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차이를 만드는 인간

런던 하이드파크 동북쪽에 있는 ‘스피커스 코너’에 가면 여기저기서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세월이 꽤 흘렀지만, 그곳에서 열댓 명의 청중과 요란한 논쟁을 벌이던 한 젊은이에게 눈길이 간 적이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는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원숭이로 진화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각종 그림, 통계, 도표에다 복잡한 수식까지 동원한 설명은 너무나 진지했지만, 그는 아마 진화개념 자체를 문제 삼고 있었을 것이다.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였든, 인간이 ‘진화’해서 원숭이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연유에서든, 이리저리 치이며 조롱거리가 된 인간에게 은근히 연민의 정마저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인간, ‘회복되기를 원치 않는 병든 동물’
일찍이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우주의 중심에서 추방당한 인간은 다윈에 의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물학적 환상을 버려야 했거니와, 진화론의 충격은 당대의 세기말적 음울에 단단히 한몫했을 것이다. 그로기 상태의 인간에게 마지막 케이오 펀치를 날린 이는 프로이트였다. 그가 보기에 ‘흥분이 들끓는 가마솥이자 혼돈’인 이드에 끌려다니는 인간은 ‘절반 이상으로 동물이며, 그것도 진정 회복되기를 바라지 않는 병든 동물’이다. 과학이 아니라도 근대 이후 문학, 예술, 종교에서 만나는 인간관 역시 압도적으로 비극적이었다는 것이 내 관찰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임을 자위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과학에 빚진 바 크다. 특히 의학의 발전은 놀라워서 인간의 평균수명을 한 세기만에 두 배로 늘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최근의 에볼라 공포가 보여주듯 치료가 늘수록 치명적인 새 질병들도 꾸준히 더해졌다. 에릭 시걸이 『러브 스토리』 이후 한참만에 펴낸 『의사들』이란 소설 도입부에는 “광기에 근접한 천재들”인 하버드 의대 신입생들을 앞에 놓고 백발의 학장이 행한 단 세 마디의 연설이 나온다. 그는 “제군, 세상에는 수천 가지의 질병이 있지만 의학은 그들 가운데 26가지에 대해서만 치료법을 가지고 있네. 나머지는 모두··· 어림짐작일세”라는 ‘환영사’만 던지고 곧장 방을 나간다.

고대 유대인들의 지혜문헌들은 인간의 생애를 “짧고 악하다(few and evil)”는 말로 요약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1백세 운운하며 길어진 노년을 외려 걱정하고 엄살을 부리기도 하지만, 유대역사서인 구약에서 야곱이 파라오 앞에서 자신의 생을 ‘짧고 악한’ 순례자의 삶이었다고 회상할 때 그의 나이는 130세였다. 아담의 후손들 가운데 가장 장수했다는 므두셀라가 969세에 죽었으니 지금 인류는 한참 줄어든 기대수명을 아래로부터 다시 힘겹게 올리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어느 지점까지 이를지, 복이 될지, 화의 또 다른 원천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불평등의 신앙, 개인 간 차이에 집착
그 남루하고 짧은 생애 동안에도 인간은 수많은 차이들을 만들며 살아간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토니는 인간은 자신보다 상위개념을 전제할 때 비로소 서로를 목적으로, 즉 동등하게 취급한다고 말한다. 가령 무한히 위대한 신을 명상할 때에만, 인간의 차이는 한없이 사소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문제는 신의 위대성을 잊으면서 인간의 왜소함도 잊었고 그리하여 인간들 간의 차이, 구분을 만들고 확대하고 강조하며, 거기에 집착한다는 데 있다. 진화론에 기대 인종과 민족의 본래적 차이를 강변하던 인간은 이제 대상을 개인으로 옮겨서 희생자의 품성을 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최근의 한 조사는 한국은 2020년 무렵이 되면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15%를 넘고, OECD 최고의 불평등국가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추정이 어려운 자산불평등까지 합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불평등을 교정해 낸 정도가 나라마다 현저히 다른 데서 드러나듯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상당 부분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국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장대한 보고서를 펴냈던 스티글리츠는 민주주의의 위기야말로 불평등이 가져오는 가장 큰 해악이라고 단언한다. 정치에서마저 ‘1달러 1표’의 시장원리가 관철된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침몰을 뻔히 보면서 수백 명의 생명을 수장시켰던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무도회장의 마루가 무너져 내리는데, 허공에서 춤추는 시늉을 하며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고세훈  shko@korea.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