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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언론은 탈북자를 두 번 죽인다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관련 '미디어 비평'

연예인들도 시위를 하고, 어떤 정치인은 단식도 한다. 하지만, 낯선 주제, 낯선 사안이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는 왜 북한으로 다시 보내지는 걸까? 온통 눈물 가득한 사진들, 구구절절한 사연들이다. 가면 죽는다는데, 막을 길은 없는 걸까?

정황은 이렇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잡아 가두고 있고, 이들을 곧 북한으로 보내려고 한다. 중국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보지 않고, 불법월경자로 본다. 이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중국의 공안부>가 서로 체결한 국경 지역 업무 협정 때문이다. 북한에 강제로 다시 보내진 탈북자들은 ‘비법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 ‘조국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친 반국가범죄자’로 처벌을 받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매우 가혹하고, 한국행 목적이 확인될 경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정도로 가해진다는 데 있다.

북한과 중국은 1986년 ‘국경지역의 국가안전과 사회질서 유지 업무를 위한 상호협력 의정서’를 체결하였고, 이를 세분화하고 구체화하여 1998년 ‘국경지역에서 국가의 안전과 사회질서 유지사업에서 호상 협조할 데 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비법월경자를 체포하여 관계자료와 함께 북한에 넘겨주도록 되어 있다.

물밑작업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문제였지만, 국가인권위원회 회의 후 이 내용이 언론에 새 나갔다. 길이 막혀버린 지금, 이제 민간, 정부, NGO 등은 이 사안을 국제적으로 이슈화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두 주 동안 이와 관련한 기사만 215건이 게재 되었다. 워낙 언론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보니,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위의 그래프에도 나와 있듯이, 중국에 잡혀있는 탈북자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다. 2월14일~25일, 정확히는 11일간 총 215건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바로 전, 동일한 2주 동안 탈북자 관련 기사가 겨우 8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인데, 이는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때는 잘 다뤄지지 않는 소수자‧약자 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어느 때보다 탈북자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는 요즘이다. 이번 사안을 다룬 기사 속에서, 탈북자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언론 비평 기사 연재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앞서 올린 글-탈북자 언론 보도 분석을 시작하며-을 참조하길 바란다) 지난번 ‘미디어비평’의 서문을 통해 밝혔듯이, 언론에 비친 탈북자를 분석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하였다.

먼저 기사 유형별로 살펴보면, 위의 표에 나와 있듯이, 정부가 공식적인 제스처를 보인 2월 20일(월)부터 기사 수가 급증하였고, 주로 스트레이트(사실 및 정보 전달을 위한 단순보도) 기사 위주로 나갔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칼럼이나 사설을 통해 사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기사들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이슈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총 14개 신문사 중에, 동아일보가 가장 많은 기사를 게재하였고, 조선일보와 서울신문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대표 보수 신문들이 전체 기사수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안 자체가 ‘북한 인권’ 이슈와 연관되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수 진영에서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이번 사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용 분석은 다음과 같다. 지난 두 주간의 신문기사 거시진술구조(표제-부표제-리드)에 나타난 기호들을 토대로 ‘범주화’, ‘과어휘화’, ‘전제’ 분석 방법을 시도하여 보았다. 먼저, ‘범주화 분석’을 하였다. 신문기사에 나타난 기호들의 범주화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특정 사안을 특정 기호화하여 계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이를 읽는 사람들이 바로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막는 과정에서 중국과 우리 정부와의 마찰 및 북한과 중국의 탈북자 처우를 ‘전쟁’과 같은 상황으로, 또한 ‘대결‧갈등 및 긴장’의 상황으로 범주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이들 기호를 통해, 한‧중 관계의 ‘대립’관계에 주목하며, 탈북자와 북‧중 정부 간의 ‘갈등 국면’과 ‘대치 국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는 실제 전투상황에 대한 보도 방식으로 내용이 전달되어, 전투 상황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범법 행위’에 초점이 맞춰지고, 이러한 탈법적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더 큰 문제”를 갖게 된다.

