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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유신이 다시 찾아올라구?한 가을밤의 꿈

대학교 때 함께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친하게 지낸 친구 두 명과 길을 걷고 있었다.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길 모퉁이에 숨어서 주의를 살피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심상치 않은 행동에 어리둥절한 “나는 뭐하느냐”며 길을 재촉했지만 녀석들은 내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할 뿐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삐익~~~

조용하던 골목길의 정적을 깨는 휘슬 소리가 난데없이 울려 퍼졌다.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던 친구들은 휘슬소리를 듣자마자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가 난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황파악이 덜 된 나는 어리둥절한 채 서 있었지만 친구들의 이상행동과 고막을 찢는 듯한 불길한 휘슬소리에 늦게나마 발걸음을 재촉했다.

너무 늦었던 것일까? 어느 순간 내 뒷덜미는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한 이들의 손에 노리개가 되었고 나는 불안한 표정에 쪼그려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공포에 휩싸인 나는 한참동안 친구들을 찾아보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나처럼 붙잡히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아니면 나만 홀로 붙잡혔다는 것에 눈물을 보여야 할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나를 끌고 온 이들의 책임자인 것 같은 사람이 앞에 나왔다. 그의 매서운 눈빛을 본 순간 내 온몸은 얼음이라도 된 듯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지만 어이없게도 그의 얼굴이 영화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여유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종로로 가는 사람 손들어 봐”

마치 너희들의 생사여탈권은 내가 쥐고 있다는 듯 한 그런 말투에 기분이 나빴지만 차마 이에 대해 항의하지 못했다.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손 든 사람들 옆으로 나와서 손들고 있어”

어이가 없었다. 그가 무슨 권한으로 종로로 간다는 사람들에게 벌을 세운단 말인가... 이제는 안 되겠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항의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몸을 움직이는 나와 그의 눈빛이 마주쳤다.

“넌 뭐야!”

그의 일갈에 나는 마치 메두사라도 본 것처럼 온 몸이 굳어갔고 그 두려움에 입은 어버버거리며 말을 잊지 못했다.

웃긴 상황이 펼쳐졌다. 겨우 이성의 끈을 잡으며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이런 불합리한 일에 대한 비판이 아닌 “저...저는 양...천..구 가는데요”라는 비겁하고 부끄러운 말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가 내게로 다가온다. 대체 내게 무슨 해꼬지를 하려는 걸까?

내 앞에 멈춰선 그는 손을 위로 올려들고 나는 몸을 움추렸다.

이상했다. 그는 내게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손을 올린 것 같았는데 내 몸엔 아무런 통증이 없었다.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어두웠다. 미지의 공포와 불합리함으로 가득 차 있던 그 공터가 아닌 햇빛조차 안 들어와 벽지에 곰팡이가 쓸어있는 어두운 내 방이었다.

꿈이었던 것이다. 아마 내가 당원으로 가입한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 단체카톡방에서 “카카오톡은 감시당할 위험이 있으니 외국 메신저를 사용해야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 꿈으로 나타난 모양이다.

그런데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이 일이 왠지 곧 실제로 벌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 자리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는 항변 한 번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광주가 고향인 나는 부모님께 이런 것을 여쭤본 적이 있다.

“엄마 아빠는 5.18때 뭐했어?”

5.18 당시 아버지는 집 옥상에서 총이 발포될 때 나오는 섬광들을 구경했다고 했다. 나는 5.18때 그냥 구경만 했다는 아버지가 한심스러웠지만 이런 꿈을 꾸고 난 후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는가 싶었다. 박정희의 독재를 옹호하며 박근혜가 불쌍하니 대통령으로 세워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독재가 좋으면 북한으로 가서 살면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처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당시 어떤 이들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믿고 응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려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유신이 다시 찾아올 것 같다. 그리고 난 그 신(新)유신 시대를 올바르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내 생각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길 기도한다.

범영수  bumyung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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