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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노년 만드는 ‘할머니 배구단’

저무는 가을 하늘은 팍팍한 한국호를 타고 떠다니며 보더라도 아름답다. ‘비장미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가을 길목에서 만난 ‘여성인권영화제’ 영화들은 일상의 고달픔을 위로하며 격려해준다. 여배우들이 몸매 뽐내는 레드 카펫도 없고, 정신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도 없는 소박한 영화제는 지친 일상을 푸근하게 감싸 안는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꽂히는 영화는 노르웨이 다큐멘터리 <할머니 배구단>(The Optimists)이다. 추운 날들이 가득한 눈 쌓인 북구, 66세부터 98세에 이르는 여성 아마추어 배구단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은 웰빙(well being)이 곧 웰다잉(well dying)이라는 비의를 일깨워준다.

낙천주의자(The Optimists) VS. 힘찬 사내들(The Power Guys)
백 세가 낼모레인 고로 선수는 아침 식사를 만들며 근력 키우는 다리 운동을 한다. 상대적으로 어린 60대 후반 선수도 주방에서 틈틈이 훌라후프를 돌리고, 80대 후반 선수도 눈밭에 나가 한 발로 서는 요가자세로 균형감각을 다진다. 아무리 추워도 코트를 잔뜩 껴입고 실내 운동장까지 썰매를 타고 가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은 나이 들기의 유쾌함을 가르쳐준다.

‘낙천주의자’라는 팀 이름처럼 서로 격려하고 연대하며 따로 또 같이 인생길을 가는 이들은 활력을 위해 대결할 팀을 구글링으로 찾아낸다. 도전에 응한 상대는 ‘힘찬 사내들(The Power Guys)'이란 스웨덴 노인 남자 배구단이다. 졸지에 남녀대결 국제대회를 치르게 된 낙천적인 배구단은 지역 은행에 찾아가 스폰서를 얻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청소년 운동 시설 같은 고정적인 것을 지원한다는 은행 간부의 말에 선수복 지원도 고정적이지 않겠느냐는 기지를 발휘하여 지원금을 따내기도 한다. 평소 뜨개질을 해온 고로 왕언니는 손뜨개로 꽃모양 팀 문양을 만들어 스웨덴행 버스 안에서 나눠준다. 처음으로 만든 파란색 선수복 상의에 각자 바느질로 팀 문양을 다는 버스풍경은 정겹기만 하다. 선수복 등에 붙은 번호는 선수들 나이다. 88번, 98번, 66번 등... 두서없는 번호는 안티 에이징 상품에 눈먼 젊음 중독 세상을 탈주하는 아우라마저 느끼게 해준다.

평균연령이 더 높은 이웃 나라 언니들의 도전을 받은 스웨덴 ‘힘찬 사내들’도 활력을 얻으며 힘 기르기에 매진한다. 남녀 혼성 경기이기에 여성 신장에 맞춰 네트 높이를 낮추고, 레이디를 대접하는 서구 문화 기사도를 발휘하기도 한다. 힘과 기술에서 밀린다고 판단한 낙천적인 언니 팀은 ‘웃음’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양 팀 합쳐 최고령인 98세 고로 선수는 자기가 뛰면 질 것이라는 엄살을 피우면서도 코트에 나가 뛰어 최우수 선수상을 받는 인기도 누린다. 더 젊은 남자팀에게 졌지만, 서로 손잡고 댄스파티로 운동장을 누비는 이들의 배구시합 에필로그는 ‘낙천주의’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팀을 회고하는 10주년 기념사진에 등장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 주로 암이나 치매로 세상을 떠났지만, 공놀이하며 나이 들기에 합류한 또 다른 언니들이 들어오면서 배구팀은 오늘도 돌아간다.

연대하며 즐겁게 나이 들기
유튜브에서도 인기있는 <할머니 배구단> 트레일러와 이미지들은 노년 인생길의 즐거움을 가르쳐준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노인 복지로 기나긴 노년기를 나누는 할머니 배구단은 공동체의 대안을 제시해준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들이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자”며 당장 공놀이팀을 만들자는 열정을 토로한다. “저런 공동체는 국가 차원의 복지가 잘 된 북유럽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누군가 김을 빼기도 한다. 반드시 그런 것일까 민간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인디 영화가 존재하듯이 인디 공동체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세월호를 안고 아프게 가는 한국호가 고령화 사회로 빨리 접어드는 중이라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한국호는 4년 후인 2018년이면 노인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에 프랑스는 115년, 영국은 91년, 미국은 88년, 일본은 36년 걸렸는데, 한국은 26년밖에 걸리지 않으니 빨리빨리 목표 달성이라는 관성이 발휘되는 셈이다. 그런 추세로부터 탈주하는 인디 공동체 생성이 이 가을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안도현의 시 <가을엽서>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앉으며 연대하는 즐거운 공동체를 청량한 가을 하늘 구름처럼 띄워본다.

유지나/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유지나  regard1@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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