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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센스는 지금 퇴화하고 있을까?「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출판사 펴냄

 
일본의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푸드 에세이’ <부드러운 양상추>는 좋아하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추억, 풍경 그리고 그때 함께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도쿄타워>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에쿠니 가오리는 무엇보다 그 문체가 섬세하고 감각적이다. 음식에 대한 그녀의 감성을 기대하였다.


   
▲ 부드러운 양상추


맛이라는 감각은 참 묘하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힘이 있다. 독일의 어떤 요리사는 말기 암환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차려주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가장 먹고 싶은 요리가 무엇인지 요리사에게 알려준다. 요리사는 그 맛에 가장 가까운 요리를 준비한다. 이 요리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을 기억해낸다. 그 기억 때문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게 맛이 가진 힘이다. 맛이라는 감각은 이처럼 복잡하다.

에쿠니 가오리에게도 맛이라는 감각은 만남과 일상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소중한 매개체인 셈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맑은 대구탕을 끓이고 먹을 때마다 한겨울의 어둡고 차가운 바다가 떠오른다고 한다. 어릴 때 엄마가 이야기해준 그림 형제의 동화 <어부와 아내>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또 동생이 식당에서 예전에 전혀 먹지 않던 메뉴를 주문하는 순간 ‘아 동생에게 애인이 생겼구나’ 하는 걸 직감하기도 한다. 야생토끼가 사람들이 키운 양상추를 먹는 동화를 읽고 나서 그 맛을 토끼의 입맛이 되어 상상하기도 한다. 그것이 ‘부드러운 양상추’이다.

그녀에게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감각을 지닌 사람 같다. 우리와 다른 종의 인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드라마 가운데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지형이라는 남자가 나온다. 집안이 선택해 준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남자다. 그런데 오래된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약혼자 몰래 사랑했다. 이제 결혼식 날짜가 잡히고 이 여자 친구를 떠나야 하는데 여자 친구가 서른 살 꽃다운 나이에 치매환자가 되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지형은 부모와 약혼자에게 사과하고, 이 친구와 결혼하기로 한다.

나의 관심은 지형의 선택을 두고 나타나는 반응에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미친놈이라고 말한다. 젊은 놈이 제 인생을 치매환자에게 던졌다고 비난한다. 약혼자의 엄마도 정신 나간 놈이라며, 그런 놈과 결혼 안 한 걸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약혼자, 향기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이 예쁜 여자의 말이 감동적이다. “내가 왜 오빠를 사랑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 나도 그런 사랑 할 수 있는데”라고 말한다. 지형이 하는 그 사랑의 가치를 공유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연민을 느낀다.

나는 사람에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란 게 있다고 본다. 이 마음이 사람다움을 결정하는 마음이다. 에쿠니 가오리에게 있는 특별한 미각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누구에게나 주셨던 마음이지 싶다. 그런데 이 마음이 퇴화한 듯하다. 특히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명예까지 가진 사람들에게 이 마음의 퇴화를 자주 목격한다. 사람다움을 결정하는 중요한 감각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이 마음을 상실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더욱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 이 영화에서도 사람들 감각이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그 감각이 주는 가치에 대해 새로이 눈 뜨게 한다. 미각도 그렇고, 후각, 청각, 시각. 이 모든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감각이 퇴화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영화 <퍼펙트 센스>가 떠오른다. 이 영화에서도 사람들 감각이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그 감각이 주는 가치에 대해 새로이 눈 뜨게 한다. 미각도 그렇고, 후각, 청각, 시각. 이 모든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놓치는 수많은 감사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에쿠니 가오리처럼 맛을 통해 일상을 기억해내고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이 그 감각을 선물해 준 하나님의 뜻일 게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인생을 더욱 깊이 살아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상은 더욱 풍요롭고 감사가 넘친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감각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감각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감사를 회복하는 일이고,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일이고,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는 일이란 사실을 배운다. 북한을 사랑하는 감각, 통일의 맛, 사랑할 수 있는 마음, 혹시 퇴화되지는 않았는지 종종 사용해볼 일이다.


박명철(북칼럼니스트) 

 

박명철  aim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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