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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인간에게 자주권(自主權)을 주었다

『맹자(孟子)』라는 책은 맹자의 저서입니다. 책이 전해진 이래로 많은 학자들이 『맹자』를 재해석하고 주(註)를 냈지만, 조기(趙岐)라는 분의 주를 구주(舊註)라 이르고,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신주(新註)라 하여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산은 이 두 책을 놓고 조기의 바른 해석을 따르기도 하지만 비판한 내용도 있고, 주자의 주를 바르게 여기기도 하지만 혹독하게 비판하는 대목도 많았습니다. 특히 성론(性論)에서 정자(程子), 주자의 이론이던 ‘성즉리(性卽理)’의 논리를 완전히 반대하여 ‘성기호(性嗜好)’설을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맹자의 기본 입장은 성선설(性善說)이었습니다. 공자·정자·주자·다산도 성선설의 입장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성선설에 접근하는 다산의 입장은 정자나 주자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다산은 순자(荀子)의 성악설이나 양웅(揚雄)의 선악혼재설에도 반대하였습니다. 다산의 성선설에 대한 획기적인 학문적 업적은 인간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주체적인 권능, 즉 ‘자주지권(自主之權)’이 있다는 논리의 창안이었습니다. “선을 행하고 싶으면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고 싶으면 악을 행할 수 있어 향방이 유동적이고 정해지지 않아 그 권능이 자신에게 있다(使其欲善則爲善 欲惡則爲惡 游移不定 其權在己 : 孟子要義 第三)”라는 명쾌한 지론을 제시했습니다.

때문에 “새나 짐승들이 일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고 말하여 금수와 다른 인간은 자기 자신이 발전과 변혁의 주체임을 세상에 알려주었습니다. 자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유동적인 선악, 그런 자주적인 결정권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과의 구별이 불가능하게 되고 만다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러한 맹자의 사상과 다산의 해석에 재미를 느끼며 『맹자요의』를 읽고 있는데, 마침 창비 출판사의 계간지 『창착과 비평』 겨울호가 우송되어 왔습니다. 잉크 냄새가 상큼하여 책을 열어봤더니 백낙청 교수의 장문의 시대적 담론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글에는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국가와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논평을 곁들여 “이것이 나라인가 ”라는 소제목도 있고, 상식·교양·양심·염치가 사라져 가는 세상에 대한 개탄과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못함까지 안타깝게 생각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최근에 정부에서 결정한 ‘전시 작전권 이양’의 무기한 연기에는 옳은 비판을 가한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왜 하필이면 맹자의 성론과 다산의 ‘자주지권’이 생각났을까요

“좋건 싫건 국가가 있는 한은 주권이 있어야 하고, 국가의 주권에는 유사시 자기 군대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핵심인데 그러한 군사주권이 회복되기로 예정되었던 것을 국회나 국민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번복한 것은 6·25전쟁 와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통제권을 통째로 미국에 넘겨준 것보다 더욱 심각한 주권양도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백낙청) 라고 점잖게 비판한 글입니다.

   
 

국가 원수는 일차적으로 국군통수권자인데 그런 통수권의 일부를 양도한다는 보도를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산의 자주권과 백 교수의 글을 읽으며 그런 옳은 주장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습니다. 답답한 세상입니다.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박석무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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