쉽게 말해 진짜 문제는, 중국 정부와 북한이 우리 정부와 탈북자에게 가하고 있는 행위를 ‘전투 행위’로 간주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전투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와 범법행위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정되면서, 비난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과 중국의 탈북자에 대한 처우는 ‘범법행위’로 범주화되고 있는데, 이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 있는 탈북자가 처한 극한 상황을 이러한 기호로 나타내어, 지구상의 가장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신체’와 관련된 기호도 마찬가지인데, 탈북자들이 처한 절망적인 현실을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여 범주화하면서 보다 감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이들을 희생양이면서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어휘화 분석’는 탈북자라는 대상에 한정시켜 살펴보았다. ‘과어휘화’는 그 사안을 표현하는 사람(기자 또는 글쓴이)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작용하게 되어, 특정 대상을 부정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이를 통해 부정적 가치를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센과 머독(Hansen & Murdock)은 ‘폭동’에 대한 연구에서, 경찰을 지칭하는 명칭은 ‘police' 하나이지만, 폭동자는 ’thieves', 'looters', 'things', 'yobs', 'madman', 'hooligans', 'wild mob of youth' 등으로 ‘과대화’ 되어 있고, 그들의 행위 역시 ‘wars', 'mob voilence', 'orgy of plunder' 등으로 ’과대화‘ 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탈북자들이 처한 상황의 처절함이 과격한 어휘로 나타나고 있다. 보다 절망적인 기호와 암울한 기호들 속에서, 탈북자들은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존재, 무능한 사회적 약자, 한‧중 관계 악화의 주된 원인을 제공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게 하고 있다. 피해자이면서, 보호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존재로, 약자로 그려지는 탈북자들은 언론 보도 속에서 더욱 '주변화(marginalized)'되고, 소위 힘 있는 ‘우리’가 배려하고 보호해야 하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위의 범주화 분석과 과어휘화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기호들 속에 중국 탈북자 강제북송 사안은 일종의 전쟁 상황, 사회적 병리 현상, 자연재해 등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얘기를 다르게 표현하면, 기사 속에서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선택된 기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중국 탈북자 강제북송 사안의 실체가 ‘전쟁’, ‘병리현상’, ‘자연재해’ 상황인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전제’라 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중국 탈북자 강제북송 사안이 한‧중‧북 세 나라 사이의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전투 행위로 여겨지는 데 이어, 탈북자들이 처한 상황과 고통을 ‘병리현상’과 ‘자연재해’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전투로 인한 결과와 폐해에 대해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이 사안은 기호를 통해 폭풍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여겨져, 작금의 반인륜적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병리현상’으로 전제될 때는 더욱 ‘자연스러운 상황’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져, 전개 상황 및 결과들에 대해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시급한 사안임에도, 언론의 보도 속에서 해결이 필요한 문제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포기하지 말아야 할 해결 과제이기보다는 ‘체념할 수밖에 없는’ 사안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최근 2주 동안 보도된 215건의 기사 분석을 통해, 중국 탈북자 강제북송 사안에서 탈북자들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탈북자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부당한 처우가 기호를 통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탈북자 집단을 가장 불쌍하고도 무능한 존재들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과격한 어휘로 표현된 탈북자를 묘사하는 기호들 속에서, 이들을 우리와 동등한 주체가 아닌,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언론의 보도가 이 사안을 ‘전쟁’, ‘자연재해’, ‘병리현상’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체념적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처한 상황이 급박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 언론은 이를 보도할 때 전투적 상황을 묘사하듯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주목을 끌려고 하기보다, 문제 사안을 명확히 짚어내고,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찾는 방향 위주로 보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론이 제시된 대안 중 차별성과 우월성을 가려낼 수 있는 논쟁의 장이 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민간‧정부‧NGO가 각자의 역할 안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기사들 속에 언급되고 있는 김정은의 ‘3대 멸족’ 발언은 어디서 온 것인가? 분석 대상 기사들 중에도 3번이나 언급되었다. 처음 언론에 나온 것은 지난 12월 말, 자유아시아방송이 북한 양강도 취재원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사로 옮긴 것이 그 출처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명확하게 ‘전언’이라 보도하면서 사실 확인이 어려운 사안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SBS 심태원기자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088257) 소위 ‘카더라’ 통신에 가까운 이 보도는 2월 14일 동아일보에서 2번, 헤럴드경제의 보도에서 1번 인용되었고, 25일 조선일보의 기사에서도 마치 사실인양 전제되어 보도되었다. ‘북한주민의 전언’이 기정사실처럼 둔갑하는 과정은, 사실(fact)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북한 문제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태이다.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것은 선택한 명제가 신문사의 입장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차용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하는 기본적인 언론 윤리가 신문사의 자기 치장에 밀리는 하찮은 가치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글 초반에 언론 보도 때문에 억류된 탈북자들의 살 길이 막히기도 했던 것을 언급했듯이, 언론은 사람 목숨을 위태롭게도, 구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탈북자 사안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기자들에 의해, 진짜 탈북자를 위한 보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우월적 태도를 버리고 보다 깊은 안목을 가지고 써내려 간 기사를 마주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김단  jade4n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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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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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ㄷㄷㄷㄷ 2013-02-03 00:56:44

    큰 틀에서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지를 알겠습니다.하지만 실제 기사를 예로 들어서 주장하는 바를 설명했다면 무엇을 주장하는지 이해가 되겠는데 역시 실제 예시가 없어서 무엇을 주장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가 없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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