지만, 당시 여리디 여렸고 수련회 기간 은혜 충만했던 터라 그냥 웃으면서 말상대를 조금 해준 후 다시 숙소로 향했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까지 들어선 마당에 더 이상 지역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그리고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복학생이던 내게 그 취객의 발언은 너무 충격이었고, 그후부터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생겼다.

그리고 2009년, 1년 동안 선교활동을 위해 일본 후쿠오카로 떠났다. 후쿠오카에 있는 선교센터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온 선교사들 뿐 이었다. 내가 구사하는 전라도 방언 때문에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출신지가 다르다는 생각은 별로 느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잘 따르던 선교사 누나가 한 말 때문에 놀라는 일이 생겼다. 내 고향 광주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누나의 고향인 부산에서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 때 살기가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누나와는 4~5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광주와 부산은 말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도 너무나 달랐다. 후쿠오카에 있을 당시 누나가 너무 잘 대해줘서 취객 때문에 받았던 부산에 대한 상처와 두려움은 어느 정도 아물었지만, 요즘도 경상도 사람들이라고 하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경계심부터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분단하면 떠오르는 것이 남과 북이라는 생각을 많이들 하지만, 실제로 우린 남과 북은 물론 동과 서로 나눠 있다. 정치인들의 권력놀음에 놀아나 생긴 지역감정은 우리 부모세대는 물론 우리 세대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고, 내 다음세대인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마음에도 언젠가 상처를 남길 것이 뻔한 일이다. 교회에서 영아부 봉사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배를 온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에 언젠가 나와 같은 이유 때문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할아버지 대에는 남과 북을 갈랐고, 아버지 세대에는 동과 서를 갈랐다. 동서남북을 나누던 칼은 이제 세대간의 갈등을 위해 휘둘러지고 있으며 우리는 물론 다음세대의 심장을 도려낼 것이다.

   
 

너희 세대에는 통일이 될 거라는 둥, 더 좋은 사회가 될 거라는 둥의 이상적인 발언 뒤에는 ‘우리는 이제 못하겠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는 식의 책임전가만으로 들릴 뿐 더 이상 희망을 품지는 못하겠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영남과 호남 사이의 지역감정조차 해결 못하면서 무슨 통일을 논한단 말인가? 통일되면 우리는 북 주민들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안겨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이제 “너희 세대 때”라는 말을 쓰지 말 것을 전국에 있는 20세 이상의 성인들에게 부탁한다. 대신 “우리가 바꿔줄게 걱정마” 이렇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범영수 기자  bumyung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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