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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 시장과의 새로운 관계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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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든, 북한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던 사람이든, 최근 북한 사회의 외관상의 변화는 분명 놀랍다. 도대체 여기가 정말 북한이 맞는지 눈을 의심하게 할 현상들이 불쑥 나타나고 언제부터인가는 하나의 추세를 형성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시장화’라고 부르는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009년 화폐개혁으로 물적· 재정적 토대를 상실했던 북한의 시장은 이제 그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속도가 붙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 북한의 시장화는 북한의 경제성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혹독한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는 것은 북중경협의 확대와 시장화의 확산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책은 갈 지(之)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암시장이 급속도로 커져 갈 때, 당국은 통제와 묵인을 반복했으나 큰 흐름은 묵인에 가까웠다. 2000년대 들어 7.1 조치를 계기로 시장에 대한 당국의 정책은 억제에서 촉진·활용으로 선회했다. 그래서 합법적인 소비재시장과 생산재 시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시장에 대한 당국의 정책은 2005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였고, 특히 2007년부터 는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통제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반(反) 시장화 정책은 2009년 정점에 달했는데, 당국은 종합시장의 직접적인 폐쇄 조치를 시도하고 화폐개혁을 통해 시장의 재정적 기반에 타격을 가하고자 했다.

하지만 생계적 기반을 시장에 두고 있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었고,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공식경제의 타격도 만만치 않음을 발견한 북한 당국은 결국 2010년 2월초부터 종합시장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늦추고, 나아가 5월에는 시장에 대한 억제 정책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종합시장은 다시 합법적인 존재로서의 지위를 회복했고, 시장에 대한 유화적인 정책기조는 현재까지 4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더욱이 시장에 대한 관용적인 기조는 김정일의 사망, 김정은의 취임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격변기에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어 외부세계의 관찰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종합시장 이외의 다른 시장에 대한 김정일 정권 말기 및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의 정책은 시장 전반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예컨대 당국은 시장경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대형 백화점과 같은 현대적 유통망을 대도시에 설립하고, 직접적인 통제 하에 둠으로써 소비재 시장을 공식 부문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울러 휴대전화 시장은 북한 당국이 새롭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이집트의 오라스콤과 함께 사실상의 독점적 해외수입 및 국내공급자로 등장하면서 수입가격과 국내판매가격의 엄청난 차이로 발생하는 독점 이윤을 수취하고 시장의 발전을 추동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성장하고 있는 신규주택 건설의 부동산 시장에 최근 북한 당국이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살림집 건설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워 민간자본의 유입을 묵인하고, 부동산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책기조가 허용보다는 좀 더 높은 수준일 수 있음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2012년부터 시범운영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6.28방침으로 알려진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다. 이는 현실과 공식 제도의 괴리를 어느 정도 메워주는 것이 그 기본 방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조선신보의 표현대로 “경영권한을 현장에 부여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농민의 일욕심을 돋구는 것”으로서 생산단위의 자율성 및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신보가 “국가지표 이외의 생산”, “국가계획을 벗어난 생산”에 대해서는 기업에 거의 모든 자율성을 부여하는 ‘독자 경영체제’가 도입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7.1 조치 때 기업에 대해 시장활동을 일부 용인한 ‘계획 외 생산·유통’을 연상케 한다.

결국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내용적으로는 농장 및 공장 운영에 있어서 시장과 관련된 제반 불법적 또는 반(半)합법적 활동의 상당 부분을 합법화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7·1 조치와 마찬가지로 이미 어쩔 수 없게 된 현실을 사후적으로 승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더욱이 2012년 6월부터 2년 넘게 시범운영되고 있다면 이 또한 ‘시장 친화적’ 상황이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시범운영의 성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같은 반(反) 시장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시범운영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고,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연구완성’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시장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받으면서 시장화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원래 북한 당국은 시장에 대해 근본적인 딜레마를 가지고 있었다. 경제를 위해서는 시장을 제도 내에 편입시켜 활성화해야 하지만, 시장이 활성화되면 정치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대한 억제와 허용의 딜레마적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2010년 5월부터 지금까지 4년 넘게 시장의 허용이라는 길을 택했다. 새로운 정권으로서는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면이 강하다. 또한 새로운 정권의 조기 안착을 위해서는 권력층의 지지도 중요하고, 따라서 이들의 금전적 욕구 충족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사실 북한에서 시장이 없으면 주민들의 생존이 불가능하지만 권력층의 생활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현실이다.

다른 측면도 있다. 이제 와서 시장을 없애려고 한들 과연 없앨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시장을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경제위기도 장기화되고 있지만 시장화 역시 ‘장기화’되고 있다. 시장 없는 북한 경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인식 또는 정책에 다소 변화가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전에는 시장을 없애느냐 살리느냐가 최대 고민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시장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아가 시장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 대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지향하는 것이 관리 가능한 시장화라면 관리 가능 수준을 조금 더 높여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당분간 시장 친화적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장에 대한 정책이 통제 쪽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 그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 있습니다.

양문수  msyang@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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