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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 다시 남북스포츠교류 물꼬 틀 수 있을까?남북교류사(1)

2000년 시드니 공동입장의 감격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전 인류의 환영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였다. 180여 명의 남북한 선수들은 태극기도, 인공기도 아닌 하늘색의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으로 입장했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화해를 염원하는 경기장 내의 11만 관중과 60억 인류는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친선과 화합의 올림픽 정신이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남북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2003년 아오모리 동계 아시아경기대회와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 경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등 총 8차례에 걸친 공동입장 행진을 이어가며 전 지구에 감동을 전했다. 특히 부산과 대구에 방문했던 북측의 응원단은 남북화해의 상징으로서 온 겨레와 아시아인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40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인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남북공동입장도, 북측의 응원단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 이래로 냉각된 남북관계 때문이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이번 대회의 슬로건이 무색할 지경이다. 몇 년 사이 뒤바뀐 정치환경이 스포츠 축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핑퐁외교’가 보여준 스포츠 정치
스포츠와 정치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중국과 미국 사이의 ‘핑퐁외교’다. 핑퐁외교는 1971년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미국 선수 글리 코웬이 실수로 중국 선수단 버스에 올라탄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선수단과 접촉이 금지된 중국 선수들은 당황한 코웬을 보고도 못 본 체 하고 있었다. 당황하는 어린 미국선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것은 유명 선수이자 중국 선수단 부단장이었던 좡쩌둥이었다. 좡은 코웬에게 중국 황산이 그려진 깃발을 선물했고, 버스에서 내린 코웬은 중국 선수들의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두 선수의 만남을 계기로 중국과 미국의 데탕트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좡과 코웬의 소식을 들은 마오쩌둥 주석은 급기야 미국 선수단을 중국에 초청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세계선수권 대회가 끝나고 3일 뒤인 4월 10일, 미국 탁구 선수들은 중국에 방문했다. 중국인들의 환대를 전하는 미국 선수들의 체험기는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해 10월, 중국은 대만을 대신해 UN에 가입했으며 이듬해에는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이 이뤄질 수 있었다.

물론 코웬의 실수는 우연이었지만 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미·중 데탕트라는 거대한 외교사적 결과를 이끌어낸 양국 지도자들의 기지는 놀라운 것이었다.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시대적 요구 앞에 선 우리들에게 ‘핑퐁외교’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많은 기회를 놓쳤지만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만큼은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꼭 찾아내야만 한다.

일본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
남북 간 스포츠 교류의 역사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핑퐁외교 못지않은 극적인 체육교류사가 있으며, 이때 온 국민이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유효하다. 1960년대 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과 수많은 단일팀의 기억, 공동입장의 감동 등 스포츠 교류가 남긴 감동의 자양분을 인천에서 되살릴 수는 없을까.

남북은 스포츠를 통해 체제 경쟁에 나서기도 했지만, 1960년대부터 꾸준하게 체육회담을 이어왔다. 단일팀을 구성했던 사례도 많다. 한편, 1991년의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코리아’ 여자 단일팀이 구성되어 많은 재일동포들의 환영을 받았다. 관중석의 재일동포들도 ‘민단’과 ‘총련’이 합동으로 응원단을 꾸렸다. 온 겨레의 응원 덕분이었는지 ‘코리아’ 팀은 3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북측의 유순복이 단체전 마지막 단식 경기를 승리하자 선수단과 응원단 모두는 분단을 잊고 서로 얼싸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날 시상식장에는 한반도기가 올라가고 양국의 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도 남북은 단일팀을 이루어 출전했다.

남북 스포츠 교류는 남북관계를 따라 표류하기도 했지만,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10·4선언이 발표되며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북은 8월 15일에 즈음하여 정례적으로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하는 한편, 1946년 단절된 경성-평양 축구대회의 맥을 잇는 남녀 친선 축구경기를 치르며 스포츠 교류를 이어갔다. 스포츠 교류는 남북교류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꾸준히 공동입장을 하는 등, 스포츠 교류를 계속 해오던 남북은 10·4선언을 통해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공동응원단이 경의선을 함께 타고 중국에 가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단절된 남북관계, 결렬된 인천AG 북측 응원단 방문
그러던 것이 2007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냉각되자, 선수들은 스타디움에서마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세기가 걸려 만날 수 있었던 남북의 체육인들은 두 번씩이나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수년간 계속되며 전 세계인을 감동시킨 한반도기의 물결과 남북 선수단의 공동입장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듯 했다.

그러던 중 2014년 7월 들어 박근혜 정부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막을 앞두고는 북측과 만나 응원단 파견 문제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외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회담은 북측의 결렬 선언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북측이 결렬을 선언한 이유는 남측이 ‘대형 인공기 게재 금지’와 ‘응원단 체류 비용 자부담’ 등 민감한 문제를 언급하며 의도적으로 회담을 무산시키려 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사회 각계는 물론 여당 내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에 입을 모으고 있을 때여서 안타까움은 더 컸다.

회담은 이렇게 성과 없이 끝났고, 남북공동입장은 물론 초미의 관심사였던 북한응원단의 입국도 무산되었다. 그런데 회담이 이렇게 맥없이 끝나버렸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북측에 ‘고위급회담’에 나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버스가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남북관계 개선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핑퐁외교’의 전례에서처럼 친선과 화합의 장인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남북 스포츠 교류를 통해 화해협력의 실타래가 잘 풀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선수단 본진 입국을 시발점으로 하여,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면 북측 선수단과 남북공동응원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고 이것을 계기로 민족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것이다. 북한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10위권 탈환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축구, 역도, 복싱, 유도, 사격 등 전통적인 강세 종목에서 선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수천 명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남북공동응원단을 조직해 남북 선수들 모두를 응원하고 있고, 이들과 북측 선수들의 만남은 벌써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멋진 장면
정부가 진정으로 ‘통일대박’을 원한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잘 살려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민간 차원의 노력을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도 ‘정부 차원의 고위급 회담’ 틀에만 집착하지 말고 열린 자세로 남북대화에 나서야 한다. 북측 선수단과 언론인과의 접촉면을 넓힌다든가, 북측 주요 경기 결승전에 응원단 입국을 재허용한다든가, 폐막에 즈음해 열리는 10·4선언 기념식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일정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북측은 지척이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당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제라도 공식·비공식 카드를 가리지 말고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텡은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남북은 이미 국제경기대회를 통해 민족 내부의 화합을 도모하고,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해 본 경험이 있다. 아시아인의 올림픽, 2014 아시아경기대회는 남북이 코를 맞대고 있는 접경지역 인천에서 열리게 된다. 인천은 남북관계의 온도 차에 따라 평화수역이 되기도 하고, 전쟁수역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때문에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평화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은 곳이다. 남북은 이곳 인천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하여, 반북대결과 기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선의의 노력을 경주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준영/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우리사회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우리사회연구소에 있습니다.

이준영  uri-societ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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