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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으로 읽는 북한 최고위급의 방한 의미와 향후 과제

건국 이래 처음이라는 북한 최고위층들의 방한. 갑작스럽기도 갑작스러웠지만 역사적이긴 역사적이었던 모양이다. 국내 일간지들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23꼭지를 할애했고, <경향신문>은 22꼭지를 할애했다. 이밖에 대부분의 신문들이 10꼭지 이상씩 북한 최고위급의 12시간 인천 방문에 아낌없이 지면을 썼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3인의 방한, 그 목적이 무엇이고, 의미는 무엇인지, 향후 과제는 어떤 게 있는지 일간지 보도와 행간을 살폈다.

◇방한 목적=이번 방한은 정부 발표대로라면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방한 하루 전날인 3일 오전 북한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최고위급 방한을 통일부에 알렸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이날 오후 이들의 방문에 동의한다는 뜻을 북한에 전달했고, 다음날인 4일 오전 8시 50분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 후인 9시 52분 북한 고위급 관계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서해직항로를 타고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북한은 아시안게임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을 격려하고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한 방한이라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을 제외한 북한 권력서열 최고 3인이 방한했다는 자체가 결코 단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으로 볼 수는 없다. 실제 우리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장관, 한기범 국정원1차장 등 행정부와 외교안보 수장들이 모두 참석해 이들을 만났다. 더군다나 남북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호 비방과 불신의 언행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방한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클 수밖에 없었다.

   
▲ 북한 최고위급 실세들의 방한 의미를 분석한 <국민일보> 6일자 보도


◇방한 의미=<세계일보>는 3인의 방한에 대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와병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목적 하에 계획된 깜짝 방문이었다”고 분석했다. <서울신문>도 12시간을 상정해 사전 계획한 실무 방문이었다는 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예방을 거절했고, 김정은 친서가 없었던 점 등을 들어 “대내외 이미지 개선을 위한 프로파간다(선전) 효과에 무게를 둔 것 아니냐”고 봤다.

최근 북한 경제나 식량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점, 직접 방문을 통해 ‘말로만 대화’를 강조하는 남한 정부와 차별화를 보여주려 한 점, 때마침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7위로 선전한 점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보여주기’ 전략이 아니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한 꼭지 기사는 전혀 다르게 봤다. 이들의 방한은 마지막 탈출구로서 남한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최고실세의 방한을 북한이 최근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도 관계가 냉랭해진 상황에서 대남관계 개선 말고는 출구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앙일보> 취재기자는 "우리 대표단과의 오찬 때 마주앉은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연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테이블 아래라 눈에 잘 띄진 않았지만 초조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성택 처형 같은 풍파를 견디고 김정은 체제에서 2인자 자리를 거머쥔 노련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며 다소 자의적인 해석을 담아 이 같은 북한의 불안한 상황을 설명했다.

◇남북 정상회담 시동?=이번 파격적인 북한 실세들의 방한이 오는 10월 말이나 다음달 초로 예정된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을 거쳐 남북 정상회담까지 이어질 거라고 보는 전망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이번 회담에는 정상회담의 전조(前兆)로 해석될 수 있는 파격적 요소들이 다소 포함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 중 하나로 안보라인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번 북한 최고위급 방문은 변화의 시그널로 해석된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정상회담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의 전제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꺼냈었고, 이번 북한 최고위급의 방문이 그런 변화 시그널의 시작으로 앞으로 상황 진전에 따라 정상회담이 가능한 조건이 얼마든지 갖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동아일보>는 거물 3인방과 박근혜 대통령의 만남이 불발된 점, 김정은의 친서가 없는 점, 방한 당일에도 북한의 대남매체가 박 대통령 비방을 이어간 점 등을 들어 "상호 신뢰를 쌓기에 아직 갈 길은 멀다"고 지적했다.

지금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언급하기엔 그동안 남북이 서로를 향해 가진 불신이 너무 깊어 보인다. 향후 이어질 고위급회담과 그에 따른 5·24조치 해제 내지는 완화, 북한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 제시 등의 행동이 없이는 정상회담은 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 반면, 이번 북한 최고위급의 갑작스런 방한에서 볼 수 있듯 북한의 또 다른 ‘통큰’ 행동이 남북을 갑작스런 대화 국면으로 몰아갈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이런 국면에서 우리 정부 역시 ‘통큰’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통일’에 대한 담론을 제시해왔지만 북한의 반발과 지나친 원칙론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행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상호 물밑접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수사적인 비판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물밑접촉을 통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도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북한 최고위급의 방한에서도 보듯 물밑접촉을 통하 고위급의 만남은 곧바로 신뢰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방한을 놓고 일각에서 사전 접촉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북한의 최고위 실세들이 방한 하루 전날 전격적으로 알려오고, 남한은 이를 일사분란하게 준비하는 것이 아무래도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거다. <중앙일보>는 "사전 물밑접촉 같은 교감이 이뤄져 남한 방문이 준비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며 "황병서 총정치국장 같은 고위 인사의 남한 방문이 돌발적으로 진행됐다는 건 믿기지 않는 데다 개천절 연휴 첫날 비상이 걸렸는데도 고위 인사 소집이나 관련 준비작업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점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향후 과제는?=향후 과제는 뭐니뭐니 해도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열릴 2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우리 정부가 밝혔듯이 5·24조치 해제, 이산가족상봉, 북한 핵문제나 인권문제 등 제반 현안들이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북한 핵문제나 인권문제에 대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북한이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주는 방식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이 문제(2차 남북고위급회담)를 어떻게 다뤄나갈지에 따라 박근혜 정부 나머지 임기 동안의 남북관계가 결정될 수 있다”며 “그러나 고위급 접촉이 재개되더라도 5·24조치 해제 여부와 금강산관광 재개, 대북전단 살포 중단 등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먼저 정해야 한다. 이 문제를 회피해서는 남북관계가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한겨레>도 김근식 경남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박근혜 정부로서는 이번이 남북관계 개선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태도로 살려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 교수는 남북 고위급회담과 함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 교수는 <매일경제> 기고글에서 "최고위급 3인의 방한은 이제 상호 비방 일색의 남북관계 흐름을 대화 쪽으로 선회시킨 것만은 분명하다"며 "다만 핵문제와 관련해서 6자회담 재개 문제는 병행해야 한다. 그게 안될 경우 남북간 근본적인 관계 진전은 어렵다"고 봤다.

요약하자면 이번 북한 최고위급의 방한으로 남북 대화의 발판을 마련하긴 했지만 남북 고위급 회담과 5·24조치 해제 등 그에 따른 우리 정부의 행동 없이는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근본 문제가 북핵 문제인 만큼 이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조속한 재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6자 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과 우리 정부는 북한의 책임있는 변화가 먼저라며 6자 회담 재개를 유보하고 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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