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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감옥에서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오영필 감독의 서쪽나라(3) - 갇혀. 있는. 세계.

 
알고 보니 이라터의 지시로 단유진이 내 옷을 숨긴 것이었다. 쑥색 폴라 티를 이라터와 바꾸는 조건으로 점퍼를 되찾았다. 함박 웃는 그의 웃음이 나에게 전염되었다. 이곳에 온 지 보름 만에 이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나눔’이었다.


감옥 생활의 첫날.
이미 여러 명이 일어나 있었다. 그들은 마치 현미경으로 곤충을 살펴보듯 뚫어져라 나를 살폈다. 여드름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얼굴부터 시작해서, 괜찮게 보이는 갈색 가죽점퍼와 흙이 묻어 있는 구리색 신발까지. 하나하나 뜯어보더니 누군가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을 해도 통 반응이 없자 벽에다 글과 숫자를 썼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인 듯했다.

단유진. 27.

그의 이름은 문신처럼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그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 좋은 친구라며 일일이 이름과 나이를 알려 주었다. 경계심이 해제된 예닐곱 명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어설픈 중국말을 하는 한국 놈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장시간의 신경전으로 예상된 상견례는 단유진의 호쾌한 웃음 한방에 싱겁게 끝났다. 그런 그들이 고마워 자리에 일어서서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그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어떤 이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단유진이 내 가죽점퍼와 안경을 쓰고 천천히 돌면서 장쩌민 흉내를 냈다. 그들의 관심사가 내게서 내 물건으로 옮겨갔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내가 가진 것이 어찌 점퍼와 신발뿐이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아무런 제약 없이 누려왔던 자유와 물질적인 풍요, 나를 지키고 있는 유· 무형의 재산들. 지충루라는 또 다른 친구가 반가운 표정으로 ‘니하우’하고 인사를 했다. ‘굿모닝’하며 화답해 주니 그가 다시 나에게 ‘셰셰’라고 답했고 다시 내가 ‘쌩큐’라고 받아 주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쌩큐를 여러 번 반복했다. 나를 이름대신 쌩큐로 부르려는 모양이다.

감옥에서 2002년 새해를 맞이했다. 며칠째 면도를 하지 않은 탓에 코와 턱 주변에 수염이 거칠게 자랐다. 후치산이 마당을 걷고 있는 나를 부르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콜라 캔으로 만든 집게 모양의 털 뽑는 도구였다. 그의 무릎에 누워 눈을 감았다. 햇살이 가득한 감옥 안은 평안했다. 털을 깎아본 적은 있지만 뽑아 본 적은 없었기에 콧수염이 뽑힐 때마다 신경의 건드림이 참기 힘들었다. 그것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가 뿌리째 뽑히는 통증이었다. 석고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열중하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가 콧수염을 다 뽑자 이번엔 하쫀이 흰머리를 뽑아 주었다. 어떤 이에겐 그저 무료함을 보내기 위한 소일거리가 어떤 이에겐 지극한 섬김으로 느껴지는 순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깨달았다.

1월 2일 화요일. 날이 어두워지자 가로등 불빛에 몰려드는 나방들처럼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저녁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텔레비전에 내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함께 보고 있던 친구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12월 29일 새벽, 국경 지대인 둥치에서 북한 주민 12명이 국경선을 넘으려다 붙잡혔고, 이들의 탈출을 도운 조선족 1명과 한국인 3명이 체포되었습니다.”

