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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 남북동질성 회복의 전기 마련할까?[남북교류사②] ‘만남’의 의미, 남북한 사회·문화교류사

아시안게임 개막, 북측 선수단에 쏠리는 관심
지난 9월 17일,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 선수단 본진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평양발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입국한 북한 선수단에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아쉽게도 응원단의 입국은 무산되었지만, 지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이후 10년 만에 남측에 방문한 북한 선수단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개막식 전에 치러진 남녀 축구 예선전에서 보여준 북측 선수들의 선전은 북한과 북한 스포츠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반면 북한 선수단을 대하는 아쉬운 모습들도 많이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은 거리의 인공기를 철거하고, 일반인의 인공기 소지 응원을 불허했다. 또한 북측 기자들에게 ‘북한 사이트에 대한 접근 차단’ 조치를 풀어주지 않아, 북측 언론인들은 자비를 들여 팩스로 기사를 송고해야 했다. 북측 선수단의 비공식적 언론 인터뷰도 주최 측에 의해 엄금되고 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 때문에 국제 대회에서도 냉전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남북관계가 화해무드였던 과거에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특히 열린 공간에서 펼쳐진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는 정부차원의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꾸준히 남북 사이에 화해의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뿌리의 역할을 해왔다. 과거의 남북 간 사회·문화교류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얻을 교훈은 없을까.

   
▲ 승리에 환호하는 북한 축구선수단 ⓒ인천아시안게임 공식페이스북

화해와 협력의 남북 사회·문화교류사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남북문제에 있어서 ‘정경분리원칙’이 발표되기 전까지 민간차원의 사회·문화교류는 모두 불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이 가로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측의 청년·학생들과 진보인사들이 북측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남측에 다시 돌아온 이들이 갈 곳은 감옥 외엔 없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재야세력이 비합법 공간에서 추진해왔던 통일운동과 남북교류는 이제 정부의 허가 아래 공적인 영역에서 대규모로 추진되었다.

2000년 이래로 남북은 8.15 민족통일대축전과 6.15 공동행사 등을 계기로 대규모 대표단을 번갈아 보내며,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취시켜왔다. 특히 남측 대표단은 정부 측 인사들 외에도 재야 통일운동 인사들과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중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으로 연 인원 100만 명의 남측 국민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2000년 착공되어 2005년 입주를 시작한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교류의 상징이 되었다. 이 외에도 각계각층의 남북교류가 줄을 이었다.

노동계에서는 남한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북한의 직업총동맹이 노동자 통일토론회와 노동절 공동행사, 그리고 노동자 축구대회를 꾸준히 개최했다. 특히 노동자 축구대회는 99년 12월 평양에서 남한의 민주노총 팀과 북한의 직업총동맹 팀 간의 경기가 열린 이래 2007년 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반 축구 동호인팀이 참가한 남측과 달리 북측 팀은 거의 프로팀 수준이어서, 경기가 일방적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남측 노동자들은 전반전이 끝나고 북측 사람들에게 “이렇게 몰아붙이면 어디 통일이 되겠습니까?”라며 우스개소리를 했다. 그러자 후반전부터 북측 선수들이 뛰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고의로 실수를 하기도 하면서 경기는 동점으로 끝났다고 한다. 이 경기 이후 남북은 아예 축구 팀원을 반반씩 섞어 ‘통일’팀과 ‘단결’팀을 재구성해 만남을 계속해 나갔다.(이갑용 지음, <길은 복잡하지 않다> 참고)

   
▲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 ⓒtongil-i.net 제공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남북 농민 간의 만남도 활발해졌다. 농민들은 2001년 7월 처음으로 남북농민통일대회를 통해 상봉한 이래 8.15 등을 계기로 분과 만남을 계속해왔다. 2001년 남북농민통일대회는 당초 남측의 농민들 1000명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남북을 오가는 배가 600명 규모의 설봉호밖에 없어서 이 인원밖에 방북하지 못했다. 북측에서도 조선농업근로자동맹 600여 명이 참가한 남북농민통일대회는 모두 1300명 규모로 개최되었는데, 단일 분과의 남북교류행사로는 최대 규모의 행사로 기록됐다.

南 20대 새내기와 北 40대 대학생의 상봉모임
청년·학생들도 남북공동행사의 구성원으로 6.15와 8.15 행사 등에 참가하기 시작해, 남북 대학생 상봉 모임 등을 정례화시켰다. 특히 2004년 3월에는 금강산에서 ‘금강산 통일 새내기 배움터’ 행사에 700여 명의 남측 대학생이 방문해 북측 대학생들과 상봉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1~2학년 학생들이 주로 참가했던 남측의 대학생들과 달리, 북측의 대학생들은 직장에서 근로를 하다 대학에 진학한 30~40대 학생들이 많아 대조적인 분위기를 이루었다고 한다.

