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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경세가(經世家)는 산림(山林)에 숨었네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읽어보면 그 시절에 가장 추앙받던 경세가의 한 사람은 반계 유형원이었습니다. 물론 그때 반계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으나, 세상에서는 반계를 가장 훌륭한 경세가로 잊지 않고 있었나 봅니다. 위당 정인보는 오래전에 조선후기의 학술사를 정리하면서 반계 유형원·성호 이익·다산 정약용을 삼조(三祖)로 거론하면서 제 일조(一祖)가 반계 유형원이라고 못 박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반계도 죽은 뒤 백 년이 지나서야 그의 대저 『반계수록』이 간행되어 빛을 보게 되었을 뿐, 그는 생전에 겨우 진사(進士)에 그치고 일명(一命)의 벼슬살이도 하지 못한 포의한사(布衣寒士)로 생을 마쳤습니다.

국가의 통치에 인재발굴이나 거현(擧賢)·용인(用人)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모르는 지도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진 이들은 들처나지 못하고 산림에 묻히거나 암혈에 숨어지내다 세상을 떠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성호 이익 같은 대학자, 반계 같은 경세가, 다산 같은 어진 이들은 당시의 군주들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니 끝내 나라가 망하지 않을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세상을 경륜하려던 정성어린 뜻
오직 반계 노인에게서 보았다네
깊이 숨어서 이윤·관중 사모했건만
이름 알려지기에는 왕궁에서 너무 멀었네
대강령은 균전법 시행에 있었기에
온갖 조목들은 바르게 서로 통했네
정밀한 생각으로 틈새 다 메워
고치고 가늠하며 온갖 노력 기울였네
찬란하게 군왕 보좌할 재목이었는데
산림에 묻히어 늙어서 죽어갔네
남기신 유문 세상에 가득한데
백성들에게 혜택 끼친 공 없었다

拳拳經世志
獨見磻溪翁
深居慕伊管
名聞遠王宮
大綱在均田
萬目森相通
精思補罅漏
爐錘累苦工
燁燁王佐才
老死山林中
遺書雖滿世
未有澤民功

茶山詩文集 『古詩二十四首』중에서

반계 같은 위대한 경세가를 세상은 알아보지 못해 저 전라도 변두리의 부안 땅에서 학문만 연구하다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으니 그렇게도 당시의 지도자들은 용인술이 부족했는지 안타까움을 삭일 수 없습니다. 반계가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없었음을 안타깝게 여겼던 다산 자신은 또 어떠했는가요. 정조라는 어진 군왕을 만나 겨우 몇 년 일해보려다가 정조의 훙거와 함께 18년이라는 긴긴 유배살이로 숲 속에서 묻혀 있어야 했으니, 이 일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던가요.

나라가 쇠잔해지려면 애초에 영웅호걸들을 찾아내기 어렵지만, 세상에 가득하게 영웅호걸들은 있건만 진영논리와 선거운동에 도와준 사람만 고르다 보면 영웅호걸들을 발탁할 기회가 없으니 거현이나 인재등용이 가능할 수가 있는가요. 옛날에는 나라의 원로들은 국로(國老), 대로(大老)라고 하여 극히 존숭하며 받들었지만, 요즘이야 국로·대로도 없지만 있어도 아예 존숭하려는 기미도 없습니다.

   
 

국왕을 도와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이룩할 능력의 소유자를 ‘왕좌재(王佐才)’라고 부릅니다. 그런 능력과 인격의 소유자를 골라 요즘 같은 빈약한 용인술에 보탠다면 어떨까요.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박석무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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