며칠 전 부대에 붙잡혀 있을 때 두 남자가 와서 카메라를 찍은 일이 생각났다.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요식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뉴스에, 그것도 톱뉴스로 나오다니! 탈북자들을 배경으로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공안의 모습을 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자 문득 지금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을 글로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과 몸짓, 감옥의 구조, 이곳에서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까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펜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의 묘안을 짰다. 예를 들면 ‘보친로가 마루를 거닐면서 노래를 부른다’라는 현재의 상황을 ‘보친로는 간혹 집 생각이 날 때면 마당을 거닐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라고 과거화해서 기억 속에 보관하는 것이다.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둥치 감옥의 구조는 군대 내무반처럼 마루와 바닥으로 나뉘어 있었다. 마루는 침실로도 사용되었고 그 뒤엔 큰 창문이 나 있었다. 왼쪽 벽엔 중국어, 오른쪽 벽엔 몽골어로 수감자가 지켜야 할 열 가지 조항이 붙어 있었다. 벽면 아래로는 가로 25cm 세로30cm의 삼단 선반이 있는데 맨 위엔 개인 수건들이 걸려 있었다. 가운데에는 식사 때 사용할 수 있는 컵이, 아래 칸은 밑반찬이 담긴 그릇 통이 있었다. 문 오른쪽 옆엔 작은 탁자가 있고 그 위에 70년대 풍의 낡은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 옆엔 배설할 때 사용하는 오물통과 빨래할 때 사용하는 빨간색 양동이, 세수 용도의 하늘색 양동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오전 6시. 세수를 마치면 가장 나이가 어린 보친로가 아침 식사를 위해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아침 식사는 오전 8시 30분. 보친로가 사인을 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식사 대형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식사는 유지광을 중심으로 모였다. 마루 왼쪽으로 종자오링, 지충루, 오른쪽으로 이라터, 단유진, 보친로 등 여섯 명이 식사를 하고 나머지 세 명 즉 후치산과 하쫀과 나는 열외로 바닥에 앉아 식사를 했다. 제공되는 음식은 누런 밀가루 빵과 뜨거운 물이 전부였다. 빵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 보친로가 음식물을 정리하고 후치산이 바닥 청소를 했다. 곧이어 카드놀이가 시작되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주류는 유지광과 그 왼쪽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고 비주류는 그의 오른쪽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다. 주류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누지만 비주류는 사소한 것에도 배척당했다. 나는 세 평이 채 되지 않는 좁은 바닥을 반복하여 돌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의 이야기꾼은 단연 유지광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데, 특히나 《중국 형사소송법》이란 책이 있어 사람들이 자기 형량과 관련해 물어오면 자세하게 일러주곤 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있는 듯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공연을 하는 배우고, 듣는 사람은 관객과 같은 착각을 하게 했다. 지충루는 이곳의 아침을 여는 사람이다. 마흔 셋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피부가 탄력 있는 그는 아침마다 남을 위해 따뜻한 물을 양동이에 받아 놓곤 했다. 세수할 때 쓰는 물의 양은 작은 바가지 한 번 뜨는 만큼이다. 그들 대부분은 살림꾼이었다. 떨어진 옷이나 신발을 꿰매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것을 어디에 숨겨 놓았을까 싶은데 어디든 살짝만 들추면 바늘과 실, 종이, 볼펜, 담배 등이 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관심의 대상인 것은 외국인이라는 점과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요, 경계의 대상인 것은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앉아서 기도하는 모습이 파룬궁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시비는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걸음걸이부터 대변을 보는 것까지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이러한 시달림은 가뜩이나 감옥 생활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 현실을 외면하고 내면의 세계로 더욱 침잠하게 했다. 며칠 사이에 말수는 급격히 적어지고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욱 나빠졌다.

단유진은 짓궂은 장난을 자주 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툭툭 치고는 시치미를 뗀다거나 ‘춘요비’하며 욕을 한다거나 간밤에 바지를 숨겨 놓는 등 갈수록 그의 장난은 강도가 심해졌다. 단유진은 사람들에게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따돌림은 곧 집단의 따돌림으로 변해갔다. 유지광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비누를 쓰지 못하게 했고 이라터는 자신의 수건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고 모두 잠이 든 새벽에 큰 소리를 질렀다. 결국 생존을 위해 그들에게 굴복해야만 했다. 그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부당한 요구도 말없이 순종했다.

그 와중에 내 편이 되어준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몽골족인 하쫀이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그가 부러웠다. 비결이 무엇일까? 그는 이곳 규칙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누구의 시비나 장난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너그럽게 털털 웃음을 지어 보였다. 특별히 그는 단유진과 친했다. 둘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심하게 싸울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장난에 불과했다. 그를 통해 점점 이곳 사람들과 사귀는 방식을 알아갈 수 있었다.

1월 10일 월요일.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하다. 그런데 오늘따라 태양의 느낌이 따사롭다. 마치 인격을 지닌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이라고 할까? 불현듯 커튼을 걷었더니 보고 싶던 친구가 집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그런 느낌! 그렇구나, 태양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구나. 이처럼 주님도 어디서든 함께 계시겠지. 그 순간 태양의 따스함이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왔다. 가족과의 이별로 인한 외로움과 감옥에서 상처 받았던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해가 뜨는 아침에 주를 사랑하리. 햇빛 찬란한 낮에 주를 사랑하리.
별빛 반짝일 때 주를 사랑하리. 캄캄한 밤에도 주를 사랑하리라.”


나를 부르는 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름과 주소 등 기본적인 사항을 물었다. 지문에 검은색 인주를 묻혀 문서에 일일이 하나씩 찍었다. 눈 색깔, 얼굴 형태, 키, 몸무게 등 그는 늘 상대하는 일인 양 자연스럽게 내 몸을 검사했다. 조서 작성을 마치고 수감실로 돌아왔더니 사람들은 카드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이불 위에 올려놓았던 가죽점퍼가 보이질 않았다. 지충루에게 물었더니 잠을 자느라 자기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분위기였다. 저녁 무렵 하쫀에게 슬쩍 물었다. 단유진이 숨긴 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다짜고짜 점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단유진에게 점퍼를 찾아 주면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주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그 옆에서 잠잠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라터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보니 이라터의 지시로 단유진이 옷을 숨긴 것이었다. 이라터에게 쑥색 폴라 티를 주고 대신 점퍼를 받았다. 이라터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곳에 온 지 보름 만에 이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나눔’이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머문다’는 말처럼 그들이 원한 것은 비싼 가죽점퍼가 아니라 거기에 녹아 있는 따스한 마음이었다.