종교계에서는 2003년 3.1 민족대회를 공동으로 치르며 남북 종교 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남북의 종교인들은 공동으로 법회·미사·예배 등의 종교행사를 가졌으며, 남측의 종교계는 북측의 사찰과 예배당 등의 개·보수를 지원하는 등 문화재 보존사업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치논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종교계의 특성상 다른 분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종교인들이 방북해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할 수 있었다. 종교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인도적 사업을 펼치며 남북교류의 주춧돌이 되었다.

문화·예술분야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교향악단 합동연주회 등 대규모 남한공연이 이뤄졌다. 평양에서도 이미자·윤도현·조용필 등 남측의 유명 예술인들과 남측의 교향악단들의 콘서트와 특별공연이 열렸다. 문화·예술 교류는 민족 동질성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수십 년 동안 갈라져 살아온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평양의 관중들은 이미자·조용필과 같은 중년 가수들의 노래에는 많은 공감을 하면서도, 윤도현밴드의 락 음악 공연에는 매우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웃지 못 할 일이지만, 여자 아이돌 가수의 짧은 복장 때문에 남북 관계자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잦았다 한다.

   
▲ 가수 조용필씨의 평양 콘서트 ⓒSBS화면 캡쳐

학계의 교류도 활발했다. 역사학계는 일본 식민지 문제, 약탈문화재 반환 문제, 역사왜곡 문제 등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성명발표와 고구려사 연구 등 학술교류를 이어갔으며, 언어학계에서는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통해 남북 간 언어 동질성을 찾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02년에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문필기 할머니와 관계자 13명이 평양에 방문해 북측과 공동으로 종군위안부문제, 강제노동, 역사왜곡 등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대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처럼 활발하게 진행된 남북 간 사회·문화교류는 북한에 대한 남측 국민들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켰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 당국 간의 공식적인 회담도 더욱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사회·문화교류를 통해 늘어난 남북 접촉은 민간인은 물론 당국자들 간의 공식·비공식 접촉면도 크게 늘렸으며, 이를 통해 남북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정서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정서적 교감을 토대로 남북관계는 몇 번의 정치적인 냉각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하게 진행되던 남북교류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면서부터 6.15와 10.4선언을 무시하고, 비핵개방3000 정책을 내세우며 북한과의 정면대결을 선포했다. 취임한 지 5개월도 되지 않은 2008년 7월에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으며, 이처럼 냉랭해진 남북관계에서 터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남북 간의 모든 교류는 중단되었다. 이것이 바로 2010년의 5.24조치인데, 이 조치로 인해 아직까지도 남북 간의 모든 교류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들어선 박근혜 정부에서도 남북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남북교류의 마지막 남은 상징이었던 개성공단도 2013년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5달 만에 재가동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에서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관계의 앞날은 불안하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과 ‘남북 고위급 접촉’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진정성은 북측은 물론 남측 국민들에게도 의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는 남측이 남북 대화를 꺼리고 있으면서, 북측이 대화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내세워 마치 북측이 대화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이렇게 대대적인 반북 캠페인을 벌이는 의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아시안 게임을 통해 높아질 북한에 대한 관심과 동포애적인 감정을 사전에 억누르겠다는 것이다. 스포츠 교류의 장에 정치적 대결 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6일 북측 선수단 본진이 입국하고, 축구 등 일부 종목의 예선전이 치러지면서 남북교류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것이 그리도 못마땅한가.

   
▲ 북측 선수들을 함께 응원하고 있는 남북공동응원단 ⓒ인천아시안게임공식페이스북

인천AG에서 만날 남북, 동질성 회복의 전기가 될 수 있을까
정부가 아무리 막고 싶어도 메달을 딴 북측 선수와 인공기까지 가릴 수는 없을 것이고,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선의의 스포츠 경쟁은 북측 선수단에 대한 동질의식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10년 만에 방문한 북한 선수단에 대한 사진과 기사를 쏟아내고 있어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같은 반공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남북교류사를 보아도, 국민적인 화해·협력 분위기는 남측 정부가 좋든 싫든 간에 남북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지금은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 이전과 같은 공식적인 교류는 불가능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인천 아시안 게임은 남북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교류의 본질은 ‘서로 자주 만나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은 오랜만에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리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준영/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우리사회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우리사회연구소에 있습니다.

이준영  uri-societ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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