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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의 시대를 사는 법

지난 추석 고향으로 내려가는 마음은 유난히 착잡했다. 명절에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농성은 지속되고, 마땅히 나서서 진상을 밝혀야 할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책임자들은 돌아앉아 있고, 일베인가 하는 단체는 단식 중인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이름의 행패를 부렸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고 난세도 이런 난세가 없다. 그럼에도 보름달은 지상의 혼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하게 떠올랐다.

한 시대를 정의하는 일은 역사의 몫일 테지만,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우리 사회의 혼란상은 이 시대가 궤변의 시대임을 말해준다. 궤변이란 그럴싸한 논리로 거짓을 마치 참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다. 세월호 문제가 민생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논리부터가 궤변이다. 국가의 안전망이 총체적으로 무너진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는 일이야말로 민생의 기초인데, 그런 주장이 민생을 해친다는 해괴한 논법이 횡행한다. 그 언필칭 민생이라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삶을 보살피는 진짜 민생이 아니라 대기업의 숙원을 해결하자는 것임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 않는가.

궤변이 궤변을 낳는 사회
최근 담배값 인상 계획 발표로 빚어진 증세 문제도 그렇다.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실은 담배의 주된 소비자인 보통사람들의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강행한 부자감세는 그대로 둔 채 그 결과 생겨난 국가 빚이나 복지예산 부족을 서민들에게서 뽑아내겠다는 발상이다. 애초에 증세 없는 복지라는 이 정부의 구호 자체가 부자감세를 유지하기 위한 궤변이었으니, 궤변이 궤변을 낳는, 그야말로 궤변의 자기증식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이고, 이 정권 들어 생산되고 있는 수많은 궤변들의 기원이자 토대를 이루는 것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에 대한 궤변이다. 국민 앞에 공개된 증거만 해도 국정원의 불법선거 개입이 명백하고 국가기관인 검찰이 기소한 사안임에도, 온갖 구실로 사실들을 뭉개고 변조시키는 가운데 최근 1심 판결은 “정치개입은 맞으나 선거개입은 아니다”라는 희한한 수사학을 선보였다. 오죽하면 현직 부장판사가 이것은 판결이 아니라 궤변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했겠는가.

궤변가를 말하는 소피스트는 원래 지혜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이들이 진실을 호도하고 그럴싸한 논리로 대중들을 속여 넘기기에 몰두한 결과 궤변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소피스트는 기득권자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는 시대에 주로 득세하기 마련이며, 그만큼 현실권력과 밀착되어 있다. 실제로 지혜의 전도사라고 할 소크라테스는 이들의 손에 죽음을 당하였다. 궤변은 그만큼 힘이 세며,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궤변이 성행하는 것도 그 배후에 기득권층의 이익을 수호하는 정치권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력의 탄생 자체가 불법적인 성격을 안고 있기 때문에 궤변은 더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
궤변의 시대를 산다는 것은 지혜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힘겨운 싸움이다. 언론이 그렇듯 궤변을 생산해내는 기제는 그만큼 강하고, 법이 그렇듯 권력의 입맛에 맞는 궤변적인 판결은 속출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중들 또한 궤변을 짐짓 받아들여서 기성질서에 영합하고자 하는 우중(愚衆)으로 추락하기 일쑤다. 알고보면 야당조차도 이 궤변의 시대의 일원이다. 국가정보기관의 대선개입이 민주사회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비난하면서도 대선불복은 아님을 줄기차게 강조하였다. 이러니 어떻게 이처럼 궤변적인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이 난세를 사는 지혜를 구하고 싶은 요즈음이다. 예수는 험한 시대 진리를 전파해야 할 사명을 지닌 사도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했다. 어쩌면 사도들이 찾아 나가야 할 지혜로운 실천은 오늘날의 시민 모두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윤지관  jkyoon@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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