2차 심문이 시작되었다. 테이블 위엔 보온병과 세 개의 잔이 놓여 있었다. 잔 위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증기를 보면서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온기가 담겨 있는 그 컵에 손을 대었다. 따스한 기운이 손끝에 전해졌다. ‘긴장하거나 떨지 말자, 침착하게 최선을 다하자.’ 공안이 담배 한 대를 권했다. 목 깊은 곳까지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는 노트를 꺼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름은?”
“오영필입니다.”
“직업은?”
“방송 프로듀서입니다.”
“나이는?”
“33세.”
“사는 곳은?”
“서울시 관악구 봉천11동 180~426호.”


공안은 흰 종이 위에 자주색 파카 만년필로 조서를 작성하였다. 그가 통역을 통해 묻고 그 통역을 통해 내가 말하는 과정에서 주소와 이력을 쓰는 것만으로도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심문 과정의 비효율성 때문에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진이 빠졌다. 공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심문을 계속했다. 심문을 마쳤을 때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 내 사건 담당 공안이 들어왔다. 진술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난번 진술 내용과 판이하게 다른 이유에 대해 따지듯 물었다.

“당신이 한 짓을 모르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시죠?”
“당신은 중화인민공화국 법을 어겼단 말이오. 당신은 국경을 넘는 사람을 돕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자금을 대지 않았는가?”
“아뇨. 단지 그들의 여행에 동참했을 뿐, 조직을 하거나 자금을 대지는 않았어요.”
“나는 당신이 조직원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오. 조직원인 경우 중국 법에 근거하여 엄한 처벌을 받을 것이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내가 중국인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나요? 나는 단지 도움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뿐입니다.”
“당신은 도덕과 법을 엄연히 구분해야 돼요.”
“그럼 당신들은 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습니까? 피의자가 붙잡힐 경우 24시간 안에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가 내 말에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알다시피 중국에서 낙후된 곳의 하나이기에 다른 곳보다 모든 면에서 불편해요. 그 점을 감안해 주시오.”

조사를 마치고 방에 오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목이 메었다. 무심히 돌린 눈길로 창밖을 바라봤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무척이나 나를 보고 싶어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감옥 생활 이십여 일이 조금 지났다. 이곳에서 나의 역할은 아침에 오물통을 버리고 식사 후 바닥을 닦는 일이다. 나에 대한 그들의 경계는 여전했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친구가 되어 준 이가 하나 둘 늘어갔다. 종자오링은 한국어에, 지충루는 신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이곳 사람들의 특징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라터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가끔씩 자리에 누워 몽골풍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유지광은 잡학사전인 동시에 대단한 장난꾸러기다. 그의 익살스런 표정과 유머러스한 제스처는 감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답답함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청량제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임에도 두둑한 배짱의 보친로는 나를 압도했다. 그는 이라터의 심복으로 식사부터 빨래에 이르기까지 충성스럽게 이라터를 섬겼다.

하쫀은 마음씨 착한 순한 곰 같았다. 후치산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만의 특별한 장기가 있다. 바로 털 뽑아 주기다. 그 속도의 빠르기와 정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단유진은 절름발이로 다리는 불편했지만 힘이 세고 아주 민첩하다. 한동안 온몸에 종기가 나서 고생을 했지만 아픈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뚝심이 강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비쳐질까? 아침마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파룬궁, 마루를 거닐면서 생각에 잠기는 사색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추구하는 몽상가…… 그런 내가 이들과 얼마나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에 의해 성장한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에겐 관계성이 중요하고 그것을 맺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관계성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언어에 생각과 감정을 담아 그것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리라. <4편에 계속>

 

2001년, 2003년 탈북자들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각각 3개월, 17개월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한 오영필 감독의 수기를 연재합니다. 2011년 제28회 한국기독교출판문화상 우수상 수상작인 <서쪽나라>(홍성사)의 내용 일부를 수정·보완한 것이며, 탈북현장의 긴박함과 한 개인의 깊은 고민을 전달합니다. 오영필 감독에 대한 소개는 하단의 저자소개와 '관련기사' 참고. 

 

오영필. 다큐멘터리 감독 및 작가이다. KBS 뉴스 투데이, 브이제이 특공대에서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고, 2001년, 2003년 탈북자들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각각 3개월, 17개월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했다. 저서로 <서쪽나라>(홍성사, 2011, 제28회 한국기독교 출판문화상 우수상)가 있으며, 다큐멘터리 <금지된 여행>(2009년, 제 7회 기독교 영화제 대상)을 제작했다.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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